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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 출생 : 1685. 3. 21, 에르네스티네 작센 튀링겐 아이제나흐 |
* 사망 : 1750. 7. 28, 라이프치히 |
* 국적 : 독일 |
* 요약 : 바로크 시대 독일의 작곡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동시대인들 사이에서 뛰어난 하프시코드 연주자, 오르간 연주자, 오르간 제작자로 존경받았지만 오늘날에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Brandenburg Concertos〉·〈B단조 미사 Mass in B Minor〉·〈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Das Wohltemperierte Klavier〉 등 수많은 종교음악과 기악곡을 남긴 가장 위대한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음악사의 전성기를 살았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이전 시대의 작곡가들이 발전시킨 주요양식과 형식, 민족적 전통들을 종합해 풍부하게 만들 수 있었다. 바흐는 유명한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아들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도 음악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 하프시코드(harpsichord, 쳄발로) 하프시코드(harpsichord) 일반적으로 2벌 이상의 현이 있는데 그 각각은 서로 다른 음질을 갖는다. 전체적으로 다른 현들보다 한 옥타브 높은 소리를 내는 한 벌의 현을 4피트 레지스터라고 하며 정상적인 음높이를 갖는 줄들을 8피트 레지스터라 부른다. 20세기에 만들어진 하프시코드 가운데는 한 옥타브 아래의 소리를 내는 16피트 레지스터가 첨가된 것도 있지만 옛날 하프시코드에는 이러한 첨가는 극히 드문 일이다. 2벌의 8피트 레지스터를 함께 둘 경우에는 2번 서로 다른 재질로 만든 격철(plectra)이 서로 다른 지점에서 현을 뜯음으로써 매우 독특한 음질을 얻을 수 있다. 하프시코드의 음은 현에 대해 수평면 아래에 위치한 공명판에 의해 증폭된다. 현 바로 아래에는 줄받침(bridge)이 있는데 이것은 공명판에 접착됨으로써 현의 진동을 공명판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현을 뜯는 역학 구조는 건반의 끝에 달려 있는 수직의 나무 조각인 잭(jack)과 그보다 아래에 고정되어 있는 가이드(guide), 보다 위에 위치한 슬라이드(slide : movable guide라고도 함)로 구성되어 있다. 슬라이드는 어떤 현이 사용되는가에 따라 한 벌을 이루고 있는 잭들을 움직여 그 현들 가까이로 부드럽게 밀어넣거나 반대로 떼어놓는다. 각각의 잭 끝에서 잭을 축으로 위아래로 움직이는 혀는 새의 깃이나 가죽으로 만든 격철을 고정시키기 위해 그 위쪽 중간 부분을 뚫어놓았으며 철사나 짐승의 억센 털로 만든 스프링에 의해 위로 향하게 되어 있다. 옷감이나 펠트 천으로 덮은 댐퍼(damper)가 잭의 끝을 장식하는데 이것은 눌렀던 건반이 제자리로 돌아와 격철이 현 아래로 떨어질 때 현의 진동을 죽인다. 최초의 것으로 알려진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하프시코드는 1521년 로마에서 제롤라모 볼로네세가 만든 것이다. 하프시코드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으나 16~18세기에 상당한 혁신이 이루어져 유럽의 가장 중요한 악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탈리아·플랑드르·프랑스·영국·독일을 중심으로 하프시코드 제작의 국가별 유파가 형성되었고 도료를 입힌 뚜껑과 화려하게 장식된 상자로 만든 하프시코드가 널리 유행했다. 대부분의 바로크 작곡가들이 이 악기를 연주했거나 이 악기를 위한 작품을 썼다. 18세기 중엽에 이르면 하프시코드의 표준 음역이 5옥타브에 이르게 되고 2벌 이상의 현과 잭을 가지며 종종 2벌의 건반을 갖기도 한다. 이 시기에 하프시코드는 건반에 가하는 손가락의 압력에 따라 소리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악기인 피아노포르테(pianoforte)와 경쟁하게 되었다. 음의 점진적 강약을 조절할 수 없는 하프시코드는 곧 인기가 피아노에 압도당하게 되었다. 하프시코드는 19세기에 다시 등장하여 지금도 악기 제작자와 작곡가들에 의해 계속 개발되고 있지만 구조상의 획기적 개선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
1. 바흐의 소년시절
아이제나흐 궁정과 지방 의회에 고용된 현악기 연주자 요한 암브로지우스 바흐와 엘리자베트 래머히르트 사이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1692(또는 1693)년부터 학교 공부를 시작했고 잦은 결석에도 불구하고 학교 성적은 좋았다.
그가 당시 받은 음악교육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으나 아버지에게 현악기 연주의 기초를 배우고 게오르크 교회에 다닌 것으로 여겨지는데 1703년까지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가 오르간 연주자로 있었다. 1695년경 양친이 모두 죽자 오르드루프의 오르간 연주자였던 맏형 요한 크리스토프(1671~1721) 밑에서 자랐다. 크리스토프는 한때 영향력있는 건반음악 작곡가인 요한 파헬벨의 제자였으며, 동생 제바스티안에게 건반악기를 가르쳤다.
어린 바흐는 다시 뤼네부르크의 미하일 교회 부속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했으며, 목소리가 좋아 1700년까지 가난한 소년들로 구성된 성가대의 일원이 었다. 그후 목소리에 이상이 생겨 학교를 떠났으나 한동안 뤼네브르크에 머물면서 방대한 최신 교회음악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던 그곳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이때 요하네스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인 게오르크뵘의 연주를 들었던 것 같으며,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요한 아담 라인켄의 연주를 듣기 위해 함부르크를 방문했고 아울러 셀 공작의 프랑스 오캐스트라의 연주도 들었다.
1702년 늦은 여름, 바흐는 이미 능숙한 오르간 연주자가 되어 다시 튀링겐으로 돌아왔다. 1703년 3월 4일경 그는 바이마르의 요한 에른스트 공작 오케스트라의 일원이 되었다. 이 자리는 단지 임시 방편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미 그의 마음은 당시 아른슈타트의 노이 교회에서 제작중이었던 오르간에 가 있었다. 오르간이 완성되자 바흐는 그 악기를 시험해 보았고, 1703년 8월, 18세의 나이로 오르간 연주자에 임명되었다.
2. 바흐의 아른슈타트 시대
튀링겐 삼림지대의 북쪽에 위치한 아른슈타트에서 바흐는 특히 오르간 음악에 몰두했다. 뤼네부르크에 있는 동안 그는 북독일 오르간 악파의 가장 중요한 오르간 연주자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연주와 작품을 직접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1705년 10월 한 달 동안의 휴가를 얻어 뤼베크까지 300km나 되는 거리를 걸어가 마침내 그의 연주와 음악을 듣게 되었다. 1706년 1월 중순이 되어서야 돌아온 것으로 보아 그곳에서 체재가 그에게 유익했던 듯하나 그는 그동안의 부재와 그밖의 일들로 문책을 받았다.
찬송가의 선율에 마음대로 화성을 붙여 회중이 따라 부르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칸타타를 한 곡도 작곡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진정한 이유는 그가 오르간에 집착한다는 것과 자신이 요구하는 음악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그 지역 가수·연주자들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었던 것 같다. 1705년 여름에는 한 바순 연주자에게 공격적인 언사를 한 것이 거리의 난투극으로까지 발전한 일도 있었다. 이런 일들로 인한 문책에 대해 그의 답변은 만족스럽지도 못하고 성의도 없었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음악가를 잃고 싶지 않았던 고용주측은 그를 해고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바흐는 튀링겐 지역의 음악문화를 흡수하는 한편 북스테후데로부터도 많은 것을 얻었다. 1708년경에는 독일 선배 작곡가들에게 배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얻었으며, 최초로 독일의 북부와 남부 양식을 통합했다. 아울러 프랑스의 오르간 음악과 기악음악을 공부하기도 했다.
초기의 작품으로는 〈사랑하는 형의 여행에 즈음한 카프리치오 Capriccio Sopra la lontananza del suo fratello dilettissimo〉(BWV 992, 1704), 〈얼마나 밝게 빛나는가 Wie Schön leuchtet〉에 의한 코랄 전주곡(BWV 739, 1705경), 오르간을 위한 〈전주곡과 푸가 G단조〉(BWV 535a, 1707 이전) 등이 있다('BWV'번호는 독일의 음악학자 볼프강 슈미더에 의한 표준적인 바흐 작품 번호로 독일어 Bach-Werke-Verzeichnis의 약자임).
3. 바흐의 뮐하우젠 시대
1707년 6월 튀링겐의 뮐하우젠에 있는 블라지우스 교회에 일자리를 얻었으며 그해 10월 17일 도른하임에서 사촌인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와 결혼했다. 뮐하우젠에서는 한동안 모든 일이 순로로운 듯했다. 이때 작곡한 칸타타들은 성서 혹은 코랄 가사를 기초로 한 보수적인 틀을 고수하고 있으며, 훗날 그의 칸타타에 나타나는 '근대' 이탈리아 오페라 형식의 영향은 보이지 않는다.
오르간을 위한 〈파시칼리아 C단조〉(BWV 582), 역시 오르간을 위한 〈토카타와 푸가 D단조〉(BWV 565), 〈전주곡과 푸가 D장조〉(BWV 532) 등이 당시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칸타타 71번 〈하느님은 나의 왕이시도다〉(1708. 2)는 시의회가 비용을 부담하여 출판된 작품이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바흐는 블라지우스 교회를 사임하고 곧바로 바이마르로 갔다.
4. 바흐의 바이마르 시대
바이마르에서는 당초부터 궁정 오르간 연주자 겸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시작했다. 빌헬름 에른스트의 배려로 처음 몇 년 동안 오르간에 몰두했다. 바이마르에 있는 동안 가끔 바이센펠스를 방문했는데 1713년 2월 그곳 궁정의식에 참석하여 그의 첫 세속 칸타타인 〈사냥 칸타타 Was mir behagt〉(BWV 208)를 연주했다.
1713년 말 할레에 있는 리프프라우엔 교회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차호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나 헤르초크가 급료를 올려주자 바흐는 바이마르에 계속 머물렀다.
1714년 3월 2일 부지휘자가 되면서 매달 한 편의 칸타타를 작곡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그의 양식이 심오한 변화를 겪었던 1708~14년 사이의 자세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1714~16년에 작곡된 칸타타를 볼 때 분명 그는 당시의 이탈리아 오페라 양식과 형식, 그리고 안토니오 비발디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협주곡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오페라 세리아, 다카포 아리아). 그 결과 1714년에 작곡된 칸타타 182, 199번 및 61번, 1715년에 작곡된 31번과 161번, 그리고 1716년에 작곡된 70번과 147번이 나왔다.
이탈리아 양식에서 비롯된 기법인 어떤 곡의 전체를 그대로 또는 변형시켜 반복하는 리토르넬로 또는 다카포 기법을 즐겨 썼는데, 그는 이 기법들을 써서 그때까지 보다 규모가 큰 음악형식을 만들 수 있었다. 새로이 습득한 이러한 기법은 그의 아리아와 콘체르토, 보다 규모가 큰 푸가(특히 완숙기에 작곡된 오르간을 위한 푸가들)에 나타나고 있으며, 코랄 작법에도 영향을 주었다.
여러 작품 중 분명히 바이마르 시대에 작곡된 곡들은 〈오르간 소곡집 Orgelbüchlein〉에 있는 대부분의 작품과 소위 18곡의 '대(大)' 코랄 전주곡이라고 불리는 작품(그중 마지막 18번째 곡은 제외), 최초의 오르간 트리오, 오르간 전주곡과 푸가들이다. 오르간을 위한 '대(大)' 〈전주곡과 푸가 G장조〉(BWV 541)는 1715년경에 최종적으로 개작되었고, 〈토카타와 푸가 F장조〉(BWV 540)는 바이센펠스에서 연주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716년 12월 1밀 바이마르의 궁정 악장인 요한 자무엘 드레제가 죽자 보잘것없는 실력의 소유자인 그 아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에 분개한 바흐는 쾨텐의 레오폴트 대공 측에서 제의한 궁정 악장 자리를 수락했고, 1717년 8월 그 취임이 확정되었다. 헤르초크 빌헬름은 바흐의 사임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와 사이가 좋지 않은 조카와 바흐가 절친했던 것이 그 부분적인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9월경에는 프랑스의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인 마르샹과 바흐와의 경연이 준비되었다.
당시의 정확한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연이 있기 몇 시간 전에 마르샹은 드레스덴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내용상으로 바흐가 이긴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용기를 얻은 바흐는 바이마르 궁정에 사임을 요청했고, 헤르초크는 얼마 동안 그를 감금하기까지 했지만(11. 6~12. 2) 결국 풀어주었고, 그는 할레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진 쾨텐으로 갔다.
5. 바흐의 쾨텐 시대
쾨텐의 궁정 악자으로서 주로 실내악과 관현악에 전념했다. 몇몇 작품들은 이전 것을 나중에 개작한 것이지만 바이올린과 클라비어, 비올라 다감바와 클라비어를 위한 소나타들과 무반주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작품들은 이 무렵에 작곡된 것이었다.
1721년 3월 24일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완성되었고, 그 중 6번은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는 대공의 기교적인 한계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것이다. 아울러 그는 대공의 생일과 그밖의 여러 행사를 위한 칸타타 몇 곡을 작곡했으나 지금은 보다 일반적인 가사로 바꾼 후기의 개정판만이 남아 있다.
바흐는 쾨텐에서 건반악기 교재 음악도 작곡했는데 W. E.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 Clavierbüchlein〉(1720. 1. 22 시작), 〈프랑스 모음곡 French Suites〉의 일부, 〈인벤션 Inventions〉(1720),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1722)이 있다.
1720년 7월 8일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가 갑자기 죽었다. 바흐는 이듬해 12월 3일 바이센펠스의 트럼펫 연주자의 딸인 안나 마크달레나 빌켄과 재혼했다. 첫번째 부인의 죽음을 제외한다면 쾨텐에서의 첫 4년 동안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대공은 진실로 음악을 이해했고 바흐는 그러한 대공과 최상의 관계를 유지했으며 또한 그 곳에서 일생을 마치기를 원했다. 그러나 1721년 12월 11일, 대공이 결혼을 하면서 상황은 변했다. 대공비는 남편이 자기에게만 관심을 가져 주기를 원했고 바흐는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1710년과 1714년에 각각 태어난 두 아들의 교육문제를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요한 쿠나우의 죽음으로 음악감독 자리가 비게 된 라이프치히로 옮겨갈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그 자리에 들어가고자 했을 때는 이미 바흐의 친구인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이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고, 다시 당대의 뛰어난 작곡가이며 다름슈타트의 음악감독이었던 크리스토프 그라우프너에게 제안된 상태였다. 그라우프너가 그 요청을 받아들일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흐는 1723년 2월 7일 칸타타 22번 〈예수께서 12사도를 이끄셨도다 Jesu nahm zu sich die Zwölfe〉를 시연했다.
그러나 4월 9일 그라우프너가 초청을 정식으로 거절했을 때는 이미 라이프치히로 가기로 약속되어 있었으므로 4월 4일에 그와 대공 사이를 소원하게 만들었던 대공비가 죽었지만 그는 쾨텐을 떠나 5월 13일 라이프치히에 부임했다. 그 후 그는 쾨텐의 명예 궁정악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그와 그의 부인은 1728년 11월 19일 대공이 죽을 때까지 때때로 그곳에서 일했다.
6. 바흐의 라이프치히 시대
라이프치히 시의 교회 음악감독으로서 바흐는 교회 연주자를 책임져야 했다. 페터 교회 성가대에서는 단지 찬송가를 인도했고 노이 교회, 니콜라이 교회, 토마스 교회에서는 성부 합창을 했지만 바흐 자신이 직접 지휘를 하고 자신이 작곡한 교회 음악을 연주한 곳은 니콜라이 교회와 토마스 교회 두곳뿐이었다. 그의 첫번째 공식 연주는 삼위일체 축일 다음의 첫번째 일요일인 1723년 5월 30일에 있었던 칸타타 75번 〈가난한 잔치에 초대받으리라 Die Elenden sollen essen〉의 연주였다.
1723년에 여러 곡의 칸타타와 마그니피카트를 포함한 신작들을 작곡했으며 1724년 전반에는 〈요한 수난곡 St. John Passion〉을 만들었다. 이 기간에는 무려 62여 곡이나 되는 칸타타가 연주되었는데 그 가운데 39여 곡은 신작이었다. 1724년 6월11일 삼위일체 축일 다음의 첫 주일에 바흐는 다시 칸타타를 작곡하기 시작했으며 그 기간 동안 52곡이나 되는 소위 코랄 칸타타를 작곡했다. 〈B단조 미사〉의 거룩송(상투스)은 크리스마스 때 연주되었다. 라이프치히에서의 첫 2년(혹은 3년) 동안 그는 엄청나게 많은 칸타타를 써 거의 1주에 한 곡씩 작곡한 셈이었다.
라이프치히에서의 첫 3년 동안 칸타타에 전념한 결과, 장차 축일과 축일예배에 필요한 교회음악 대부분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1726년 이후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1729년 〈마태오 수난곡 St. Matthew Passion〉을 작곡했는데 이 작품은 1730년대 중반에 일기 시작한 칸타타보다 규모가 큰 성악작품에 대한 관심의 시발점이 된 작품이었다. 같은 경향의 작품으로는 〈마가 수난곡 St. Mark Passion〉(1731, 지금은 전하지 않음)·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Christmas Oratorio>(BWV 248, 1734)·〈승천축일 오라토리오 Ascension Oratorio〉(칸타타 11번, 〈그 나라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1735)가 있다.
7. 바흐의 음악외적 직무
교회 감독으로서 의무 외에 토마스 교회 부속학교의 음악감독으로서 여러 가지 음악외적인 직무를 수행해야 했는데 그는 이러한 음악외적인 직무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고, 오르간을 연주하거나 실험하는 일 또는 아들을 데리고 드레스덴 오페라를 관람하기 위해 그리고 그가 평생 지켜온 명예 궁정악장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자주 자리를 비웠다. 어느 정도는 보수가 충분하지 못해 돈이 필요했으므로 다른 일을 맡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바흐와 그의 고용주 사이의 불화는 거의 폭발 직전까지 이르렀다.
바흐가 처음에 기대했던 보수와 지위에 따르는 특권(특히 라이프치히 대학의 파울리너 교회에서의 음악 활동에 대한 의무에 관해서)은 시의회가 생각하는 것과 달랐으며, 대학 오르간 연주자인 고틀리프 괴르너와도 차이가 있었다. 다시 말해서 바흐는 고용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텔레만과 그라우프너 다음으로 고려된 제3의 별로 내키지 않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당국은 음악적인 소질이 없는 아이들을 학교에 받아들이도록 요구해서 뛰어난 가수를 양성해서 교회에 보내야 하는 바흐의 입장을 불편하게 했으며 또한 품위있는 관현악단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예산 지출조차 거절했다. 이러한 처사에 따른 불만은 1730년경에는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다.
이런 위기는 바이마르에서 바흐를 알게 되어 그를 존경했던 요한 마티아스 게스너가 교구 목사로 새로 부임하면서 일시적으로 가라앉았지만 그가 머물렀던 기간은 겨우 1734년까지였다. 게스너의 후임인 아우구스트 에르네스티는 교육에 관해 첨단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에 따르면 음악은 인문과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시간을 낭비하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
1736년 7월 바흐가 학사장을 임명할 권한이 있는 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면서 다시 분쟁이 폭발, 결국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까지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바흐는 1736년 11월 작센 선제후(選帝侯)의 궁정 작곡가가 되었으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궁정의 친구들을 설득해 공식적인 심리를 하도록 했고, 1738년에는 에르네스티와의 논쟁도 진정되었다. 논쟁이 해결되게 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8. 바흐의 작품
1726년 자신이 작곡한 전체 칸타타 가운데 〈파르티타〉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1731년에는 작품집으로 출판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라이프치히 이외 지역에서 인정을 받아 보다 조건이 좋은 일자리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듯하다. 1735년 〈클라비어 연습곡집 Clavierübung〉 제2부가 나왔는데 여기에는 〈이탈리아식 협주곡〉과 〈프랑스 서곡(파르티타) B단조〉가 포함되어 있다.
1739년에 출판된 제3부는 〈전주곡과 푸가 Eb 장조〉가 있는 〈오르간 미사〉로 이루어져 있다. 1729~36년에 걸쳐 바이센펠스의 명예 궁정악장으로 있었으며, 1729~37년, 1739년부터 1년 혹은 2년 동안 라이프치히 대학의 콜레기움 무지쿰을 지휘했다. 그때의 연주회들을 위해 이전에 작곡한 협주곡들을 하프시코드 협주곡으로 개작함으로써 실내악에서 하프시코드의 오른손 부분을 진정한 선율부로 사용했고, 건반악기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한 최초는 아닐지라도 첫번째 작곡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작곡가로만 인식되었던 그의 개혁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여러 가지 예 중의 한 가지에 불과하다.
1733년경 궁정에 일자리를 얻으려는 의도로 작센 선제후와 그 가족을 기리는 칸타타를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1736년에는 그 뜻을 이루었다. 이들 세속 칸타타의 상당수는 종교적 가사를 붙여 개작되었으며,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 다시 사용되기도 했다. 1733년에 작곡된 <B단조 미사>의 연민송(Kyrie)과 영광송(Gloria)은 역시 선제후에게 헌정되었지만 그 나머지 부분은 그의 말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다.
드레스덴을 방문했을 때 러시아 공사인 그라프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의 인정을 받았는데 공사는 그에게 <골트베르크 변주곡 Goldberg Variations>을 위촉했다. 이 변주곡집은 1742년경 〈클라비어 연습곡집〉의 제4부로 출판되었으며, 〈평균울 클라비어 곡집〉의 제2권도 같은 무렵에 완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바이마르 시절의 오르간 작품들을 개작한 칸타타 몇 곡을 만들었으며, 1746년경에는 〈쉬플러 코랄 전주곡 Schübler Chorale Preludes〉을 출판했다.
9. 바흐의 말년
1747년 5월 포츠담에 있는 아들 에마누엘을 방문해서 프로이센의 대왕 프리드리히 2세 앞에서 연주를 했으며, 7월에 왕이 준 주제에 대한 즉흥연주를 〈음악의 헌정 The Musical Offering〉으로 완성했다. 1747년 6월에는 전에 그의 제자였던 로렌츠 크리스토프 미츨러가 설립한 음악학회에 가입했으며 그 학회에 그는 코랄 〈높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도다 Vom Himmel hoch da komm'ich her〉를 주제로 한 카논 변주곡을 헌정했다.
바흐의 말년의 병에 대해서는 그 병이 여러 달 계속되었다는 것과 그로 인해 <푸가의 기법>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사실 외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시력을 잃은 두 눈을 수술한 것이 실패하여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으며, 결국 1750년 6월 28일 라이프치히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아내 안나 마크달레나는 의붓아들들이 전혀 돌보지 않았으며 친아들은 너무 어렸기 때문에 홀로 남아 극심한 궁핍을 겪었다. 그녀는 1760년 2월 27일에 죽었는데 장례식은 빈민구제를 위한 조치로 치러졌다.
미완성인 채로 1751년에 출판된 〈푸가의 기법〉은 거의 주목을 끌지 못했으며, 1752년에는 유명한 베를린의 음악가이며 후일 왕실 복권 감독 프리드리히 빌헬름 마르푸르크의 찬사와 함부르크의 영향력있는 작곡가이자 비평가인 요한 마테존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1756년경에는 단지 30부 정도의 악보가 판매되었으며, 알려진 바로는 그 악보는 폐품으로 팔렸다고 한다.
에마누엘 바흐와 오르간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요한 프리드리히 아그리콜라(제바스티안의 제자)가 바흐를 위해 사망기사를 쓰고 미츨러가 몇 마디 끝맺는 말을 덧붙여 음악학회의 학회지(1754)에 실어 출판했는데 이 글의 영역본은 〈The Bach Reader〉에 수록되어 있다.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점이 없지 않지만 이 글은 바흐에 대한 1차 자료로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좋은 남편이자 훌륭한 아버지였다. 그리고 20여 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그중 10명의 아이들은 어린 나이로 죽었다. 그는 검소하고 겸손하고 친절했다. 음악이 신사에게 적당한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시작한 시대를 살았던 그는 때로 인간으로서 또는 음악가로서의 권리를 주장해야 했고, 이점에서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지만 어떤 냉정한 고용주와도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으며. 동료 음악가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아울러 그는 훌륭한 선생이었으며 뮐하우젠 시대 이후 결코 제자가 끊인 적이 없었다.
10. 바흐의 명성과 영향
1)개요
바흐가 죽고 50여 년 동안 그의 음악은 빛을 보지 못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시대에 이미 생전에도 진부한 작곡가로 생각되던 바흐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특히 전체 작품의 절반 가량이 교회 칸타타인 그의 작품으로는 이미 종교적 사상이 변화를 겪은 상황에서 주목을 끌 수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저술가가 말하는 것처럼 18세기 후기의 음악가들은 바흐의 음악을 몰랐던 것도, 그 영향에 대해 둔감하지도 않았다. 에마누엘 바흐가 그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향도 대단한 것이지만 바흐의 영향은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에게도 직접 미쳤다.
2) 바흐 음악의 부활
1800년 이후 바흐 음악은 재생의 전기를 맞았다.
독일의 저술가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은 〈바흐의 생애·예술·작품에 대하여 Ü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1802)를 출판했으며, 1801년부터 바흐의 작품을 모아 출판하기 시작했던 출판업자 호프마이스터와 퀴넬의 조언자로 활동했다. 그 작품집은 나폴레옹의 출현으로 절판되었지만 1829년경에는 대표적인 건반음악 선집과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성악곡도 출판되었다. 그해에 독일의 음악가 에두아르트 데프린트와 독일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이 〈마태오 수난곡〉 100주년 음악회를 가짐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다.
이 작품과 〈요한 수난곡〉은 1830년에 출판되었고 〈B단조 미사〉도 곧이어 출판되었다(1832~45). 라이프치히의 출판업자 페터스는 1837년에 피아노곡과 기악곡을 모아 출판하기 시작했고, 1844~52년에는 오르간 곡들을 출판했다. 로베르트 슈만의 격려로 바흐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인 1850년에 바흐 전집 출판을 목적으로 하는 바흐 협회(Bach-Gesellschaft)가 발족되었다.
1900년경에는 바흐의 알려진 전작품이 출판되었고, 신바흐 협회(Neue Bach-Gesellschaft)가 바흐 협회를 계승했다. 신바흐 협회는 지금도 음악제를 기획하고 바흐의 널리 알려진 작품들을 출판하는 등의 사업을 하고 있으며, 학술지 〈바흐 연보 Bach Jahrbuch〉(1904~)를 발간하고 있다. 1950년경에는 '바흐 협회판'의 결함이 분명하게 드러남에 따라 괴팅겐과 라이프치히에 본부를 둔 바흐 연구소가 설립되어 전 84권으로 예정된 새로운 표준판(NBA) 제작을 시도하고 있다.
바흐에 관한 전기나 비평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독일의 음악학자 필리프 슈피타의 기념비적 연구서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전 2권, 라이프치히, 1873~80)를 꼽을 수 있는데 이 책은 바흐의 생애와 작품뿐만 아니라 역사적 배경까지도 잘 다루고 있다. 비록 세부적인 면에서 오류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 책은 바흐 연구에 있어 필독서이다.
3) 바흐 작품의 편집
주요작품들 상당수는 바흐의 자필 악보가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바흐의 원래 의도는 각각 다른 20개의 원전에서 찾아야 한다.
심지어는 초판이나 자필 악보의 복사판이라 해도 그의 의도를 원래대로 보여준다고 단정할 수 없다. 사실 그것들은 종종 그릇된 해석으로 오도되었기 때문에 연주자들은 그것들을 참고하기 전에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야 한다. 1752~1840년경 사이에 출판된 그의 악보들은 호기심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페터스, 바흐 협회, NBA판을 통틀어 믿을 만한 포괄적인 바흐판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BA판에서 시작하는 것이 그나마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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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Christmas Oratorio BWV248)
* 시대 : 바로크 |
* 분류 : 고음악 > 바로크, 성악음악 > 오라토리오 |
* 제작시기 : 1734년 라이프치히 |
* 작곡가 :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
* 초연 : 1734년 12월~1월, 성 토마스 교회 |
* 출판 : 1856년 |
* 편성 : 제1부~제6부 독창자, 4성부 합창, 목관 악기, 현악기 중심 편성 |
1. 여섯 개의 칸타타 모음
바흐는 루터교에서 중요한 절기인 승천절과 부활절, 그리고 성탄절을 위해 오라토리오를 작곡했으며, 그 중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가장 규모가 크고 예술적 완성도도 높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곡에는 ‘오라토리오’라는 제목이 붙어 있긴 하지만, 성탄절에서부터 주현절(主顯節, Epiphany)인 이듬 해 신년 첫 주일까지 연주할 여섯 개의 독립적인 칸타타를 묶어 놓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각각의 칸타타들은 내용이나 음악적인 면에서 연관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바흐는 1734년 크리스마스를 위해 이 작품을 완성했고, 그 해 12월 25일에 1부 연주를 시작으로 12월 26일에 2부, 12월 27일에 3부를 초연했고, 이듬 해 1월 1일에 4부, 1월 2일에 5부, 그리고 주현절인 1월 6일에 6부를 각각 한 곡씩 나누어서 연주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오라토리오와 같이 극적이나 서사적으로 전개되는 하나의 악곡이라기보다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연주할 ‘교회 칸타타 모음집’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리브레토(Libretto)
2. 그리스도의 탄생과 동방박사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의 가사의 출처는 명확하지 않으나, 성탄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신약성서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전반부인 1부에서 3부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과정과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4부와 6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알게 된 동방 박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시작 부분(1734)
제1부 ‘자, 축하하라, 이 좋은 날을’
전체 오라토리오 6곡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밝은 칸타타로 크리스마스 당일에 연주된다. 호적을 정리하기 위해 고향 베들레헴으로 떠나는 예수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의 이야기로 시작해 마리아가 예수를 낳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음악은 전체 9곡으로 팀파니와 트럼펫, 목관 악기의 화려한 팡파르에 이어 기쁨의 합창이 등장하는 1곡 ‘자, 축하하라 이 좋은 날을’이 가장 유명하다. 관악기와 웅장한 합창이 크리스마스 아침의 기쁨을 표현한 후에는 2부 ‘이 땅에 노숙(露宿)하여’가 이어진다.
제2부 ‘이 땅에 노숙하여’
전원풍의 파스토랄 심포니(Pastoral Symphony) 서주로 시작하는 이 곡은 양치는 목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들판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그린 목가적인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천사가 나타나 양치기들에게 예수의 탄생 소식을 전하는 부분으로 전체 칸타타 중에서 가장 긴 동시에 서정적이고 평화로운 악곡이다. 테너 독창으로 부르는 ‘기쁨의 양치기들’과 알토 독창 ‘잠자라 귀여운 아기’ 등의 아리아가 유명하다.
제3부 ‘하늘의 통치자여, 이 노래 소리를 들으라’
천사에게 기쁜 소식을 들은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가서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는 부분이다. 사흘에 걸쳐 이야기하는 예수 탄생 과정의 마지막에 해당한다. 이 곡은 전체 12곡이지만 첫 곡을 마지막에 한 번 더 반복하기 때문에 13곡을 노래하도록 되어 있다. 트럼펫과 팀파니로 반주에 맞춘 첫 곡 합창 ‘하늘의 통치자여, 이 노래 소리를 들으라’가 가장 유명하며, 예수를 보러 서둘러 가자는 양치기들의 합창 ‘베들레헴으로 가자’에서는 양치기들의 설레는 마음을 대위법적인 성부 진행을 통해 묘사한다.
제4부 ‘감동과 찬미에 엎드리로다’
새해에 연주되는 곡으로, 예수가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정식으로 ‘예수’라는 이름을 받게 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전체 7곡으로 되어 있으며, 서정적인 선율에 악기들이 주고받는 메아리 같은 효과가 돋보이는 소프라노의 아리아 ‘나의 구주여, 이름을 노래하라’가 유명하다.
제5부 ‘하느님께 영광 있으라’
신년의 첫 번째 일요일에 부르는 곡으로, 동방박사들과 헤롯 왕과의 만남을 다루었다. 헤롯 왕을 만난 동방박사들은 새로 태어난 유대 왕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이를 들은 헤롯 왕이 경계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오보에 다모레의 부드러운 오블리가토와 함께 나오는 베이스 독창 ‘비추소서 나의 어두운 마음을’과 바이올린 오블리가토와 하모니를 이루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의 3중창 ‘아아, 때는 언제 오나’ 등이 대표적인 곡이다.
제6부 ‘주여, 교만한 적(敵)이 다가올 때’
‘주현절’이라 불리는 1월 6일에 불리는 곡이다. 주현절은 베들레헴 마구간을 찾아간 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치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 것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바흐는 동방박사들의 경배 이야기를 통해 2주에 걸친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전체 11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푸가 형식으로 작곡된 당당하고 장엄한 합창 ‘주여, 교만한 적이 다가올 때’로 시작해 오케스트라 전체가 연주하는 화려한 반주와 함께 나오는 코랄 ‘이제 모든 것은 보답되어’로 대미를 장식한다.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구성하는 여섯 개의 칸타타는 모두 독창자와 4성부 합창, 목관 악기와 현악기 중심의 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1부와 3부, 그리고 6부에서는 축제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팀파니와 트럼펫이 사용되었다. 각각의 악곡은 25분에서 30분가량이며, 바흐 시대에 성행하던 관습대로 기존에 작곡된 곡에서 주제 선율을 가져오거나 편곡 또는 변형해서 사용한 음악들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XNX6Ulzv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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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수난곡(Johannes Passion BWV245)
1. 수난곡의 백미, 〈요한 수난곡〉
수난곡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건을 주제로 쓴 종교 오라토리오로, 주로 부활절 직전의 고난주간에 연주된 작품이었다. 바흐는 그의 생애 동안 모두 다섯 개의 수난곡을 완성했는데, 지금은 〈요한 수난곡〉과 〈마태 수난곡〉만이 전해지고 있다. 이 중에서 〈요한 수난곡〉은 〈마태 수난곡〉 보다 3년 먼저 작곡되었으며, 1724년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의 성 금요 예배를 위해 만들어진 곡으로, 치밀한 구성과 깊은 종교 정신이 반영된 바흐의 수작으로 꼽힌다.
2. 밀도 있게 전개되는 극적 사건
〈요한 수난곡〉의 가사는 요한복음서 18장과 19장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여기에 함부르크 시의원이었던 바르톨트 하인리히 브로케스가 쓴 〈세상의 죄를 위해 수난 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등 여러 작가의 종교시에서 바흐가 직접 발췌해 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태 수난곡〉에 비해 좀 더 속도감 있게 극적인 사건에 집중하기 때문에, 곡 전반에 걸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보통 수난곡의 중간 부분에 설교가 들어가는 당시의 예배 관례에 따라 전체가 두 부분으로 나뉘고, 주요 등장인물로는 소프라노와 알토, 테너, 베이스에서 뽑은 네 명의 독창자 외에 성경을 낭독하며 해설자 역할을 하는 복음사가(福音史家, Evangelists), 그리고 예수와 빌라도, 베드로 등이 등장한다.
성 토마스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며 교회의 음악 학교 수업을 진행하는 바흐
바흐의 〈요한 수난곡〉 악보는 바흐의 둘째 아들인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가 물려받았다. 1769년 자신이 〈마태 수난곡〉을 작곡하게 되자, 아버지 대 바흐의 〈요한 수난곡〉의 일부분을 활용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가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대 바흐의 〈요한 수난곡〉 몇 개 악장은 알고 있었다. 특히 베토벤은 자신의 첼로 소나타 Op. 69를 작곡하면서 1악장 발전부에다 〈요한 수난곡〉의 제30곡 알토의 아리아 ‘다 이루어졌도다(Es ist vollbracht)’를 인용하기도 했다.
〈요한 수난곡〉의 악보를 물려받은 카를 필립 임마누엘 바흐
1803년 베토벤의 초상화 - 베토벤은 그의 첼로 소나타 Op. 69의 1악장 발전부에 〈요한 수난곡〉의 알토 아리아 ‘다 이루어졌도다’를 인용했다.
하지만 바흐가 남긴 두 곡의 수난곡, 〈마태 수난곡〉과 〈요한 수난곡〉은 바흐가 세상을 떠난 후로 두 곡 모두 오랜 시간 잊혀 있었다. 사장될 위기에 있던 두 곡의 수난곡은 19세기에 와서야 빛을 보게 되는데, 먼저 1829년 3월 11일, 멘델스존이 〈마태 수난곡〉의 악보를 재발굴해 다시 연주함으로써, 수난곡을 비롯한 바흐 작품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멘델스존의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칼 프리드리히 룽겐하겐(Carl Friedrich Rungenhagen)에 의해 4년 뒤인 1833년에 부활했다.
3. 군중의 심정을 대변한 극적인 합창 사용
〈요한 수난곡〉은 총 마흔 곡으로 구성되었으며, 1부가 14곡, 2부가 26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유다의 배반, 제사장 가야바의 심문, 그리고 베드로의 부인이라는 세 가지 커다란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부는 예수가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당하는 장면, 골고다로 연행돼 형벌당하는 장면, 임종하는 장면, 그리고 매장까지 네 개의 장면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난곡의 주요 내용이 되는 십자가 사건은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복음에 모두 등장하지만 특별히 요한복음은 예수나 제자들이 아닌, 군중의 시각과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바흐는 이러한 요한복음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 작품 전체에 군중의 합창을 중요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바흐의 의도는 첫 곡으로 등장하는 군중들의 합창, ‘주여, 이 땅의 영예로운 통치자여’에서도 잘 드러난다. 먼저, 복음사가의 레치타티보와 합창이 번갈아 등장하는 두 번째 곡은, 모여드는 군사를 향해 ‘누구를 찾고 있는가’라고 외치는 예수의 질문과, ‘나사렛의 예수’라고 대답하는 군중들의 대화로 이어지며, 이들의 대화는 다섯 번째 곡에서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노래하는 예수의 아리아로 마무리된다. 1부의 마지막 장면인 열두 번째 곡에서 열네 번째 곡까지는 군중에 둘러싸여 의심을 받던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장면으로, 열세 번째 곡인 베드로의 아리아 ‘아아, 나의 마음이여, 너는 결국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인가’는 갈등에 빠진 베드로의 인간적인 고뇌가 잘 드러나 있는 명곡으로 꼽히고 있다.
2부는 예수가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후 예수의 십자가형이 집행되는 스물세 번째 곡부터 스물여덟 번째 곡까지에서 비장함과 음울한 분위기가 한층 고조된다. 예수가 사형 집행장인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장면을 묘사한 레치타티보가 이후에 등장하는 소프라노와 알토, 테너가 3중창 아리아 ‘십자가를 지고 언덕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군중들의 심정이 담긴 26곡은 헤르베르거의 코랄 선율을 빌려온 것으로, ‘내 마음 속에는 당신의 이름과 십자가만이 언제나 빛나고 있습니다’라고 노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아내며, 골고다 언덕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인 요한에게 부탁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애틋한 심정을 담은 두 곡의 레치타티보와 코랄로 마무리된다.
하르먼스 판 레인 렘브란트, 〈십자가 세우기〉, 1633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는 예수〉 삼부작 중 중간 패널
산드로 보티첼리, 〈마리아 막달레나, 사도 요한, 토비아스, 천사와 함께 있는 성 삼위일체〉(1491~1493)
스물아홉 번째 곡부터 서른일곱 번째 곡까지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들이 반복되면서 예수가 마지막으로 임종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요한복음의 각각의 성경 구절이 대화하듯 펼쳐지면서 ‘모든 것은 끝나고 병든 영혼을 위로하라’, ‘예수여, 죽은 후에도 한없이 살아계시니’와 같은 슬픔의 아리아들이 이어진 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오니’라고 고백하는 합창으로 마무리된다. 서른여덟 번째 곡부터 세 곡은 군중들의 예수의 시신을 무덤에 안장하는 마지막 장면을 구성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일명 ‘매장가’라고 불리는 서른아홉 번째 합창 ‘편안히 쉬기를, 거룩한 시신이여’는 작품의 실질적인 피날레를 담당하는 유명한 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6WKGq-N7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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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타타 182번 - ‘하늘의 왕이시여, 어서 오소서’ (Himmelskönig, sei willkommen, BWV182)
(요약)
바흐의 교회 칸타타 〈하늘의 왕이시여, 어서 오소서〉는 종려주일(Psalm Sunday)용으로 작곡되었다. 공식 초연은 1714년의 종려주일인 3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있었다.
1. 바이마르 시절 작곡한 종려주일 칸타타
종려주일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의 고난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군중들의 환영을 받은 사건을 기념하는 데 있다. 이때 군중들이 종려나무(palm), 즉 가지를 흔들며 예수를 환영했다고 해서, ‘종려주일’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또한 이 나무 가지가 성스럽다고 해서 교파에 따라 ‘성지주일(聖枝主日, ‘주님수난 성지주일’이라고도 함)’이라고도 부른다.
‘종려주일’ 예배에서 부르기 위해 바흐가 작곡한 칸타타로는 〈새벽 별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지〉 BWV 1과 〈하늘의 왕이시여, 어서 오소서〉 BWV 182가 있다. 두 작품 가운데 먼저 작곡된 〈하늘의 왕이시여, 어서 오소서〉는 1714년, 그 해의 종려주일인 3월 25일 당시 바흐가 몸담고 있던 바이마르 궁정 교회에서 초연이 됐다.
바흐가 일하던 바이마르 성당, 1660
2. 희극 오페라 속 춤곡을 연상시킬 만큼 즐거운 칸타타
이 곡은 비교적 가벼운 편성이며, 전체 여덟 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인데, 훗날 라이프치히에서 쓰게 되는 칸타타 작품들에 비해 레치타티보의 비중이 매우 적은 것이 눈에 띤다. 베이스가 부르는 3곡 ‘보십시오. 제가 왔습니다. 두루마리에 저에 대하여 쓰여 있습니다’ 단 한 곡만이 레치타티보인데 그 길이도 1분이 채 되지 않는다.
1곡은 ‘소나타’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기악곡으로, 프랑스 서곡풍의 부점 리듬으로 시작하는데, 예수를 태운 나귀의 걸음걸이를 묘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2곡 ‘하늘의 왕이시여, 어서 오소서’는 4부 합창의 노래이다. 돌림 노래처럼 모방 기법을 통해 펼쳐지는데, 예수를 기다리고 또 환영하는 군중들의 합창으로 볼 수 있다. 이어서 베이스가 예수의 목소리를 빌어 3곡 ‘보십시오. 제가 왔습니다. 두루마리에 저에 대하여 쓰여 있습니다’를 레치타티보로 읊조린다. 이 부분의 가사는 시편 40편 7~8절에 해당한다.
지오토 디 본도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4곡부터 6곡까지는 모두 아리아인데, 각 독창자들이 저마다 특정 악기 반주를 동반한다. 즉, 4곡 베이스의 아리아 ‘전능한 사랑(Starkes Lieben)’에는 바이올린이, 5곡 알토의 아리아 ‘구세주 발아래 엎드려(Leget euch dem Heiland unter)’에선 리코더가, 6곡 테너의 아리아 ‘예수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저를 당신의 여정에 따르게 하소서(Jesu, laß durch Wohl und Weh)’에서는 저음 악기 첼로가 성악을 받쳐 준다. 이 세 곡의 아리아는 한 곡 한 곡이 모두 구원자 예수를 향한 신의와 존경, 탄식 등을 다채롭게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베이스 아리아에서는 예수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점진적으로 하행하는 선율로 표현됐고, 알토의 아리아도 “엎드려라”하는 가사를 노래할 때, 낮은 음역으로 내려간다. 테너의 아리아에선 고통스런 탄식의 멜리스마가 펼쳐진다.
이렇게 세 곡의 아리아가 마무리된 후에는 7곡 코랄 ‘예수님, 당신의 수난은 나의 진정한 기쁨(Jesu, deine Passionist mir lauter Freude)’이 4부 합창으로 노래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8곡 합창, ‘이제 기쁨의 예루살렘으로 가자(So lasset uns gehen in Salem der Freuden)’는 앞서 나왔던 2곡 ‘하늘의 왕이시여, 어서 오소서’와 동일한 편성, 동일한 분위기로 시작하는데, 지휘자 존 엘리어트 가디너가 이 마지막 곡을 두고 “당대의 희극 오페라 속 춤곡을 연상시킬 만큼 즐거운 곡”이라고 이야기했을 만큼, 밝은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윌리엄 홀먼 헌트, 〈모들린 탑 위 5월의 아침〉, 1890
https://www.youtube.com/watch?v=va0gzT2jyq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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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타타 12번 - ‘울며, 탄식하며, 근심하고, 두려워하도다’(Weinen, Klagen, Sorgen, Zagen, BWV12)
1. 바이마르 시절 작곡한 ‘기쁨의 주일’ 칸타타
부활절 후 세 번째로 맞는 일요일은 유빌라테 주일(Jubilate Sunday), 즉 ‘기쁨의 주일’이라고 부른다. 이 날을 위해 바흐가 작곡한 칸타타로는 칸타타 12번 〈울며, 탄식하며, 근심하고, 두려워하도다〉, 칸타타 103번 〈너희는 울며 부르짖으리라〉, 칸타타 146번 〈많은 고난을 겪게 되리라〉까지 모두 세 작품이 전해진다. ‘유빌라테-기쁨의 주일’에 이렇게 고통과 눈물에 대한 가사로 된 칸타타를 작곡한 것은 이날 읽는 성경 구절인 요한복음 16장 16절에서 23절에서 근심과 기쁨을 대조시키면서, 만일 믿음이 있다면, 지금은 근심에 싸여있더라도 다시 예수를 보게 되는 날, 크게 기뻐하리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큰 기쁨으로 변화하게 될 근심과 고난에 대해 노래한 바흐의 칸타타 세 작품 중에서 칸타타 12번은 가장 먼저 작곡된 곡으로, 바이마르에서 초연됐다.
성 브렌든 교회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2.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칸타타
모두 일곱 곡으로 구성된 칸타타로, 작품을 여는 신포니아는 협주곡의 느린 악장을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보에가 슬픔의 선율을 처연히 이어가는 가운데, 배경에 깔려 있는 현악기들은 한숨을 쉬듯 천천히 걸어간다.
두 번째 곡인 합창 ‘눈물, 탄식, 근심과 두려움’은 ABA의 다 카포 형식으로 작곡된 노래인데, 특히 A부분은 ‘파’에서 ‘도’까지 반음계로 내려가는 통주저음의 선율이 계속해서 12번이나 반복되면서 비통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한편, 대위법적으로 펼쳐지는 B부분은 A부분에 비해서는 음악적으로 활기가 느껴진다.
세 번째 곡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슬픔을 겪어야 할 것이다’는 알토의 레치타티보로, 사도행전 14장 22절을 가사로 하고 있는데, 이 레치타티보 마지막 부분에서 천천히 상승하는 바이올린 멜로디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가사를 보강해준다.
테너가 노래하는 네 번째 곡 ‘십자가와 면류관은 함께 있는 것이니’는 우아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아리아인데, 거기에는 오보에의 풍부한 선율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다섯 번째 곡 ‘나는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역시 아리아로, 이번에는 베이스가 노래를 하는데, 분위기가 바뀌어 전 곡들에 비해 밝은 것이 특징이다.
여섯 번째 곡인 아리아 ‘믿음을 가져라. 어떤 괴로움도 곧 지극히 작은 것이 되리라’는 다시 테너가 노래한다. “믿음을 가져라”라는 가사가 간단한 바소 콘티누오 반주 위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가운데, 그 뒤로는 트럼펫이 코랄 ‘예수 나의 기쁨(Jesu meine Freude)’의 선율을 연주하고 있다.
마지막 곡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선하다’는 자무엘 로디가스트(Samuel Rodigast)라는 독일 시인이 1674년에 쓴 코랄 멜로디를 가지고 만든 혼성 4성부 합창곡이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만 있다면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간략하게 전달하면서 작품 전체를 마무리한다.
베첼리오 티치아노, 〈예수의 부활〉
https://www.youtube.com/watch?v=4wwMcy4_I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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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타타 80번 -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 BWV80)
(요약)
칸타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기념일을 위해 작곡된 것으로 루터가 작곡한 코랄을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1. 루터의 종교 개혁을 기념하는 칸타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기념하기 위해서 유럽의 개신교에서는 1617년부터 10월 31일을 종교개혁 기념일로 지키고 있는데, 1727년에서 1731년 사이에 작곡한 칸타타 80번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루터의 종교 개혁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된 칸타타이다. 이 작품은 마틴 루터가 작곡한 동일한 제목의 코랄 선율을 중심 선율로 사용했는데, 이 코랄은 개신교의 찬송가에 수록되어, 오늘날까지 널리 불리고 있다.
가족모임에서 음악을 만드는 루터(가운데), 1875년 경 - 이 곡은 루터의 종교 개혁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되었다.
원래 이 작품은 1715년, 바흐가 사순절을 위해 작곡한 칸타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으며, 1727년, 바흐가 라이프치히로 자리를 옮긴 이후, 대대적인 수정을 하게 된다. 당시 라이프치히에서는 사순절에 칸타타를 부르지 않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작품의 주제와 음악 자체를 바꾸는 개작을 하게 되었고, 현재는 원작의 자필 악보는 남아있지 않고, 개작된 작품이 널리 연주된다.
바흐가 근무했던,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토마스 교회
종교개혁을 주제로 삼고 있는 이 칸타타는 전반적으로 승리를 다짐하는 장엄하고 강렬한 음악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루터의 코랄 〈내 주는 강한 성이요〉가 곡 전반에 등장하면서 종교 개혁의 메시지를 강조한다.
루터가 쓴 코랄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악보
2. 루터의 코랄을 바탕으로 한 웅장한 칸타타
전체가 여덟 곡으로 이루어진 칸타타 80번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장엄한 4성부 코랄 합창으로 시작한다. 관현악 전주 없이 테너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고 먼저 노래하면, 합창단이 등장하면서 장엄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칸타타의 시작을 알리는 합창에 이어지는 두 번째 곡은 소프라노와 베이스를 위한 이중창으로 남녀가 마치 대화를 하듯이 말을 주고받는다. “우리 힘으로 악마를 이길 수 없으니”라고 하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싸울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세 번째 곡과 네 번째 곡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찬미와 감사의 노래로 베이스의 레치타티보 ‘기억하라, 피 흘린 예수의 거룩한 사랑을’에 이어서 소프라노가 간절한 목소리로 아리아 ‘나의 마음에 오소서, 주 예수여’를 부른다.
다섯 번째 곡은 루터의 코랄 선율이 등장하는데, 승리를 확신하는 합창으로, 결연하고 장엄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이어서 ‘그리스도의 피로 얼룩진 깃발 아래에 서라’라는 테너의 레치타티보, 그리고 신도들을 향한 축복의 이중창, ‘입을 열어 기도하는 자에게 축복 있으리로다’가 나온 후, 칸타타의 마지막은 루터의 코랄로 장식한다. 루터 코랄의 마지막 절의 가사를 사용한 이 노래는 악마들이 나의 신체와 명예, 가족을 뺏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길 수 없으리라는 굳은 의지와 종교적 신념을 드러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7i2z7prCy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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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타타 - ‘나는 만족하나이다’(Ich habe genug BWV82a)
(요약)
바흐의 칸타타 〈나는 만족하나이다〉 BWV82a는 몇 안 되는 독창 칸타타로, 원곡은 베이스 독창곡이나 오늘날에는 1731년에 개작된 소프라노 독창을 위한 버전이 널리 연주된다.
1. 마리아 축일에 작곡된 독창 칸타타
바흐의 칸타타 〈나는 만족하나이다〉 BWV 82a는 같은 제목의 칸타타 82번을 개작한 작품이다. 원곡은 베이스 독창 칸타타로, 1727년 초에 작곡되어 그 해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에 처음 연주되었다. 유태인들에게는 여성이 아이를 출산한 후 40일 만에 교회에 가서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주님 봉헌 축일은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후 처음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찾은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슈테판 로흐너, 〈아기 예수의 성전 봉헌〉
이 곡은 바흐의 교회 칸타타 중에서 합창 없이 독창으로만 전곡이 펼쳐지는 몇 안 되는 독창 칸타타일 뿐 아니라, 바흐가 잘 쓰지 않던 베이스 독창곡이었다. 베이스 독창으로만 부르는 바흐의 칸타타로는 이 곡보다 1년 앞선 1726년에 완성한 〈나는 기쁘게 십자가를 지겠노라〉 BWV56이 있는데,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두 곡은 모두 죽음을 통해서 구원과 안식을 얻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치오, 〈아기 예수의 성전 봉헌〉
2. 소프라노를 위한 개작
베이스 독창을 위한 〈나는 만족하나이다〉를 완성한 후, 바흐는 이 곡을 다양한 버전으로 개작했다. 1731년에는 소프라노 독창을 위한 악보가, 그리고, 1735년에는 메조소프라노를 위한 악보가 나왔고, 1745년 이후에는 원곡인 베이스를 위한 독창 칸타타를 보완해서 새롭게 선보였다. 이 칸타타는 이처럼 바흐가 오랫동안 꾸준히 관심을 갖고 수정과 개작을 거듭한 작품으로, 여러 가지 악보 중에서 오늘날에는 원곡인 베이스 독창과 첫 번째 개작인 소프라노 독창이 가장 널리 연주된다.
특히 1731년에 개작된 소프라노 독창 버전은 바흐 작품 번호로는 82a로 분류되어 있으며, 여성의 음역에 맞추어 조성이 c단조에서 e단조로 높아졌고, 악기 편성에서도 원곡과 차이를 보인다. 원곡의 악기 편성은 오보에가 베이스 독창자와 주고받는 중심 선율을 담당하고, 2성부 바이올린과 비올라, 그리고 바소 콘티누오로 이루어졌으나, 소프라노 독창 버전에서는 여성의 높은 음역에 맞게 다른 악기는 동일하지만 오보에 대신 플루트를 독주 악기로 사용했다.
칸타타는 전체 다섯 곡으로, 서곡 없이 세 곡의 아리아와 두 곡의 레치타티보가 교대로 등장하는데, 특히 세 번째에 나오는 아리아 ‘자 잠들어라, 피로한 눈이여’가 유명하다. 이 아리아는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소곡집》에 별도로 수록되어 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리스도(이스탄불에 있는 모자이크)
< 작품 구성 >
ㆍ 1곡, 아리아 ‘나는 만족하나이다’
ㆍ 2곡, 레치타티보 ‘나는 만족하나이다. 내 소망은 이것 뿐’
ㆍ 3곡, 아리아 ‘자 잠들어라, 피로한 눈이여’
ㆍ 4곡, 레치타티보 ‘주여, 아름다운 죽음의 시간은 언제이나이까’
ㆍ 5곡, 아리아 ‘나는 죽음을 기다리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AJBcX0Q2YI
https://www.youtube.com/watch?v=ZwIUQvJAU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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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타타 132번 - ‘길을 예비하라’(Bereitet die Wege, bereitet die Bahn, BWV132)
1. 악보의 유실 위기를 극복
칸타타 132번은 1715년, 바흐가 바이마르 궁정의 악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완성되었고 1715년 12월 22일 대림절 마지막 주에 바이마르에서 초연되었다. 칸타타의 제목인 〈길을 예비하라〉는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의 메시지로, 선지자인 세례자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면서, 사람들을 향해 구세주인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신은 그저 길을 준비하러 왔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곡된 칸타타 132번은 성탄절 한 달 전부터 시작되는 기독교 절기인 대림절에 연주될 목적으로 작곡되었다.
니콜라스 푸생, 세례를 받는 예수 그리스도(1655-57)
이 칸타타는 악보가 전해져 내려오는 과정에서 마지막 곡이 분실되었다. 당시 악보를 그리던 바흐가 종이 한 장에 다섯 곡을 다 채우고 나자 마지막 코랄만 다른 종이에 따로 적었는데, 나중에 이 악보가 분실되면서 다섯 곡만 전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후에 음악 학자들이 137번 칸타타의 마지막 코랄이 이 곡의 마지막 코랄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혀내고는 없어진 악보 찾기에 나섰지만 실패했고, 이후로는 137번의 칸타타를 조옮김해서 마지막 곡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로 통용되고 있다.
2. 메시아를 예고하는 세례자 요한의 메시지
칸타타는 전체 6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곡은 세례자 요한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프라노의 아리아 ‘길을 닦고 큰 길을 예비하라’로, 소프라노와 오보에가 주고받는 선율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특히 ‘큰 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음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길고 장식적인 콜로라투라 선율을 사용했다.
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서 성도들이 가져야 할 마음 자세에 대해 설명하는 테너의 레치타티보가 등장한 후, 베이스의 아리아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가 나온다. 성도들을 향해 신앙의 확신을 묻는 예수 그리스도의 물음을 대변하는 곡으로, 흔히 베이스 연주자가 예수 그리스도 역을 맡는 오라토리오의 관습을 따라 베이스가 노래한다.
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질문에 대답하는 성도들의 레치타티보 ‘나의 하나님이여, 나는 당신께 모두 고백합니다’가 등장한 후, 알토 독창자가 다섯 번째 아리아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여, 구세주로부터 무엇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라’를 노래한다.
바이마르에 있는 바흐 동상
독일 지도 속 바이마르(Weimar)의 위치
마지막 곡은, 자필 악보가 남아있지 않지만 후대 작곡가들에 의해 추가된 마지막 코랄 ‘당신의 은혜로 우리를 살리소서’로 1분 내외의 짧은 곡이다. 칸타타를 마무리하는 이 코랄은 모든 이들의 신앙 고백을 담아 장중하게 펼쳐진다.
요한 쾨니크, 세례를 받는 예수 그리스도(1637)
https://www.youtube.com/watch?v=iyotv-Bg0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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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타타 86번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Wahrlich, wahrlich, ich sage euch, BWV86)
(요약)
바흐의 교회 칸타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BWV 86은 부활절 후 다섯 번째 일요일을 위해 작곡되었다. 초연은 1724년 5월 14일 라이프치히에서 이루어졌다. 알토, 테너, 베이스 독창자와 4부 합창, 그리고 두 대의 오보에 다 모레와 제1바이올린, 제1바이올린, 비올라, 바소 콘티누오의 편성이다.
1. 라이프치히 시절 ‘로카테’ 칸타타
부활절 후 다섯 번째로 맞는 일요일을 라틴어로는 ‘도미니카 로가테(Dominica Rogate)’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청원 주일’, 또는 ‘기원일’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이 날, 루터교 예배에서 연주하기 위해 바흐가 작곡한 칸타타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BWV 86과 〈이제까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기도한 적이 없으니〉 BWV 87이 있는데, 각각 라이프치히 시절인 1724년과 1725년에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먼저 작곡된 칸타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는 신약 성경 요한복음 16장 23절에 나오는 예수의 말이다.
바흐가 라이프지히에서 일했던 토마스 교회 내부, 1880
2. 기도와 믿음을 강조한 칸타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의 가사로 시작하는 첫 곡은 베이스의 아리아로, 독창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라는 가사를 세 번이나 되풀이하며 ‘예수의 목소리로(Vox Christ)’, 확신에 찬 어조로, 음악을 이끌어간다.
니콜라스 마스, 〈기도하는 노파〉, 1655년경
이어지는 두 번째 곡 알토의 아리아 ‘나는 믿음 안에서 장미를 모을 것이다’는 첫 곡에 대한 신자의 답변을 노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장미 가시가 지금은 찌를 지라도, 믿음을 잃지 않고 기도하겠노라’는 가사가 차분히 노래되는 가운데, 이와는 대조적인 오블리가토 바이올린의 화려한 움직임이 음악에 생기를 더해준다.
세 번째 곡 ‘그리고 영원한 은총의 하느님께서’는 코랄이다. 바흐의 칸타타에서 이렇게 작품 중간에 코랄이 들어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편성 역시 4부 합창이 아니라, 소프라노 독창자 단 한 명이 두 대의 오보에 다 모레와 바소 콘티누오 반주를 배경으로 코랄 정선율을 노래한다.
구에르치노, 〈라자로의 부활〉
이어지는 네 번째 곡과 다섯 번째 곡은 테너가 부른다. 독창자는 네 번째 곡 레치타티보 ‘하느님은 세상이 하는 것처럼 하지 않으시니’에서는 단순한 화성 위에서 ‘신이 약속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념을 짧게 읊고, 같은 맥락의 가사로 된 다섯 번째 곡 아리아 “신은 분명 우리를 도우시니”로 신속하게 넘어간다. 다섯 번째 아리아 ‘신은 분명 우리를 도우시니’에서는 처음 가사 ‘신은 분명 우리를 도우시니(Gott hilft gewiß)’에 붙은 다섯 음 구성의 짧은 모티브가 노래와 제1바이올린 연주를 통해 계속해서 반복, 발전된다. 이런 음악적 장치를 통해 바흐는 신이 도우리라는 믿음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마지막 여섯 번째 곡 ‘희망은 때를 기다리니’는 코랄이다. 짧은 4부 합창으로써, 작품 전체를 마무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G4G2Run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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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타타 23번 - ‘그대는 진실한 신이며, 다윗의 아들’(Du wahrer Gott und Davids Sohn BWV23)
(요약 )
칸타타 〈그대는 진실한 신이며, 다윗의 아들〉은 1723년에 작곡되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주는 예수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을 계기로 바흐는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음악 감독 오디션을 통과할 수 있었다.
1. 쾨텐 마지막 해에 완성
이 작품은 바흐가 쾨텐에 머물던 마지막 해인 1723년에 작곡되었으며 바흐가 라이프치히 대성당의 음악 감독을 뽑는 오디션에서 연주할 목적으로 완성한 작품이기도 하다. 결국 이 곡으로 인해 바흐는, 라이프치히 대성당의 음악 감독 자리에 오르게 된다.
바흐를 쾨텐 궁정악장으로 임명했던 레오폴트
〈그대는 진실한 신이며, 다윗의 아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칸타타는, 사랑에 대해 노래한 고린도전서 13장과 누가복음 18장의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십자가 고난을 앞둔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한 맹인과의 만남을 스토리로 하고 있다.
바흐가 쾨텐에서 지내던 집과 그 앞의 바흐 동상
2. 네 곡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칸타타
노년의 바흐에게 최고의 명예를 가져다 준 작품이기도 한 이 칸타타는 전체가 네 곡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칸타타로 이루어져 있다.
앞을 보지 못한 채 불행하게 살아가던 맹인은 예수가 지나가는 길목을 지켜 서 있다가 “다윗의 아들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친다. 소프라노와 알토의 이중창으로 펼쳐지는 이 첫 번째 아리아는 두 개의 선율이 카논 풍으로 얽혀 있다.
두 번째 곡은 멈춰선 예수 앞에 무릎 꿇은 맹인의 레치타티보와 코랄 합창으로, 맹인과 함께 길가에 늘어선 군중들은 “구세주여, 지나가 버리지 마옵소서. 당신의 축복을 받기 전에는 당신을 놓지 않겠나이다”라고 고백하면서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를 붙든다.
맹인과 군중들의 애타는 목소리를 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맹인의 눈을 치료해 주기 위해 돌아서고 예수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에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되찾아 준다. 기적을 직접 눈으로 본 군중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를 합창하는데,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합창곡인 ‘모든 사람들의 눈이 되신 전능하신 주여’는 후렴 부분이 반복되는 론도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합창 사이사이에 테너와 베이스의 이중창이 등장하는 것은 바흐가 쾨텐에서 작곡한 세속 칸타타에서 즐겨 사용하던 방법이기도 하다.
바흐의 대부분의 칸타타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마지막 작품은 코랄 선율을 사용한 대규모 합창곡, ‘세상의 죄를 지신 하느님의 어린 양이여’가 장식한다. 오케스트라 반주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코랄 합창으로 아다지오로 시작해 점점 빨라지면서 피날레를 장식한다.
니콜라 푸생, 〈예리코의 맹인을 치유하는 예수님〉, 1650
< 작품 구성 >
ㆍ 1곡, ‘다윗의 아들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ㆍ 2곡, ‘구세주여, 지나가 버리지 마옵소서. 당신의 축복을 받기 전에는 당신을 놓지 않겠나이다’
ㆍ 3곡, ‘모든 사람들의 눈이 되신 전능하신 주여’
ㆍ 4곡, ‘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여’
https://www.youtube.com/watch?v=jpceQSiC1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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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타타 4번 - ‘그리스도는 죽음의 포로가 되어서도’(Christ lag in Todes Banden BWV4)
(요약)
바흐의 칸타타 〈그리스도는 죽음의 포로가 되어서도〉는 1724년경 라이프치히의 부활절 예배를 위해 작곡된 곡으로 알려져 있다. 마틴 루터의 코랄이 사용되었다.
1. 루터의 코랄을 바탕으로 작곡
신앙심이 독실했던 바흐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부활을 주제로 한 음악을 많이 작곡했는데, 특히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가 마지막까지 깊은 성찰을 통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주제였다. 바흐의 칸타타 〈그리스도는 죽음의 포로가 되어서도〉는 1724년 라이프치히에서 작곡되었는데, 당대에 유행하는 코랄을 칸타타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는 코랄 변주 스타일이 이 작품을 통해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에 사용된 코랄은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작사한 코랄로, 칸타타와 같은 제목의 〈그리스도는 죽음의 포로가 되어서도〉이며, 바흐는 이 코랄의 선율을 주요 모티브로 삼고, 7절까지의 가사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전체적인 칸타타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코랄 선율의 차용에서 한 걸음 나아가, 다양한 대위적 기법을 사용해 각각의 선율을 체계적이고 통일성 있게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더 큰 음악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1533년)가 작사한 코랄로 만들었다.
가족모임에서 음악을 만드는 루터, 1875년 경
2. 독창과 합창이 어우러진 웅장한 구성
이 곡은 관현악 서곡을 포함해 모두 여덟 곡의 아리아와 합창, 레치타티보로 이루어졌으며, 현악기로만 연주되는 이탈리아 풍의 서곡이 연주된 후, 이어서 루터의 코랄 1절의 가사를 사용한 첫 번째 합창, ‘그리스도는 죽음의 포로가 되어서도’가 등장한다. 이어지는 소프라노와 알토의 이중창 ‘죽음에 이길 자가 없으니’는 코랄 2절 가사를 바탕으로 한 곡으로 정해진 죽음의 길을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비통하게 그려낸다.
루터 코랄의 3절 가사를 사용한 네 번째 곡,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은 테너가 이끌어가는 아리아로,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할 것을 믿으면서 ‘무덤에는 죽음의 시체만이 남을 뿐’이라고 노래하는 부분에서 곡은 절정에 달한다.
루벤스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티치아노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다섯 번째 합창 ‘그것은 이상한 싸움이었다’는 테너의 아리아를 다시 한 번 확신하는 노래로, 르네상스의 모테트를 연상시키는 단출한 기악 편성과 4성부의 합창이다. 여섯 번째 곡은 루터 코랄 중에서 ‘참다운 유월절의 어린 양’을 사용한 것으로, 유대인들의 유월절 제례의 전통과 엄숙한 분위기가 잘 살아있는 곡이며, 마지막 일곱 번째 곡과 여덟 번째 곡인 ‘이제 축하하리, 이 거룩한 축제를’과 ‘우리들은 먹고, 그리고 살아가는, 씨 없는 빵의 근원’은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노래하며 칸타타를 마무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bH15Bm-M9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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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타타 156번 - ‘한 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노라’I(ch steh mit einem Fuß im Grabe, BWV156)
1. 바흐와 그 가족의 슬픔이 반영된 칸타타
이 작품은 예배용으로 작곡된 교회 칸타타지만, 바흐와 그 가족의 슬픔이 반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바흐는 무척 가정적인 사람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어린 나이에 양친을 모두 잃고 형의 집에서 자라난 그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고, 아내와 자식들에 대해서 극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스물두 살에 맞이한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는 젊은 나이에 네 명의 아이들만을 남겨 놓은 채 바흐의 곁을 떠났다. 그 빈자리가 너무나 힘들었던 바흐는 마음의 안정을 위해 곧 두 번째 부인, 안나 막달레나를 맞이했는데, 열다섯 살이나 되는 나이 차에도 부부 사이가 매우 좋아서, 바흐는 다시금 가정 안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행복도 잠시, 1726년, 6월 바흐와 안나 막달레나 사이에 난 첫 번째 아이 크리스티아나 소피아가 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라이프치히 북쪽〉, 1736 - 문화예술 역사가이자 바흐 초상화 전문가 Teri Noel Towe은 위 그림에서 안나 막달레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왼쪽 그림을 확대하면, 바흐의 두 번째 부인, 안나 막달레나(추정)가 보인다.
이듬해엔 새로 태어난 아기도, 출생 3일 만에 운명을 달리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다음해인 1728년 가을에는 이들 사이의 세 번째 아이인 크리스티안 고틀리프가 네 살을 채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연이은 불행에 바흐 부부는 큰 충격을 받았고, 특히 당시 만삭이었던 안나 막달레나는 불안 속에 극도로 예민해졌다. 새로 태어난 아이 역시, 몸이 유난히 약해 세례를 교회가 아닌, 집에서 받아야 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침울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바흐가 써낸 곡이 바로, 피칸더가 쓴 종교시에 음악을 붙인 칸타타 156번 〈한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노라〉이다.
2. 삶과 죽음의 문제 앞에서 겸허하게 작곡된 칸타타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 인간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오로지 신께 맡긴다는, 겸허한 내용의 작품이며 총 여섯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1곡 신포니아는 ‘아리오소’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는 선율이다. 2곡은 테너의 아리아와 소프라노의 코랄로 이루어져 있다. 아리아 ‘한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노라’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코랄 〈저로써 행하십시오, 하느님, 당신의 선하심에 따라서〉가 절묘하게 삽입되어 있다. 3곡은 베이스의 레치타티보 ‘저의 두려움과 요구, 제 삶 그리고 죽음’은 바소 콘티누오 위에서 애절하게 노래된다. 4곡 알토의 아리아, ‘주님, 당신이 뜻하시는 것에 저는 만족합니다’에서는 분위기가 전환된다. 오보에 선율은 활기차고 리듬마저 가벼워 신에게 의지한 자의 홀가분한 마음이 읽힌다. 이어 베이스가 부르는 짧은 레치타티보 5곡, ‘제가 아프지 않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뒤에는, 마지막 곡 코랄 ‘주님, 제 삶과 죽음을 당신이 뜻하신 바와 같이 그렇게 하소서’가 담담하게 합창으로 노래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uolOHWfES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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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타타 61번 -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여’(Nun komm, der Heiden Heiland BWV61)
(요약)
칸타타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여〉는 1714년 바이마르에서 작곡되어 대림절 첫째 주에 연주되었다. 성탄절이 오기 전,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바흐의 초기 칸타타 중 하나이다.
1. 대림절 기간에 연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인 대림절은 성탄절을 맞이하기 전 4주 동안 이어지는데, 이 기간 동안은 주로 메시아와 관련된 내용의 칸타타가 연주된다. 바흐의 칸타타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여〉 BWV61은 대림절 첫 번째 주일을 위한 음악으로 1714년 바흐가 바이마르에 머물던 시기에 작곡되었다.
이 칸타타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기독교 찬송가인 〈오소서, 구세주여(Veni Redemptor Gentium)〉를 마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코랄을 주제로 작곡되었는데, 이 코랄은 당시에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불리던 친숙한 선율 가운데 하나였다. 전체적인 가사는 에르트만 노이마이스터(Erdmann Neumeister)가 붙였는데, 개신교 목사였던 노이마이스터는 성경에 기초한 200여 곡의 칸타타 가사를 작사했다.
칸타타의 작사가, 에르트만 노이마이스터
2. 메시아를 기다리는 기쁨을 노래
칸타타는 서곡을 시작으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가 각 2곡, 그리고 피날레를 장식하는 코랄로 이루어져 있다. 서곡은 독일의 코랄 선율과 프랑스풍의 서곡 양식을 결합시킨 형식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서곡의 주제 선율은 루터가 작곡한 코랄 ‘그녀의 잉태 소식에 세상이 놀란다’를 따르고 있으며, 관현악의 반주는 우아한 부점 리듬이 이어지는 프랑스 서곡의 분위기를 잘 나타낸다.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1437-46)
서곡에 이어 테너 레치타티보로 구세주의 탄생을 예고한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기쁨과 기대를 노래하는 아리아 ‘오소서 예수여, 당신의 교회로’가 이어진다. 이후에는 요한계시록을 가사로 사용한 베이스의 레치타티보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가 연주된다. 이 곡은 마리아를 향한 하느님의 목소리로, 그녀가 곧 예수를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을 알리고 나면 마리아의 답가처럼 소프라노의 아리아 ‘네 마음을 온전히 열라, 주가 들어가리니’가 이어지는데 이 곡은 칸타타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꼽힌다.
엘 그레코, 수태고지(1570~1575)
마리아의 아리아 이후에는 합창단이 ‘아멘’으로 응답하면서 장엄한 코랄 선율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칸타타의 피날레에서 사용된 코랄 합창은 훗날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바흐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음악적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_lobKhBXU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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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타타 1번 - ‘새벽별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지’(Wie schön leuchtet der Morgenstern BWV1)
(요약 )
바흐의 교회 칸타타 〈새벽별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지〉는 20세기의 독일 음악학자 볼프강 슈미더에 의해 바흐 작품 목록(BWV: Bach-Werke-Verzeichnis)의 1번으로 정리된 작품이다. 1725년, 기독교 교회력으로 수태고지 축일인 3월 25일에 초연되었다. 코랄 칸타타에 속하며, 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독창자와 4부 합창이 노래하고, 기악에는 제1, 2 호른과 제1, 2 오보에, 제1, 2 바이올린과 비올라, 그리고 통주저음의 악기들이 어우러지면서 종교적 축일의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1. 바흐 작품 목록 1번의 교회 칸타타
바흐의 칸타타는 교회 칸타타와 세속 칸타타로 나뉘며, 그 중 현재 200여 곡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칸타타는 바흐의 신앙적 울타리인 루터교 예배를 위한 음악으로, 바흐의 작품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바흐 서거 200주기를 맞아 1,000곡이 넘는 바흐의 작품들을 정리하게 된 볼프강 슈미더도 작품 목록의 가장 앞부분에 교회 칸타타 장르를 배치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작품으로는 19세기 중반 바흐 협회가 바흐 작품 출판 사업을 시작하며 내놓은 작품집 1권의 첫 번째 곡이었던 칸타타 〈새벽별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지〉를 선택했다.바흐 작품 목록의 가장 첫 번째 곡이지만, 이 작품이 바흐가 쓴 최초의 교회 칸타타는 아니다. 이 작품은 바흐에게 칸타타 창작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라이프치히 시절 초기에 작곡되었으며, 1725년 3월 25일 수태고지 축일에 초연되었다.
필립 니콜라이의 코랄 찬미가 〈새벽별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지〉 초판(1599)
2. 수태고지의 기쁨을 노래한 코랄 칸타타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중심으로 구성한 교회력에 따라 연중 다양한 축일들을 기념한다. 그 중 수태고지 축일은 예수 탄생 9개월 전, 하나님이 대천사 가브리엘을 파견하여 동정 마리아에게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리라고 알려준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따라서 이 날 예배를 위해 작곡된 칸타타인 〈새벽별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지〉는 잉태의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담고 있다.
Paolo de Matteis, 〈수태고지〉, 1712
전체 6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코랄 칸타타로, 루터교 시인이자 작곡가였던 필립 니콜라이가 1599년에 쓴 코랄 찬미가 〈새벽별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지〉를 중심으로 작곡되었다. 1곡 합창 ‘새벽별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지’는 밝고 즐거운 분위기로 장대하게 펼쳐지는 코랄 판타지이다. 3곡 아리아 ‘당신 신성한 천상의 불꽃이여, 당신을 동경하는 이 가슴을 채워주소서’는 소프라노의 노래가 오보에 다 카치아의 오블리가토 선율과 함께 아름다운 앙상블을 이룬다. 한편, 테너가 부르는 아리아 5곡 ‘우리의 입과 현의 소리로’는 독주 바이올린과 현악 합주로 반주되는데, 신에 대한 감사를 우아하고 가벼운 리듬 위에서 노래한다. 마지막 6곡 ‘나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는 4성부 코랄 합창으로, 오케스트라 투티가 각 성부를 중복하는 가운데 제2호른이 독립적으로 장식적인 음형을 연주하여 축제적인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린다.
지휘자 안드레아스 한트케가 지휘하는 칸타타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https://www.youtube.com/watch?v=7fNaMOtVU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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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타타 161번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Komm, du süße Todesstunde BWV161)
(요약)
칸타타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는 바흐가 바이마르에서 작곡한 칸타타로, 1715년에 작곡되었다. 알토, 테너 솔리스트와 합창으로 구성된 이 칸타타는 서곡 대신 코랄을 편곡한 알토 독창으로 시작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1. 바이마르 시절 초기에 작곡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칸타타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는 그가 바이마르 궁정의 예배당에서 일하던 시절에 작곡한 초기 칸타타 중에서도, 서정적인 선율과 가사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 곡은 1715년에 작곡되어, 1716년 9월 27일에 첫 선을 보였는데, 삼위일체 주일 이후 16번째 일요일이었던 이 날에는 통상적으로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내용인, 예수가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를 낭독하는 것이 관례였다. 바흐는 이 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영원한 천국을 노래한 칸타타를 작곡했으며 바이마르의 유명한 시인인 잘로몬 프랑크의 시 구절을 가사로 사용했다.
2. 코랄 선율을 모티브로 사용
칸타타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는 알토와 테너 독창과 합창까지 모두 여섯 곡으로 구성되었다. ‘내 소원은 축복된 죽음’이라는 제목의 코랄 선율을 작품 전체의 주요 모티브로 사용해서, 음악적으로도 통일성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악기로 연주하는 서곡이나 프렐류드 대신 코랄 선율을 편곡한 알토와 독창으로 곡이 시작되는데, 바이마르 시절 초연 당시에는, 이 곡을 알토의 노래 대신 오르간으로 연주하면서, 서곡의 역할을 맡게 했다가, 1735년 라이프치히에서 이 곡을 재연했을 때는, 알토 독창자가 노래로 부르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라이프치히 시대의 관습이 이어지면서, 오르간보다는 알토 또는 소프라노의 독창으로 노래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통용된다.
이 칸타타는, 바이마르에서는 물론이고 20년이 지난 뒤에 라이프치히에서 연주했을 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당시에 만들어진 전체 악보와 각 악기의 파트 악보들은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 연주되고 있는 악보들은 손으로 옮겨 적은 필사본에 의존해 복원한 것이다.
두치오의 〈라자로의 부활〉
< 작품 구성 >
ㆍ 1곡, 알토의 아리아와 코랄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ㆍ 2곡, 테너 레치타티보 ‘이 세상이여, 그대의 욕심은 무거운 짐’
ㆍ 3곡, 테너 아리아 ‘나의 소망은 구세주를 아는 것’
ㆍ 4곡, 알토 레치타티보 ‘결말이 왔네. 이 세상이여 안녕’
ㆍ 5곡, 합창 ‘이것이 주의 뜻이니’
ㆍ 6곡, 코랄 합창 ‘내 소원은 축복된 죽음’
https://www.youtube.com/watch?v=4LHk2i-TS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