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오른쪽 둘째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다.
발바닥으로까지 번져 터트려야할지말지 고심 좀 하다 터트리기로 한다.
바늘이 없어 핀셋을 커피폿에 삶아 환부에 대자마자 노란물이 픽~
거즈로 둘둘 말고 두꺼운 양말을 두개 겹쳐 신고 나선다.
오늘은 대평포구에서 군산오름을 거쳐 화순금모래해수욕장까지로 11.8km의, 노선이 완전히 바뀐 9코스다.
박수기정을 지나 군산오름으로 오르는 언덕길에 부처님오신날이 도래한지라 형형색색 오색연등이 메달린 사찰을 지난다.
제주에선 송악열매라 부르는 까만 담장나무 열매가 돌담을 덮을만큼 주렁주렁.
약천암 돌담엔 구멍마다 다육이가 삐죽 나와 인사를 건넨다.
2시간쯤 걸었나?
말이 다니는 길인 몰질을 몇개 지나 군산오름으로 오르는 숲속에 들어서자 아파서 제대로 걸을수 없는 발바닥 점검을 한다.
양말을 벗고 아쉬운대로 발맛사지를 한다..
한발 한발 떼기도 힘들지만 너무나도 멋진 산방산과 송악산 해안길이 기다리고있어 주저앉을순 없다.
힘을 내어 다시 일어나 양치식물이 가득한 숲길을 지나
두개의 봉우리가 군대의 막사처럼 생겼다해서 군산오름으로 불리우는 금장지, 정상에 선다.
최고의 조망권을 자랑하는 군산오름은 368개의 제주 오름 중 395m의 산방산 다음으로 높고
1007년에 분화해서 생긴 가장 젊은 오름이기도하다.
난드르가 시원하게 펼쳐져있는 돔 형태의 산방산과 저 멀리 한라산이 힘내라고 응원을 보내준다.
넉넉한 한라산의 응원에 힘입어 올라왔던 반대편 길로 내려가다보니
멋진 전망대가 있어 펼쳐진 오름들을 파노라마로 조망한다.
일본군들이 파놓은 진지동굴은 건너뛰고 창고川을 따라 안덕계곡으로 접어든다.
올레리본이 안내해주지않지만 비경이 숨어있는 천연기념물 377호로 지정된 원시림, 안덕계곡으로 내려간다.
추사 김정희도 유배지였던 이 계곡에 반했었다고 할 정도로 멋스럽다.
오래전부터 오리들이 찾아온다하여 올랭이소라 부르며 짓푸른 상록수, 기암절벽, 맑은 물이 매우 아름답다.
어두우리만치 짙은 그늘숲을 지나 브로콜리, 하얀 감자꽃이 펼쳐진 난드르를 보며 진모르동산을 가르키는 반가운 파란 간세를 만난다.
얕으막한 진모르동산은 귤밭이 많아 짙은 감귤 향기에 한껏 취해 산방산이 점점 가까워짐을 느끼자 아프지만 발걸음이 빨라진다.
몰질을 또 몇개 지나 드디어 9코스 끝지점 화순금모래해수욕장이다.
스탬프도 찍기 전에 불편한 발도 쉴겸 맛집인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한가네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가성비 대비 훌륭한 맛집이다.
어디서건 바다가 보이지만 반짝이는 수평선이 보이는 카페에서 쉬어간다.
여전히 무거운 발걸음에 더이상은 무리다.
한 코스를 마쳤으니 일찍 들어가 쉬기로하고 귀가버스에 올라 왔던길을 망연히 바라보며 도착, 휴식이다.
22km 3만보다.
다음날이다.
발가락 상태는 좋지않지만 배낭을 꾸려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4일간 정들었던 법환동을 등지고
드디어 3박4일의 마지막날인 10코스 도전이다!
화순에서 모슬포까지 15.6km로 오름과 해변길 포구 둘레길 모두를 만날수있는,
산방산과 송악산이 있는 가장 좋아하고 가장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최,최고의 코스다.
설레임을 안고 안덕농협에서 버스를 내려 화순금모래해변부터 시작이다.
썩은다리오름에서 아름다운 해안을 시원스레 조망하고 내려오니
뒤로는 분화구가 없이 산속에 방처럼 굴이 있다하여 붙혀진 이름 산방산,
앞으로는 사巖으로 이뤄진 황우치해안이 펼쳐진 그토록 흠모하던 산방산 바로 밑을 지나며
마치 산 전체를 품은듯 조용히 그리고 충분히 가슴에 담는다.
용이 머리를 쳐들고 바다로 뛰어갈것 같은 용머리해안과
최초로 서방세계에 코리아를 알린 하멜표류기념비는 두어번 다녀간적이 있어 그냥 통과 빨간 등대가 예쁜 사계포구에 다다른다.
마라도 가는 여객선이 보이고 형제처럼 마주보고 있다는 형제섬을 바라보며 사계해변을 한가로이 거닌다.
햇살은 따가우나 서늘한 바람이 내내 동행해준 아름다운 여정이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파도가 소리쳐 운다는 뜻의 절울이오름인 송악산 둘레길의 허브인 부남코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코지는 절벽,
부남은 바람이 많이 분다는 제주 방언이다.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지 않아도 송악산의 해안길은 아름답고 여유를 주며 이너피스,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곳이다.
바람의 언덕답게 잠시도 쉬지않는 바람과 함께 각도를 달리하는 산방산과 형제바위를 오래도록 바라보며 떨어지지않는 발길을
전망대를 지나 다크투어리즘 코스인 어두운 역사의 현장으로 내려간다.
일제강점기때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해 만든 진지동굴 13곳,
80만평에 달하는 전략요충지인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지하벙커, 군사시설이 그대로 남아있다.
섯알오름의 고사포 동굴진지와 검은 역사의 제주 4.3사건 희생자 추모비앞에서 잠시 묵념,
제주 한달살기 중이라는 부부와 얘기를 나누며 쉬어간다.
벌써 마늘을 뽑아 가지런히 눕혀둔 넓은 들을 지나
어느덧 종착지 모슬포다.
불편한 발을 이끌고 잘 참고 걸어왔다.
올레길이란 집으로 통하는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제주의 속살을 만지고 훔쳐보며 4일간 행복했다.
4년째 이어진 올레투어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자했을까.
또 무엇을 얻었을까.
막연히 좋아서뿐은 아닐것이다.
다음은 한림과 애월이 기다리고있는 11코스부터다.
끈질긴 생명력의 해녀.
트레커의 로망 한라산.
알아듣기 힘든 외국어같은 제주언어.
동행자의 고마움을 알게하는 어둔 곳자왈.
가슴 먹먹한 미완의제주 4.3사건.
동굴진지를 바라봐야하는 아픈 역사의 생채기.
향토음식을 골라 먹는 쏠쏠한 재미.
제주는 여러 색깔로 여행자를 위로하고 말을 건네는 치유의 섬이다.
첫댓글 발가락 통증까지 견디며 걷고 또 걷고..수없이 많은 발자국에 어리는 제주의 추억.대단하십니다. 제주 이야기에 흠뻑 파묻혀 올레길은 아니어도 가족 👪 과 제주여행을 꿈 꿉니다. 올레길, 집으로 통하는 좁은 골목길이라는 제주 방언이군요.
언니~~~발통증은 이제 나아 졌지요?
지리책도 되었다가
여행 가이드북도 되었다가 나를 깨우고 흔드심이 여름 바람을 맞은 듯 시원하고 상큼 하네요.^^
1ㆍ2편의 장문의 글 고맙게 잘 읽었어요.~👍🤗❤
이처럼 장황하게 쓸수있는것은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져서이기도 하지만 1회성으로 끝날것이 아니어서 여정을 기록해 둘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19,20년엔 글로 써두었는데 작년엔 쓰다가 만것을 알고 좀 내게 서운했다.
게을렀구나.
내년과 그후년까지 두번 더 가야 올레투어가 완성일것같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읽어보면 기억이 새록새록 나 내 개인적으로도 유용할것이다.
오늘 하루는 하는일 없이 종일 핸드폰과 씨름했다.
제주의 속살을 샅샅이 훔쳐보는 재미, 진정 트래커의 자격을 갖추신 leehan202 언니!
제주여행! 저도 이제는 제대로 할거같아요. 이 곳 저 곳 익은 장소들, 가보고 싶어요.
늘 봄이 되면 올레길을 나서는 언니를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지요.이번엔 가야할 시기에 얼른 날을 잡지 못 하는 것에 속으로 참 안타까웠는데 그래도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반갑던지요.
저도 매번 제주도를 다녀오지만 걸으면서 보는 풍경과
차를 타고 다니면서 보는 풍경과는 천지 차이라는 것을
알지요.송악산 갈 때마다 입구쪽에서 잠깐 바다 한 번보고 오는 게 다였는데 이번엔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왔는데 정말 왜 그렇게 해년마다 올레투어를 하는지 마음을 알 것 같았어요.발가락에 물집이 잡혀 걷는 것 자체가 힘들어도 걷고 또 걷는, 내면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leehan202님 다음 올레투어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