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주은이가 살고 있는 시흥 배곧 오피스텔 21층 옥탑에 오르면 소래포구가 눈 앞입니다. 아침 포구는 항상 하늘과 바다와 육지가 잿빛이어서 경계가 보이지 않습니다만 잠시 시간이 지나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해맑고 푸른 하늘을 보여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음을 지각하게 하실 그 시간이 올 것입니다.
평안하셨죠? 추석 명절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며 오롯이 행복한 시간이 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한국에 예정보다 오래 머물면서 뜻하지 않게 길어진 그간의 긴 이야기를 가능한한 짧게 나눠보려고 합니다.^^
필리핀에 있을 때 소화에 어려움을 느낀 아내가 내시경검사를 하려고 하니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서 200만원 가량이 필요했습니다. 한국에 방문해서 종합 건강 검진을 받아보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의 도움으로 종합 건강 검진을 받은 지도 10년이 흘러서 때가 됐다는 생각도 들었죠.
친구의 소개로 전주 예수 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때만 해도 간이역을 지나치는 기차같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검사 받은 그날 난소에 혹이 발견되어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과정에서 방광이 3센티미터 가량 찢어져 입원 날짜는 13일로 늘어났습니다. 의료 사고인데다가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이 됐습니다. 감사하게도 잘 아물렀으니 아찔한 때에 베푸신 은혜였습니다.
저에게서도 몇 가지 문제가 발견됐습니다. 먼저는 위에는 헬리코박터균이 있어 열흘 간 약을 먹었고, 담낭에서는 큰 돌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했으며, 대장에서는 7개의 용종을 떼어냈습니다. 조직 검사 결과 그중 네 개는 선종이었습니다.
또 다른 문제도 나타났는데요, 사물이 두 개 보이는 복시 증상이 그것입니다. 고속도로 운전 중에 나타난 그 증상으로 인해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안과에서는 뇌종양의 영향일 수 있으므로 MRI 검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몸의 치료가 대략 끝났으리라는 것은 순전히 제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신체적인 문제들이 쏟아지듯 나타나는 중에 체류 기간은 길어질 수 밖에 없었고, 항상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하는 아내의 눈에도 불편함이 감지됐습니다. 검사 결과 각막이 조금 부은 상태였습니다. 겉보기에는 건강해 보였지만 아내나 저나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운반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모르고 지나갔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하는 시간들입니다. 그랬다면 말 그대로 무지하고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것을 몸으로 배운 시간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병치레를 하며 마치 급류에 휩쓸린 듯한 시간을 보내고 있고, 지금도 진행중이지만 약한 몸 구석구석을 살펴주시는 은혜가 생생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저희로서는 정기적으로 검사를 통해 몸의 형편을 살펴서 적절하게 돌보지 못한 결과임을 시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상이 발견된 배를 대대적으로 손을 보는 이유는 보관이 아니라 재출항을 위한 것임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프타임을 가지며 후반전을 기다리는 선수의 마음입니다. 이때를 통해 배운 많은 것들을 일일 옮길 수는 없지만 지난 9주간(7.20~9. 30)은 참 특별한 시간 이었습니다. 환난처럼 보이는 시간 가운데 주님의 긍휼이 넘쳤고, 여러 성도님들의 사랑이 넘쳤습니다. 우리 안에는 감사가 넘쳤습니다.
몸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수술실과 회복실, 입원실 등을 통해 주님 앞에서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적절한 때 병을 발견하게 하셨고, 훌륭한 의사들을 통해 수술해 주시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문제가 되는 모든 부분들을 낱낱이 추적하게 해주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읊감당할 수 있는 힘과 지혜와 물질도 주셨습니다.
특별히 매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의 부재를 통해 산마리노 친구들이 하나님 앞에서 더욱 제자리에 서서 자라가는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게 하신 일입니다. 리더인 제리를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아가며 고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매일 페이스북을 통해 보면서 감동하고 감사합니다. 어리광이 사라지고 성년의 모습이 나타나게 하십니다. ^^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일은 우리가 하지만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더욱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계획에는 없었으나 하나님의 계획에는 있었던 이 시간을 주신 것이 감사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소중한 믿음의 친구들을 통한 위로와 사랑, 격려, 동행, 우정의 힘을 더욱 깊이 알게해 주셨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참으로 우리의 삶이 주님의 수중에 있습니다. 번갈아가며 수술대 위에 올라야 했고, 현재도 진행중인 저희 부부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는 자정이 다 되도록 아내와 함께 소래포구를 바라보며 앉아있었습니다. 달도, 하늘도, 바다도, 바람도 다 사랑스럽기만 했습니다. 둘 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인지, 새삼 잠시라도 없으면 견디지 못할 소중한 선물과 함께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언제 치료를 다 마칠 수 없는 날들이 지나고 있고, 언제 출국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나 우리의 형편을 다 아시고, 우리의 생각을 넘어 일하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동일한 은혜를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 가득하게 하시는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건강을 잘 챙길 수 있는 지혜도 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저리도 밝고 맑은 만월처럼 어느 하나 이지러짐이 없는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추석 명절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시흥 배곧에서
강경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