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씨상계보서裵氏上系譜序
나라에는 국사(國史)가 있고 집안에는 가승(家乘)이 있으니 그 뜻은 한가지이다. 만약 세대가 아득히 멀어져서 문헌으로 징험할 수 없다면 국사는 궐문(闕文)이 있을 것이다. 나라에 있어서도 오히려 그러한데 더구나 사가에서 선조의 세계에 대해서 모략에 의존하여 근거 없이 조작하고도 속임과 욕됨이 되는 줄 모르고 끝내 인륜을 어지럽히고 은덕을 거스르는 데로 돌아가게 해서야 되겠는가?
우리 배씨는 고려 초 무열공(武烈公) 이하로부터 네 파로 나누어졌는데, 옛날에는 족보를 기록하는 법이 없어서 그 계통과 세대를 상세히 알 수 없다. 조선시대 영조 갑신년(1764)에 이르러 증빙할 문서가 나와서 비로소 대동보첩(大同譜牒)을 편수하니, 이때는 우리 집안의 춘강(春江) 공이 실제로 주동하고 네 파의 전배(前輩)가 뜻을 모으고 힘을 함께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계의 연대와 소목(昭穆)에 차이가 조금 있었기에 이견을 세워 참여하지 않은 이가 있었다. 60여년이 지난 정해년(1827, 순조27)에 각 파의 선부형(先父兄)이 다시 실제 사적에 근거하고 대략 수정하여 힘써 널리 합해지는 데로 귀결시켜 마침내 책을 완성하게 되니, 실로 우리 종중의 가장 원만하고도 합동하였던 일이다.
뒤에 백 년이 지나서 또 임술년(1922)의 대동보를 편찬하였는데 한결같이 갑신년(1764, 영조40)의 구본을 따라 지난날 이견을 세운 여러 집안이 여전히 분열되도록 하였으니 실로 유감이었다. 근년에 이제껏 일어난 적이 없던 몹시도 큰 변고가 있었으니, 망령된 한 사람이 사사롭게 거짓으로 기록한 것을 분성(盆城) 일가가 잘못 믿고서 상계(上系)를 고쳐서 찬술하여 첨삭한 것이 적지 않고, 조상을 바꾸고 고친 것이 일정함이 없어서 전도 착란함이 끝이 없었다. 그런데 무인년(1938)에 이를 함부로 인쇄하여 널리 배포하였고, 지금 또 이 판본에 따라 이어서 편수하려고 한다.
이에 전국의 여러 종친들이 분노하여 궐기해서 한목소리로 함께 성토하였지만 그 집은 끝내 고집을 부려 뜻을 돌리지 않으니 따지고 바로잡는 거사가 중단될 수 없었다. 이에 대동보를 편수하자는 논의를 내었지만 세상은 혼란하고 일이 거창해서 간행을 도모하기 어려워 우선 상계보(上系譜) 한 책을 편수하여 훗날 증명할 바탕을 갖추니, 이는 보가(譜家)의 변례(變例)이기는 하지만 부득이한 사정에서 나왔다. 혹자들 중에는 “지금의 이 상계보가 갑신년의 구본에 위배되어 우리 후인 된 입장에서 매우 미안한 점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하니, 여기에는 할 말이 있다.
대개 갑신년 이전에 각 파의 선조들은 모두 상계가 분명하지 못한 점을 깊이 한스러워했는데 이때에 증빙할 문서가 생기자 재빨리 대동보를 만든 것은 실로 선조들이 남긴 뜻을 체현한 것이고, 정해년(1827, 순조27)에 사실에 근거하여 수정해서 원만하게 두루 합하도록 한 것은 실로 갑신년 선배들의 유지를 체현한 것이다. 만약 갑신년의 선배들에게 크게 미안한 뜻이 있었다면, 이때 우리 집안 선부형은 춘강 옹의 손자와 증손 세대였으니, 모두 집안의 후손으로서 어찌 즐겁게 참여하여 일을 함께했겠는가? 여기에서 의리의 공정함과 선조를 높이고 종족을 도타이 하는 의리가 큰 것이 됨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계보는 대체로 정해본을 기준으로 삼아 실로 정해년의 여러 부형들의 남긴 뜻을 체현하였으니 어찌 위배된다고 하겠는가?
아! 아득히 먼 옛날의 상계가 다 부합하지 못한 것은 형세 상 본디 그러한 것인데, 이로 인하여 의심을 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미혹되어 끝내 오늘날의 저 같이 망령되게 짓는 이가 있을 것이니 훗날의 근심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감히 상계를 책의 첫머리에 받들어 싣고 각 파의 옛 가승(家乘)에 의거하여 각각 중조(中祖)를 세우니, 이는 대개 먼 것에는 소략하고 가까운 것에는 상세하며, 전날에 징계하여 훗날에 삼가는 뜻이다. 지금으로부터 우리 성씨는 다시는 의심스러운 것을 전하여 의혹을 만들지 말고, 모두 같은 조상의 자손임을 알아 돈독하고 화목한 정을 길이 드리운다면 실로 우리 종족의 백 대의 다행일 것이다.
무열공(武烈公) : 고려개국 일등공신 배현경(裵玄慶, ?∼936)의 시호이다.
춘강(春江) 공 : 배강(裵絳, 1694∼1776)을 말한다. 자는 심지(深之), 호는 춘강(春江)이다.
소목(昭穆) : 사당에 신주를 모시는 차례이다. 시조를 중앙에 모시고 짝수의 대는 소(昭)라 하여 왼쪽에 모시고 홀수의 대는 목(穆)이라 하여 오른쪽에 모시는데, 여기에서 비롯하여 세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분성(盆城) : 경상남도 김해(金海)의 옛 이름이다.
백저 배동환(白渚 裵東煥) 著, 김홍영·이미진 역, 학민출판사(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