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夏林 안병석
큰길 육교를 건너 골목길에 들어서면 여섯 집을 지켜서 있는 전봇대를 만난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귀가를 기다리는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난다 어머니, 별도 달도 영역을 벗어난 골목길을 주름진 손으로 외등 밝혀 환하게 웃으시는 어머니로 나는 못 다 채운 하루를 가슴에 담는다 행여 안 좋은 소식이라도 새어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 여섯 집, 가닥가닥 줄을 드리워 밤새 뜬 눈으로 귀 기울이시는, 기다림에 지친 굽었던 허리를 언제 펴셨을까 낮에는 오줌소태 못 가리는 강아지의 투정도, 밤에는 넘어질듯 붙잡고 하소연하는 주정꾼의 헛 새는 푸념도 내 자식인양 다 훔친다 아귀다툼 세상 속 쏟아놓는 말들과 기를 쓰고 앞만 보고 내닫는 홍수 같은 자동차의 행렬도 생의 뒤안길 번뇌로 벗어 놓았다 아내는 집안에서 기다리지만 어머니는 맨발로 골목까지 나와 기다리신다 지금까지 어머니 같은 전봇대로 하여 아파트로 이사를 못하고 산다 골목어귀 지켜 선 어머니, 문밖에서 나를 목 늘여 기다리시는 어머니 앞에 가슴 속 티도 흠도 털어야 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를 기다리시는 어머니 얼굴에 오늘은 내가 먼저 외등을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