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에 [오은영의 금쪽같은 내 새끼]에 솔루션 실패가 의심될 정도로 심각한 폭력성을 보였던 중 1 친구의 사연이 소개됐다. 2주째 방영되면서 약간의 변화를 보인 듯했지만 솔루션을 거부하고 집을 나가기도 하고, 선을 넘는 폭력에 제작진이 급히 투입되는 상황도 여러 차례 발생하고, 급기야는 119를 부르기도 했다.
엄마를 때리는 아들이라니! 아들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력하기만한 엄마의 몸부림이 안쓰러웠다. 그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던 차에 세 번째 사연이 방영됐다. 6주 만이었다. 프로그램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아이가 거칠게 반응하면 할수록 전문가는 어떻게 멈추게 할까가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더 주목했다. 그녀가 규명한 근본원인은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유기 불안이었다.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찾아오면 눈썹도 뽑고, 손발톱도 물어뜯었다. 전문가의 말을 듣고 보니 더욱 잘 보였다. “아, 네가 많이 불안했구나…”
할머니를 밀어내는 것도 엄마를 데려가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이었고, 엄마나 할머니의 말을 아예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내적인 이유였다. 훈육자체가 불가능해졌고 아이는 본능만 남은 맹수처럼 변해갔다.
전문가의 솔루션은 의외로 간단했다. 엄마가 아이에게 내어준 통제권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아들에게 옳고 그름을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엄마가 그 위치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무너진 권위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엄마의 고단한 싸움이 시작됐다. 외롭고도 두려운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자신이 그 싸움을 멈추면 아이를 도울 길은 영영 없어지는 것이므로, 약해질 때마다 그녀는 “너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내가 너를 반드시 도와줄 거야.”를 되뇌었다.
아이의 뜻을 모두 받아주는 것이 존중이나 사랑이 아니고, 엄마의 권위까지 내어주는 것은 결코 지혜가 아니라는 것을 아프게 배우는 시간이었다. 아이가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 떠난 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다. 낯설어진 엄마의 모습에 아이는 더욱 거칠어져갔지만 자신이 물러서면 더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안 엄마에게 자신이 내려놓은 권위의 회복은 결사적으로 붙들어야 하는 생명줄이었다.
엄마는 감상적으로 상황을 대하기보다는 더욱 분명하고 냉정하게 자기가 설 자리를 보며 지켜내기 시작했다. 그 시간을 가질수록 자신이 서야할 자리를 더 분명하게 보기 시작했다. 과연 그와 같은 엄마의 변화가 아이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놀랍게도 마구 삐뚤어질 것만 같던 아이에게서 어느 순간부터 매우 미세한 변화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거나 생각을 내려놓고 엄마가 하는 말에 주의도 기울였다. 그렇게 아이는 조금씩 선순환의 고리로 들어왔고 점차 밝아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무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아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장하는 엄마와 아들의 모습에 팀도, 제작진들도, 이웃들도, 학부모들도, 시청자도 모두 눈물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이다. 되는구나. 되겠구나.” 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모자가 되었다.
아이를 만난 오은영박사가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몇 점을 주겠느냐고 물으니 아이는 5~60점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들이 180도 변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6주간에 걸쳐 세 차례나 방영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온 모자의 사연은 이렇게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제 시작됐으니 그 모자는 더욱 성장해갈 것이다. 그 혹독한 과정을 지나며 배웠으니, 더욱 지혜롭고 단단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엄마는 제자리에 서는 시간을 통해 사랑하는 아들을 얻었고 아들은 누구도 이해 못하는 불안과 싸우며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를 얻었다. 그 사이에 중재자인 전문가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력자들과 시청자들의 응원과 지지가 있었다. 깨어진 한 사람의 회복에 드는 에너지의 총량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서로 맞니 안 맞니 하면서 감정을 따라 헤어져버린 부모의 결정에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깨어져버린 한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그로인해 깨어져버린 소중한 관계들을 보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 있을까? 혹 전도하고 봉사하느라 배우자나 자녀를 돌아보지 못해도 될까? 먼저 구할 그 나라와 의가 배우자 안에, 자녀 안에 있음을 볼 수 있을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에 가장 좋은 곳은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다."는 말이 있다. 금쪽같이 소중한 사람이 상하고, 다시 없을 관계가 깨어지기 전에 사랑으로 돌보고, 정성을 다해 지켜내는 일은 치유나 회복보다 얼마나 더 중요한가.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당신의 지혜를 무한히 부어주실 준비가 돼 있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