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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 좋은 또 한 가지 이유
광주는 살기 좋은 도시로, 여기저기 자랑꺼리들이 산재해 있으며 귀한 자산들이 많은 도시임이 확실합니다. 그 중 오늘은 광주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광주 사람들과 서울 사람들은 한 민족으로 언어도 같고, 사고방식, 의복 등 거의 대부분의 생활 방식과 생김새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문화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듣던 남도 지역 사투리와 이곳에서 직접 듣는, 특히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의 사투리는 사뭇 차이가 많아서 알아듣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소한 문화차이가 때로는 일시적 문화충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참 어처구니없어 보입니다. 광주에 이사 온 후, 여러 가지 요인 중 쉽사리 적응되지 않았던 한 가지는 사람과의 거리인데요. 서구권에서의 개인과 개인 사이의 거리는 1미터라고 하고, 한국 사람들의 거리는 30센티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구권 사람들이 처음 한국에 방문해서 그 점 때문에 당혹감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광주 사람들의 거리는 그보다 훨씬 가까운 것 같아요. 옆 사람과 부딪쳐도 미안해하지 않고, 사과하지도 않고, 당연시 여기더군요. 수영장의 샤워장은 북새통이고, 샤워할 때 옆 사람과 피부가 맞닿고 부딪쳐도 무신경한 사람들과 내 영역으로 무지막지하게 침범해 오는 사람들은 무섭기까지 하더군요.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매우 사적인 질문도 서슴없이 하고, 또 대답을 해주면 오랜 만남을 가졌던 사람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시는 사람들... 약간 불편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도시, 특히 소위 부촌이라는 곳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끼리끼리 어울리고, 자신과 조금만 달라도 같이 어울리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웃이라는 개념은 서로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고 방해하지 않으면서 마주칠 때 적당히 목례 정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상호간에 약간은 어색한 관계를 맺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물론 지역적 편차가 클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서 서울 사람들에게 이웃사촌이라는 용어는 이미 옛날 얘기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너무 끼리끼리 어울리다 보니 행정구역상으로는 같은 지구에 거주하고, 거리상으로도 아주 근거리에 살면서도 부촌과 빈민촌으로 구분되다 보면 그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 희박합니다. 다니는 식당이 다르고, 미용실, 운동시설, 백화점 내지는 쇼핑센터들이 달라서 계층간격(?)이 심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은 거의 희박한 일입니다. 그들이 서로 만난다면 길 위에서 서로 스쳐지나갈 뿐이겠죠. 아무 관심도 없이, 시선 교환도 없이, 아주 냉담하고 무덤덤한 채로......
광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공중목욕탕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처럼 목욕탕에는 당연하게 비누가 비치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비누를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가보니 웬걸 비누는 없더군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옆자리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더니 광주에는 비누를 비치해 놓지 않는다는군요. 그러면서 본인의 비누를 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반신욕을 한 후 내 자리에 돌아와 보니 그 아주머니는 이미 가신 후였고. 제 자리에는 종이컵에 담긴 작은 비누가 얌전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조금은 놀랍기도 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산에 갔다가 어느 할머니께서 무엇인가를 채취하는 것을 보고 물어봤더니 우슬초라고 하더군요. 효소 담그는 것을 즐겨하는 저는 우슬초 효소를 담고 싶었으나 그것을 담을 만한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돌아서는 저에게 할머니께서는 같이 뜯자고 권유했고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께서 보자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언제, 어떻게 돌려드려야 하냐고 물었더니 집에 또 있으니까 안 돌려줘도 된다고 하더군요. 할머니 덕택에 열심히 뜯는 재미를 만끽하고, 여러 과정을 거쳐 항아리에 담가 놓으니 마음이 뿌듯하더군요. 효소를 만드는 재미중의 하나는 효소가 발효되고 변화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달콤한 경험을 한 후에 감사한 마음으로 보자기를 깨끗이 세탁하고, 정성스레 접은 후에 산에 다시 가보았습니다. 그 할머니와의 반가운 재회를 기대하며. 그러나 그 이후 그 할머니를 뵙지 못했고, 그 핑크빛 보자기는 아직도 저의 서랍 속에 잘 개켜져 있습니다. 그 후에도 무거운 물건을 같이 들어 주신대거나, 산에서 잠시 쉬는 동안 옆에 앉아 계신 분이 음식을 권하거나 하는 등의 광주에서 만난 친절의 예를 참 많이 경험했습니다. 특히 하하식구들은 고매한 품성 면에서는 광주를 대표하는 ‘갑’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들은 언제나 저에게는 가족같이 친근하고 포근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얼마 전에 건강 검진 차 서울 모 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혼자 병원 식당에서 식사를 주문했는데 그곳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혼자 먹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서 같이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낯선 사람과 밥을 먹게 됐는데,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먹던 중 옆 자리가 공석이 되기 무섭게 앞 사람은 서슴없이 빈자리로 자리를 옮기더군요. 저하고 같이 밥 먹는 것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예전의 저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당연하고 마땅한 행동이었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 그 사람을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저 분은 광주분이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광주 사람이라면 ‘왜 병원에 왔느냐, 문병을 왔느냐, 아파서 왔느냐’ 등등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같이 밥을 먹을텐데......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어쩌면 서로 비슷비슷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일 텐데요. 같은 민족이요,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에 함께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서로 반가워하며 인생살이 이야기도 두런두런 나누면서 같이 밥을 먹는다면 힘겨운 인생살이가 훨씬 더 풍요로워 지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이미 낯선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을 수도. 정감 있는 대화를 나눌 준비도 되어있습니다. 저 광주 사람 다 됐나 봐요.
목욕탕에서의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주신 그 아주머니처럼 나는 광주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격의 없이 대해주시는 태도가 좋습니다. 또한 사람들 사이에 계층을 나누지 않고 어울리는 모습도 좋고, 서로 부대끼면서 사는 모습도 좋습니다. 광주 사람들의 이런 태도 덕에 저도 함께 광주에서 어우러져 살 수 있게 됐고 또 그 점 때문에 광주는 사람 살만한 도시로 보입니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사생활 침해가 쬐끔 있다하더라도 서로 정을 나누며, 다른 사람의 필요에 무관심하지 않고 민감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자세가 저는 좋아졌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게 사는 사람들보다는 관심을 보일 때 세상은 더 밝아지고 아름다워지리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로인해 발생하는 작은 불편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거울은 절대 먼저 웃지 않는다는 말도 있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은 너무 흔한 말이고, 아는 만큼 친구가 되고, 존중해주는 만큼 존중 받는다는 등의 조금은 식상한 어구들을 나는 오늘 소중하게 다시 되새겨 봅니다. 그리고 이제는 먼저 웃기도 하고, 조금 쑥스럽기는 하지만 조금 먼저 관심을 보이면서 살려고 합니다. 광주에서 만난 목욕탕의 아주머니, 산에서 만난 아주머니들, 저는 그들의 이름도 모르고 얼굴조차도 가물가물 합니다. 그러나 그 분들의 마음만은 늘 간직하고 기억할 것입니다. 내가 이기적인 생각이 들 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때, 깊이 간직한 낡은 빛바랜 사진처럼 고이 간직하면서 그 때마다 꺼내보고 다시 상기시키려 합니다.
저는 오늘 광주의 이런 장점들이 귀한 자산으로 여겨지면서 오래오래 유지되고 변질되지 않기를 소망해 봅니다.
첫댓글 우리나라 8대 도시 중에서 가장 못 사는 (?)전라도 이지만 정이 넘치는 사람들입니다.사투리는 또 어떻구요 우리가 쓸때는 모르지만 TV매체를 통해서 들을때면 왜그리 듣기가 거북스러운지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고장 사투리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자세히 들어보세요 얼마나 정감 넘치는지요.이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 광주사람이요,전라도사람들이랍니다.광주사람들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연재님의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제가 듣기에 전라도 사투리는 매우 정감있고 구수하면서 맛나게 들립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찰지게 사용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영주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광주를 좋아하시게 되셨다니 겁나 좋구만, 목욕탕에서 홀랑벗고 악수 한번하시면 더 좋으실텐디?
마음의 문 열어 마주서니 따뜻한 광주의 가슴들이 다가옵니다.서울댁 연재씨의 깊은 인정으로 광주와 좋은 인연 맺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