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비전, 목적, 계획을 이야기한다. 믿는 이들도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길로 가는 중인지는 알 수 없다. 아브라함은 민족이나 국가를 일으킬 원대한 계획을 따라 산 사람이 아니다. 그가 한 일은 부르신 분을 따라간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많은 때 불안했고, 외로웠다. 방황도 했다. 거짓말도 했고, 자기 뜻을 따라 부르신 분의 뜻을 이룰 생각도 했다. 그만큼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느렸고, 서툴렀다. 부르신 분은 그를 통해 가지신 계획을 이루어가셨으나 그 자신은 그런 사실도 미처 몰랐다.
차츰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일을 명하실 때에도 다르게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갔다. 더욱 자신의 뜻을 밀고 나아가는 일에 주의했고, 아버지의 뜻을 알기 위해 신중해야 했다. 그는 하나님의 뜻, 마음, 길, 방법, 계획 등을 안다고 할 수 없었다. 말씀하시니 그렇게 될 것이라고 받아들인 것이 전부였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택하시고 특별한 사명을 자신에게 주셨다고 말하고, 자신의 비전이 이뤄지는 것을 증거로 삼아 자신의 선택을 증명하려 하지도 않았다.
종들에 대한 성경의 증거들은 이상하게 보인다. 모세는 위대한 지도자를 꿈꾼 것 같지 않다. 자신이 세운 계획이 망하는 것을 보고 황급히 도망쳤을 뿐이다. 기드온은 자신이 강한 용사가 될 줄 몰랐다. 다윗은 왕을 꿈꾸고 산 사람이 아니었다. 갈릴리 어부들은 사도가 될 꿈을 품고 살았는가?
하나님은 오히려 사람이 세운 비전, 목적, 계획을 오히려 허무시는 것 같다. 동족을 위한 모세의 일도, 애굽에서 자자손손 평화로운 삶을 살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박한 꿈도 내려놓게 하셨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어떤 일이 비밀리에 진행됐을 뿐이다.
아브라함을 보면 갈 바를 모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길을 떠난 것이 그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증거다. 우리의 걸음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아는가. 지난 걸음들 중 한 발짝이라도 알 수 있었을까? 신앙인으로, 사역자로 오래 살았으니 이제는 앞으로의 걸음에 대해 뭔가를 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2)
아기로 오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연한 순 같으시다.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 같으시다.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으시다. 겉으로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강퍅하고 단단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그의 마음의 문을 열고 쓴 물만 가득했던 그곳에 찬란한 생명을 꽃피우실 수 있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시다. 하나님의 꿈, 계획, 목적이시다.
여전히 우리는 연약하고 우리의 걸음은 불완전하다. 누군가의 말에 휩쓸리기도 하고, 막연한 미래 앞에서 주눅이 들기도 한다. 특별히 생각할 때마다 마음을 그늘지게 만드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렇다. 하지만 한 가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우리 앞에서 길을 가시고, 우리 옆과 뒤에서 호위하시는 분이 임마누엘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내딛는 걸음이 불완전하고, 때로는 넘어질지라도 끝이 아니다. 한 걸음씩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새해에도 축복의 통로로, 물댄동산으로 우리를 부르신 뜻은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지라"(시 1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