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국밥
方 旻
해파랑길 걸으려고 서울에서 KTX 타고 내려와 부산역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부산역 근처 초량동이다. 내일부터 걸어야 하니 교통이 편한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생각이다. 짐을 풀고 숙소 가까운 곳에서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일찍 숙소로 들어가 몸을 뉘였다. 고단할 내일을 생각해서.
아침밥을 먹으려고 음식점을 기웃대다가 돼지국밥집이 보인다. 40 여년이 넘은 집이라는 간판에 홀려서 들어선다. TV 요리 방송에도 소개 된 화면이 액자에 담겨 벽에 걸려 있다. 이 지역 명물인 것으로 보여서 믿음이 간다. 잘 골라 들어왔다는 안도가 입맛 다시게 한다. 모처럼 눈이 제 역할을 한 것 같아 기대를 부풀린다.
집 떠나면 아침밥 먹기가 수월치 않다. 번화한 곳이 아니면, 유동 인구가 많지 않으면 대개 그렇다. 그럴 땐 한국식 패스트푸드인 김밥이나 컵라면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지역 형편 따라 융통성으로 대처해야 마땅하다. 아침밥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것만도 나그네에겐 여간 반갑지 않다.
아침 시각이라 빈자리가 여럿이지만 입구 커다란 가마솥에선 구수한 국물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국밥을 주문하면서 돌아보니, 신문 기사도 보인다. 1975년에 개업했다는 안내문과 100% 사골과 80㎏ 암퇘지를 통째로 넣어 만든 국물 맛으로 만든다고 씌어 있다. 맛도 보기 전인데 입안에선 군침이 돌며 혀의 미각 돌기를 자극한다.
진한 국물에서 풍기는 맛은 부산 명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값은 6천원이니 가성비도 높고 유행어를 빌리면 착한 음식점이다. 든든한 아침 한 끼로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오늘 해파랑 길 출발부터 돼지 국밥의 힘을 많이 받을 것 같아 뱃속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든든하게 길에 나설 수 있겠다.
돼지국밥집을 나서면서 이쑤시개를 집어 든다. 이빨 틈새에 낀 음식물을 찔러대면서 국밥은 100% 사골 국물이라 하는데 나는 과연 몇 퍼센트 인생을 살고 있는지 의문이다. 떨떠름함이 떨어져 나간 음식 찌꺼기 사이로 파고든다. 국물과 인생의 순도 대비라니!
수필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도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한다. 편안히 혀끝 따라 맛을 즐기면 될 것을, 글의 제재로 삼을 게 없는가, 밥알을 입 안에서 씹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굴린다. 지금 국밥집을 나오면서 또 그 생각에 빠진 참이다.
100% 사골 맛이라니, 돼지국밥 국물 맛에 비하니 인생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괜히 글감을 찾는다고 스스로 비하거리를 만들었나 싶다. 모자란 인생 순도를 채우려고 해파랑 길에 나선 셈인데 시작도 하기 전에 한 방을 크게 먹은 것만 같다.
사골 맛 순도에 견주면 인생 만족도는 마주 대볼 일이 아니다. 죽어서 뼈마디마저도 인간을 위해서 백퍼센트 헌신하는 축생을 떠올리면, 난 죽어서 어떤 생명체를 위해 헌신할 게 있기는 한 걸까? 못내 자신 없다.
글 몇 편을 써서 누군가에게 한 순간 흥밋거리를 주거나, 잠깐 시간을 보낼 심심풀이 역할 만이라도 한다면 다행이지 않을까.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인생 순도를 따지다니, 부산 명물 돼지 국밥을 맛나게 먹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자고 마음을 다독이며, 허공으로 퍼지는 국솥의 김발을 뒤돌아 다시 바라본다.
첫댓글 ㅎㅎㅎ
선생님도 순도 100%입니다.
앉으나 서나 수필을 생각하는 수필가 아닙니까?
그만 하면 순도 100%지요.
돼지국밥 먹고싶어지네요.
이열치열로 내일은 돼지국밥을 먹어볼까 합니다.
뭘 먹을까 하는 고민을 덜어줘서 감사합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먹겠습니다.
국밥 드시면서도 글감을 생각하시니 다른 것은 몰라도 수필에 대해서는 순도 100%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