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30년의 세월이 흘렀나 보다.
내가 군복무를 마치고 한양대 조교수로 있을 때였으니
1970년대 초반쯤 됐을까.
외래에서 환자를 진찰하고 있는데
40대 부부가
초등학교 5, 6학년쯤 되어 보이는 예쁘장한 딸아이를 데리고
진찰실로 들어왔다.
한눈에 궁핍해 보이는 옷차림이었지만
자식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대단했고
학식 또 한 상당했다.
20대 후반에 결혼해
1년만에 얻은 아이는 처음에는 잘 먹고 잘 자랐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감기에 자주 걸리고 병치레가 잦아서 동네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뜻밖에도 선천성 심장병이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찾아왔다는 것이다.
간단한 진찰을 해보니
심실중격결손증인 것 같아 정밀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러나
부모는 돈이 얼마나 드느냐,
정밀검사 기간이 얼마나 되느냐 등 등을
올 때마다 묻고 또 물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인 듯해 안타까웠다.
우선 돈이 적게 드는
심전도검사와 가슴 X선촬영, 피검사 등을 했더니
결과는 역시 심실중격결손증이 유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 정밀검사인 심도자검사를 실시한 후
수술을 하자고 제의했으나
소녀의 아버지는 이 비용마저 마련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간단한 수술로 완치할 수 있는 병이었지만
소녀는 끝내 수술을 받지 못했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1975년 2년간의 심장외과학 연구를 위해 독일로 떠나면서
그 소녀의 일은 까맣게 잊었다.
고국에 돌아와 한동안 한양대에서 근무하다가
1982년 우리나라 유일의 심장병 전문병원인 부천세종병원을 세웠다.
다음해 1월에는
우리나라 민간병원으로는 처음으로 개심수술을 시작했다.
그후 우리 병원이 새로운 기법을 도입해
죽음을 눈앞에 둔 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다는 사실이
연일 보도되던 85년 여름,
그 소녀의 아버지가 찾아왔다.
10여 년만에 다시 만난 환자
낯익은 중년신사가
스무 살 가량의 숙녀를 데리고 진찰실에 들어왔다.
젊은 여성은 한눈에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숨이 턱에 닿아 있고
입술과 손톱이 파란 이른바 청색증 환자였다.
얘기를 듣고보니
70년대 초반 한양대학병원에서 내가 진료를 했던 바로 그 소녀였다.
그때는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어려워 수술은커녕 검사도 받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소녀의 아버지는
이제 사업에 크게 성공해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으니
딸을 수술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내심 걱정이 됐다.
그때는
분명히 단순한 심실중격결손증으로 비청색증
(입술이 파랗지 않고 빨간 심장병)이었는데
이제 와서 입술이 파란 것을 보니 정맥피가 동맥으로
거꾸로 흘러 들어가는 말기 심장병으로 진행한 것이 아닌가
의심 됐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는 불행하게도 짐작한 대로였다.
갓 태어났을 때는
간단한 수술로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병이었으나
너무 오래 방치한 탓으로
아이젠맹거씨병이라는 불치병으로 악화된 상태였다.
이 질환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고 오로지 심장과
폐, 간을 동시에 이식해야만 단 몇%라도 회생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 의료 수준으로는
세 장기를 동시에 이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더니
아버지는 눈시울을 적시면서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꼭 딸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안타까워
복수 장기 동시 이식의 세계적 권위자인 영국의 제이콥
교수에게 수술 가능성을 묻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내가 받은 회신은,
나이가 어리면 모르겠으나 벌써 20대 중반이고
여러 장기에 동시에 병이 생겨서
수술이 불 가능하다는 절망적인 내용이었다.
그때
그가 애통해하는 모습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1960년대 어려운 형편에 결혼하던 이야기,
첫딸을 얻고 기뻐하던 일,
한양대학병원에서 나를 만나 진찰받던 일,
수술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도 돈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던 일,
마침내
돈을 많이 벌어 딸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됐다고 안도하던 일 등
하염없이 쏟아놓는 넋두리는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러나 이제 와선 백만금이 아니라
천만금이 있어도 자식의 병을 고칠 수 없다니
이 무슨 낭패인가.
그후 그 가족은 깊은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
몇년 후
기어코 딸을 잃은 그해 크리스마스 전날 그가 나를 찾아왔다.
거금을 내어놓더니
자기 딸과 같은 가난한 아이들의 생명을 되찾아주는데
써달라고 부탁하고는 훌훌 떠나갔다.
모든 일이 뜻같이 되지 않는 것이 세상사 인 듯하다.
수술을 해야 할 때는 돈이 없고,
돈이 많아지니 이미 때가 지났고….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생각난다.
남편은 시계를 팔아서 부인의 예쁜 머리핀을 사고,
부인은 아름다운 머리를 잘라서
남편의 근사한 시계줄을 샀다는 이야기다.
가난한 부부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의 미소 속에 눈물을 감추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