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年 6月 19日 호암 아트홀 중앙무대가 장중한 침묵 속에 무거운 막을 들
어 올렸다.
객석은 죽은 듯 조용하여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굉음으로 울릴 것 같은데
무대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면서 잠든 천지를 일깨우는 태초의 징 소리가 울려
퍼졌다.
/門. 하느님은 천지창조의 문을 열었고 인간은 그 외의 모든 문을 열었다+알
파/
하느님의 창조와 만물의 척도로서의 인간을 긍정하는 극작가 김시라의 사상
을 표방한 이 한마디는 연극 품바의 연극內容을 대변하고도 남는 바 있다.
당시 무대 배우는 6대 품바 김규형이었고 고수 김태형. 김승덕. 이사현
을 좌우로 거느린 작가 김시라씨가 무대 오른편에 하얀 모시 두루마기를 입
고 앉아 북채를 휘두르면 무대위에서는 배우의 걸쭉한 사설이 시작된다
/"허. 내가 누구냐면 말이여 죽장에 삿갓 쓰고 흰구름 뜬 고개를 넘어가
는 김삿갓을 가장 존경한다라는 천하제일의 풍류장이여./
'허허라 품바가 잘도 논다 허허 품바라 잘 논다'/ 이런 사실 조의 연극대사
가 관객을 압도해 갈 때 김시라와 고수들의 징과 북과 어우러지는 노래 가락
은 흥겹게 고조되었다.
중앙일보의 협찬을 받아 품바 4000회 기념 공연을 열고 있는 호암아트홀은
서서히 달아오르고 관객들은 무대 배우와 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호응하
며 웃고 우는 2시간 30분이 이렇게 이어가는 것이었다.
/'삥아리(병아리) 잡는데는 도끼가 대빡 고래를 잡는데는 바늘이 대빡'/이 언
벨런스한 대사가 은유하고 있는 不穡里. 분노보다는 諧謔과 음율에 의한 여유
로움으로 시대의 痛恨을 풀어가는 품바의 매력에 관객들은 저절로 어깨가 들
썩거린다.
아마 세계 어느 나라의 연극일지라도 이토록 열악한 조건 가운데서도 이렇게
생산적인 여흥과 의미를 내포한 연극으로 4000회를 돌파한 무대는 없었을 것
이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있는 필자로서는 평소 호형호제하
며 지내던 극작가 김시라 선생과 인연을 차처하고라도 돌연한 그의 주검 앞
에 조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연극을 재조명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
이다..
연극 품바가 시작된 시기가 5.18 光州 사태로 전라도민들의 가슴에 영원히 지
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긴 직후였으므로 첫 공연이 있었던 光州 시민들의 호
응은 말할 나위가 없거니와 전 국민의 가슴에 분노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일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권력이 있는 곳에는 정의가 없는 법이라는디 말이여, 이놈의 시상이 어찌 될
라고 말이여 탱크를 몰고 들어와 제나라 백성을 개잡대끼 잡는지 몰러/ 풍자
를 깃들여 퍼부어 대는 배우의 야무진 독설에 관객들은 십년묵은 체증이 가
시는 듯 시원했을 것이며 일부 권력층은 모골이 송연했으리라.
어쨌든 내가 알기로도 연극 품바를 50회 이상 관람했다는 팬들이 부지기수였
으니 과연 품바야 말로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연극임이 틀림없는 사실인 것
이다
/'공자님 같은 우리나리. 살구꽃 같은 우리나리. 나리나리 개나리. 오늘
아침 얻은 한푼, 나리한테 바치고요, 오늘 저녁에 얻은 쉰 밥 나리집
개한테 바칠라요'/
공자의 지나친 보수주의 정신이 우리 민족에게 끼친 정신적 해악(害惡)과 일
본의 도요또내 히데요시가 임난을 일으켜 우리 역사의 한 章을 피로 물들인
사건과 연계하여 일제강점의 씻을 수 없는 절망감과 지금도 우리의 역사 교
과서에 일본의 숨은 모략이 짙게 베어 있음을 모르고 이병도의 파당들이 주
도해 가는 왜곡된 교육현실을 날카롭게 비난한 대사를 과연 누가 얼마나 깊
이 이해하면서 연극을 관람했을까? 하는 의문이 지금도 필자를 안타깝게 하
고 있다.
/"어헐 시구시구. 들어간다 저헐 시구시구. 들어간다. 작년에 먹던 김
치국을 못 잊어서 또 왔소 어헐 시구가 들어간다"
이렇게 시작되는 품바타령은 흥분과 패이소스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을 뿐 아
니라 자세히 살펴보면 묘한 부분이 있으니 왜? 하필이면 시구 시구냐? 하는
点이다. 시구는 屍柩냐? 그냥 추임새로서의 시구냐? 하는 점은 작가만이 알고
있는 의문점으로 남겨두니 이 부분은 독자 여러분의 이해와 수용력에 맡기기
로 하겠다.
/'인심좋은 양반님네 심청전을 들어 봤냐? 골백번도 더 봤다/
인심좋은 양반님네라는 대사 또한 꾀나 역설적이다. 양반들 치고 선민들의 등
을 치지 않고 치부한 사람이 어디 있었던가,? 양반이라 하면 민초 위에 군림
하는 특수계층이요 양반치고 거만하고 고루하지 않은 자가 없다는 게 통념이
며 부자 아닌 양반이 있을 수 없는 터수요 부자 하면 인색하다는 이미지가 골
수에 박혀있는데 왜 하필 인심좋은 양반님네였을까? 여기에는 극작가 김시라
의 무한한 수용성과 언어의 묘리를 극적 요소로 반전시키는 연극적 테크닉이
숨어있는 것이다 검은 바탕을 만들기 위해 배면에 도사린 흰바탕, 그것은 현
묘의 道라. 양반이라는 상위 계급에 대한 저항의식을 은연중에 민중들에게 고
취시키는 반골의 저항정신이 내포하고 있음을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인 것이다.
/불쌍허다 우리 아가. 사흘 열 끼니를 굶었소. 아가 아가 울지마라 보름 굶은
나도 있다 오늘 저녁만 참아다오/ 오늘 저녁을 참아 넘긴다해서 내일 굶주림
이 해결될 상황이 아니언만 내일만은 언제나 희망이어야 하고 미래 지향적이
라야 했던 민중의 절박함은 해방과 전쟁, 무질서한 공전의 분위기를 몸소 겪
으며 살아낸 작가로서의 열망이요 진실이었으니 참으로 애절하지 않은가.
/어허 이놈이 이래도 정승판서의 자제로, 팔도 감사를 마다하고 돈 한푼에 홀
려서 각설이로만 나섰소. 그때가 어느 때뇨 춘삼월 호시절에 꽃도 되고 잎도
피니, 우리 부모 나를 낳아 영화를 보쟀더니 이 신세가 웬 말이냐? 천생 인연
이 기박하여 팔도강산을 다니면서 각설이 신세가 되었구나 많이 주면 반됫
박에 적게 주면 한주먹에 니가 잘나면 내 아들 내가 못나도 니 애비./
철치부심, 인간의 대열에 끼워달라고 애걸하지도 않고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
하지도 않는, 각설이들의 독백은 듣는 이의 가슴을 찌릿하게 한다.
/'나까무라상. 나까무라상. 밖에는 바람이 징하게도 춥수무니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 꽃들이노 못 핀다'
한 민족의 얼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려고 모략했던 일제에 항거하는 민초들의
정신적 저항이 처절했던 36년간의 시상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며
/'나까무라상 허지만 설한풍에도 꺾이지 않고 피어나는 설매화나 동백꽃은
어찌 하겠스무니까?/
'그것들이노 못 피게노 해야한다 그것들이노 반역자다/
자연의 순환마저 물리적 힘으로 막아보려 했던 일제의 터무니 없는
발상을 이토록 멋들어지게 풍자한 사설이 과연 어느 연국대사에 또 있었을까.
실로 놀라운 진실이요 호된 비판력이다.
/'반월은 하늘에 걸리고 반월은 사랑이 부끄러워 땅속에 묻었다오/
인간의 고매한 정신과 사랑이라는 숭고한 감정을 생명이라는 차원 높은 진실
과 대칭 시킨 대사기법은 앞으로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당시 각설이 패들은 양민들의 표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모두가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며 죽느니만 못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한 서민
들의 생활상을 몸소 겪으며 살아낸 작가의 의식 속에 언제 이렇게 차원 높은
인간애가 깃 들었을까? 를 생각해 보면 작가 김시라씨는 참으로 대단한 예인
이랄 밖에.
되짚어 보면 우리의 역사를 좀 먹고 민족적 긍지를 갉아 제 한 놈의 영달만을
포식해온 식자들의 병폐. 이 나라를 혼란과 기아의 굴헝으로 미끄러뜨린 것이
어찌 외침뿐이었겠는가, 간에 붙고 쓸개에 붙어 동족의 진액을 빨고 역사의
진실을 왜곡 축소시켜 준 대가로 얻은 한 몸의 영달을 훈장인 냥 자랑스럽게
이마빼기에 붙이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 저 파렴치한들이 아직도 활개를 치는
마당이고 외래 종교를 수입하여 그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조상의 동상마저
목을 쳐 없애는 신앙 뚜쟁이들, 만주 일원에서 발굴되는 우리의 유적을 구태
어 남의 것이라 주장하면서 까지 자신의 밥줄에 연연하며 발버둥치는
불쌍한 역사학자. 道나 理를 들먹일 때마다 孔孟을 들먹이면서도 우리에게는
虛精에 이르는 아름답고 고귀한 신화나 부도지 삼일신고 제왕운기가 있음을
애써 감추려는 자들이 해동공자의 玄妙之道를 갈파하기를 어찌 바라겠는가.
이 나라 식자우환을 김시라씨는 이렇게 풀어나가고 있으니
/호절문전 다 보내고 온갖 사설이 나가신다 각설 문전에서 나가신다 천지는
적막허고 황진은 무상허다 무애열반에 하늘天. 적시는 생출헌디 만물은 따地
춘풍삼월에 호시절. 현준한량 검을玄은 은옥손서 구양순 杜甫행을 맞섰다.
도리춘도 누르黃은 삼화천도 石花時 어느 양양에 집宇. 압록강가 두만강가 고
대관실 높은 집에 살기도 좋다 집宙. 섬섬옥수 거칠헐라 하오청산 넓을洪에
세상만사는 벼를磨. 황당허다 거칠荒 죽어간다 산백성들 번쩍 들어라 날日.
일락허니 주무신디 월출 동동에 달月, 주야공산에 높이 뜬 달. 미색이 들어와
술 부어라 춘향이 들어와 잔 돌려라 넘쳐날까 기울 . 河圖洛書 장판을 봐라
일월에 성성 별辰, 정든 님을 쓸어안고 甲辰장판이 왠 말이냐./
/사람이 생각을 허기땜시 위대하다는 것은 올바른 행동을 위한 생각을 허기
때문임을 알아야 혀. 올바른 생각을 허고 사는 사람은 하느님도 두려워하네/
/이눔아 사람은 누구나 서로 얻어먹고 사는 뱁이여, 우리 같은 거렁뱅이가 있
응게 너희놈들이 우쭐댈 수 있고 우리같이 못난 것들이 있응게 너희놈들이
자위라도 할 수 있는 것이란 말이다 이것만은 우리가 너희에게 베푸는 것임
을 알아야 혀 이눔아/
혼란과 절망의 와중에서 아름다운 젊음들이 빈사의 끄나풀에 발목이 묶여 옮
도 뛰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니 오직 했으면 청운의 뜻을 품어야 할 그 나이의
작가가 무애열반을 들먹거렸으랴.
연극은 어느덧 홍시처럼 말랑하게 무르익어 무대는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해
방의 기쁨이 삼천리를 흥분의 도가니로 이끌던 시절도 잠시 우리의 참담한
역사는 동족상잔의 전쟁놀음에 휘말리게 된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뉜 전쟁의
양상은 과연 무슨 명분으로 치뤄 졌던가? 집권자들의 광분이 저지른 전쟁으
로 1백만 명 이상이 죽어나간 이 강토는 비탄과 절규를 뒤로한 채 불신과 증
오의 씨앗을 민중의 가슴에 심었으니 인민군에게 부모자식을 잃은 사람들, 지
방빨갱이 활동을 하다가 죽은 사람의 가족들은 아마 지금도 그 전쟁을 원망
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니 산하는 헐벗고 초근목피 마저 동이 날 판이고 보니 먹고
사는 문제가 최우선의 話頭로 떠올랐다
오! 통라 통제라.
"예로부터 일렀으되 동쪽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데 木器에 밥을 담아 먹고
여인은 긴 옷을 입고 앉는 자리도 가려 앉으며 남정네들은 모자를 쓰고 띠를
둘렀는데 섬돌에 오를 때 서로 겸손하여 우선하기를 권한다"라고 지나인들도
감탄하고 칭송을 아끼지 않던 예의지국은 후환무치의 산송장 꼴로 전락해 버
렸으니 나아가 살 방도를 얻을 바 없고 들어와 안식할 곳이 없어진 민초들을
어느 누가 어루만져 줄 것인가. 덕치는 간 곳이 없고 결핍과 갈등이 난무하던
그 아픔을 해학으로 풀어갈 수 밖에 더 있던가?.
/아가씨 꺼 보니 꼴리요 아짐씨 꺼 보니 반갑소 아저씨꺼 보니 겁나요 짓는
개보니 무섭소 어허 품바가 잘도 논다. 할머니 꺼 보니 싱겁소 비 맞은 장닭
도 싱겁소 할아버지 꺼보니 틀렸소 물꼬가 터진 논도 글렀소. 허 품바가 잘
논다/
상식의 틀을 깨트리고 열화처럼 퍼붓는 응집된 분노는 그 시대를 겪어온 관
객들에게 시원한 청량제가 되었으리라.
뼈다귀만 앙상하게 드러난 이 나라 살림살이 가운데서도 생명은 모든 진리의
꼭대기에 있는 것.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과제는 사람의 정신을 혼미
하게 만들어 서로를 해치고 갉아먹고 그래도 모자라 야수로 만들었던지 각설
이 동패 중에 처녀를 겁탈하는 사건이 터지고 만다. 이 사건은 유유한 세상의
마디요 인륜을 목숨처럼 신봉하던 민중의 신앙이며 무겁고도 아득한 도의 핵
심을 무너뜨린 사건인 것이다.
/각 분소의 대빡들을 다 모이라고 해라. 아녀자를 겁탈한 놈에 대한 우리의
계율은 무엇인가?/
/생매장/
그들의 세계에서는 대빡들의 결정이 준엄한 법이 된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서는 한 숟가락의 밥을 베푸는 아녀자들의 자비가 절대적인 생명선임에 神과
같은 존재인 아녀자를 겁탈하다니 그 작태는 스스로의 목을 조르고 동패들의
밥줄을 끊는 가장 위험한 가증스러운 범죄인 것이다
범법자를 생매장하고 돌아온 그들의 탄식이 장내에 울려 퍼진다
/누가 나를 만들었소? 어머님이 술청에서 퇴주잔으로 만들었지. 누가 세상을
만들었소? 전능하신 상제님이 실수로서 만들었지. 실수로서 만든세상 퇴주잔
으로 빚은 인샌 천지간에 몽달귀신. 안자아서 살때는 누워서 있고 누웠을 때
는 죽어있소 죽었으니 다행허요. 어허 품바 잘도 가소. 정을 두고 가지 머소
미련도 두고 가지마소. 다시는 오지 마소/
인간은 누구나 윤회를 갈망하며 산다. 쇠똥 밭에 미끄러질 망정 이승이 좋아
다시 오기를 바라는 인간의 염원이 윤회설을 만들었고 모든 사람들은 그 윤
회의 수레바퀴를 신앙으로 삼고 살아가기를 원하건만 세상살이가 얼마나 혹
독했으면 다시 오지 말라는 탄식의 위령가를 불렀겠는가?
이 연극의 작가 김시라선생과 필자는 전남 무안군 일로면의 약 3키로 상거한
근동에서 태어났다. 또 필자의 內子가 김시라 선생과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관계로 열 네 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난 나와는 아내의 주선으로 서울에서
만난 후 문인으로 고향의 선후배로 호형호제하며 각별히 지냈거니와 그의 부
친 김두성翁과는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는 장기 호적수로 긴밀?한 관계로
지냈다.
품바시대 20년. 탈도 많고 말도 적지 않은 연극계에서 김시라선생의 연극 품
바가 전세계를 무대 삼아 4000회를 공연하는 동안 워낙 유명해지자 이곳 저
곳에서 사이비품바가 우후죽순처럼 난무하기에 이르렀고 그 뒤치닥거리가 여
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필자도 부산까지 내려가 사이비품바 공연을 중지시
킨 바 있지만 어쨌든 이런 일 저런 사정으로 하여 필자가 그의 집에서 근 일
년 여를 동거하기도 했으니 世人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바늘과 실처럼 여겨
온 것이 사실이다. 그뿐 아니라 김시라 선생과 필자는 우리들의 고향 일로(一
老)라는 지명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는데 一字는 마땅히 처음이요 으뜸을 가
리킨 말이요 老字는 사전적 의미로 늙음이라는 말이지만 고향사람들의 정서
적 해석으로는 거대한, 혹은 완성이라는 의미가 內在하고 있음을 주창하는 등
참으로 많은 얘기들을 주고받았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얘기가 잠시 샛
길로 접어들었다 다시 연극 얘기로 돌아가 본다.
품바의 진수는 뭐니뭐니해도 타령인데 각설이 타령의 첫머리가 그럴싸하게
一老라는 지명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은 아마 작가의 애향심이 발로가 아닌
가 생각한다.
무대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동안 각설이를 불러야 할 대목에 이르면 고수들
은 신바람을 일으키며 어깨들을 들썩 추스리고 나서
/허이, 一字 한 장을 들고나 보니 일로라 내 고향은 천사들의 고장일세/로 시
작하는 각설이 타령은 참으로 맛과 멋이 농익어 있다 하겠다 나눔에 인색함
을 모르고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경천애인의 도리를 우선으로 알고 살던 일
로 사람들의 사람된 근본을 노래함으로부터 시작되는 각설이타령은 시대상황
에 따라 歌詞가 改作되지만 그 줄거리는 대개 이렇다
/두이에 二字를 들고나 봐라 수중백로 백구 떼가 뻘 밭을 찾아서 날아든다 허
이. 서이에 三字를 들고나 봐 삼월이라 삼진 날에 제비 한 쌍이 알을 까고 너
이에 四字를 들고나 보오오니 사월이라 초파일에 관등불도 밝혔구나. 다삿에
五字를 들고나 봐라 오지가지 별 가지에 만고풍상을 다 겪는다. 여섯에 六字
를 들고나 봐 유월유두에 익은 술 탁배기 동이가 늠실늠실. 일곱에 七字를 들
고나 보오오니 칠월이라 칠석날에 견우 직녀가 좋을시고 여덟에 八字 들고보
라 중추절이라 嘉禮날에 송편절편이 좋을시고 아홉에 九字나 들고나 보오오
니 구월이라 중구 날은 국화주를 담그는 날 十字나 한 장 들고나 보니 시월이
라 무오날에 제사 고사가 떡 벌어지고 일백에 百字 들고나 봐라 백만장자 億
萬家에 太平歌가 좋을시고 억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억조창생 민생들이
함포 고복이 좋을시고/
/하, 전라도 연두에 가먼 말이여 술집이 겁나게 많은디 말이여 집집마다 양귀
비 같은 절색들이 말이여 잠자리 속 날개 같은 치마만 슬쩍 두르고 "서방님
보고싶어서 나 미칠뻔 했어라우" 허고 아양을 떰시로 감겨드는디 사내놈이면
못배기네 암, 못배기지. 아 그렁게 뱃놈들이 그 모진 고생을 해 감시러 번 돈
을 그 밑구멍으로 쏴악 쏟아붓지 않던가벼/ 라는 능물스럽고도 걸쭉한 배우의
재담에 관객들은 "올커니"로 추임새를 넣고
/예, 오라는디 없어도 갈곳 많은 이 거렁뱅이가 나리 댁에 적선허라고 왔소/
하고 걸식을 들어가면
/엇따메 요런 털 빠진 도야지같은 놈 보소이? 아 징용갔던 우리 서방님이 오
년만에 돌아와. 시들시들한 고놈을 겨우 빳빳이 세워지고 막 몸 좀 풀어볼라
는 참인디, 아, 요것이 산통을 쫘-악 깨트리네 그려이. 저쪽에 핫팬티 입은 아
짐씨는 내 속을 알 것이로구먼 그렇지라우? 오메 나 죽네, 종일 찌뿌드등 하
겄네 / 이렇게 익살이 무르익으며 무대와 관객이 호흡일치가 되는 순간이다.
/너나 나나 불쌍한 존재임엔 마찬가지여. 흉보는 것처럼 뒤쩔리는(캥기는) 일
도 드물고 미워허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것도 없는 법잉게. 흉보든지 미워하든
지, 니 맘대로 혀/
참으로 탈속한 思考가 아닌가, 달관이 자기의식을 임의대로 다스릴 수 있는
경지일 것이라면 증오와 갈등을 仙食처럼 흡수, 소화해 내는 각설이의 독백이
야말로 賢者의 그것일 것이다.
연극은 각설이의 주검으로 막을 내린다.
/여러분이 신과 사람의 중간쯤이라면 이 각설이는 사람과 즘생의 중간쯤이라
고 여기시면 저희들을 이해하는데 다소 도움이 되시려는지 모르겄습니다요/
처절한 자기비하를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자학의 章이 있고 세상의 비리를 풍
자하는 예리한 독설이 있는 연극.
/삐쭉새야, 대실양반 기침이 심허드구나. 언제 뽕나무 뿌리라도 삶아 드렸냐?/
는 인정머리가 있는 연극 품바의 작가가 2001년 2월 8일 타계했다.
필자와 단 둘이 있을 때면
/성님 세상에 악한사람은 없는 법이지요? 모자란 사람은 있어도 말이요 이?/
언제나 동의를 구하듯 인성이 메말라 감을 안타까워하던 두 살 아래의 아우
이며 벗이었던 시인 김시라 선생의 주검 앞에 억장이 무너져 눈물조차 흘리
지 못하던 나는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 텅 빈 사무실에 나와 이 추모기
를 쓰면서 실컷 울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살아남은 내가 바르게 밟아야
할 도리의 形質이 더 무거워 어금니를 악문다.
재경이라는 名工이 나무를 깎아 북틀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귀신의 솜씨라
칭송하며 어찌해서 이러했느냐? 묻자
/저는 북틀을 만들려 할 때 기운을 소모함이 없이 반드시 목욕재계함으로서
마음을 고요하게 합니다. 사흘을 그리하면 常事가 사라지고 닷새를 그리하면
타인의 칭찬이나 비난 교묘함과 졸렬함이 사라집니다 이레를 그리하면 제 손
과 육체를 잊게 됩니다. 고로 그때는 세상이 없어지고 다만 홀로 남으니 그때
북틀을 만듭니다/라고 대답했다는 古事가 있다. 4300회라는 금자탑을 이룩한
연극 품바를 만들기 위해 작가와 함께 산파역을 맡았던 고향의 후배들의 마
음이 그랬으리라 짐작하며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며 어려운 농촌살림에 보수
는커녕 自費를 써가며 전심전력으로 품바 만들기에 공헌했던 고향 지킴이들.
목포 신흥초등학교 교사 박성안. 뛰어난 조각가의 재질을 타고났으나 뜻을 펴
지 못하고 있는 정덕근. 화가 박문종. 지금은 한우를 사육하고 있는 서태현.
사회복지사업에 젊음을 불사르고있는 박천규. 장비업체를 운영하는 최태섭.
기획사를 경영하는 홍정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김기훈. 김정수 등 아우들에
게 지면을 빌어 갈채를 보낸다. 특히 초대품바 배우 정규수씨의 노고에 고마
운 뜻을 전한다.
필자가 김시라 선생 집에 기거한 일년, 정치는 혼란의 극에 달했고 경제는
IMF라는 전대미문의 괴물에게 덜미를 잡혀 삼천리 국토가 중병으로 신음하
던 때다. 국회는 민생문제를 외면하고 당리당략을 쫓아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
에 여념이 없이 공전에 공전을 거듭하고 있던. 암담한 사회분위기와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절망과 분노를 필자와 김시라 선생은 노래 가락으로 풀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 중에 가장 많이 부른 노래가 각설이타령이었을 것이다.
이제 품바 작가 김시라 선생은 고인이 되었고 한사람이 56회를 관람했을 정
도로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위대한 연극 품바가 김시라선생의 타계로 난파에
이르렀다. 작가가 작품을 쓰던지 연극을 만들든지 간에 세상에 내놓는 순간
그 작품은 작가의 소유가 아니라 독자나 관객의 것이 되는 이치로 미루어 연
극 품바도 이미 우리 국민들의 연극일 것이다. 더구나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
를 상대로 4300회라는 공연기록을 수립한 연극을 이대로 사장시킨다는 것은
온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인들의 수치요 나아가 국가의 손실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 2001년 5월 27일부터 2001년 6월까지 고인의 후배들이 추모의 뜻을 모아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연극 품바를 공연하게 되었음을 알린다.
/
필자 프로필
1943년 전남 무안 일로 상신기리 産
조병화. 박태진 선생님의 추료. 등단
작품 시집 양화리 기행. 끈. 활단새의 눈물 등 출간
임의 춤 <탈고>.
2000년 희곡 /엿판/탈고(환경문학 개재)
동인의학 집필 중.
독립투사 이강년선생 일대기 집필 중.
겨레 숨고르기 행사 추진위원장.
현대 조각상 연구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