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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의사 - 안유환
“아무래도 거기 가봐야겠어.”
“어데?”
“K피부과 말이야.”
“조금 더 있으면 낫겠지 뭐!”
“이번엔 심한 것 같아.”
아침식탁에서 남편은 마주앉은 아내에게 턱을 내밀며 입술 아래쪽에 난 뾰루지를 보였다.
“당신이 손톱으로 짜서 자꾸 덧나게 하잖아. 가만두면 저절로 나을 텐데······.”
아내는 환부를 자주 건드리는 남편이 늘 못 마땅하다. 오래전 회사원으로 일할 때 그는 축구를 하다 넘어져 다쳤다. 찰과상을 입은 정강이에 마큐롬과 마데카솔을 발라놓고 거즈를 갈아붙일 때마다 옥시풀로 상처부위를 파 뒤집다시피 닦아내곤 했다. 세균을 말끔히 없애려는 생각이었으나 참으로 무지한 행동이었다. 거품이 일지 않을 때까지 환부를 깨끗이 소독하고 부지런히 약을 발랐지만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그러다 며칠간 지방으로 출장을 가서는 일이 너무 바빠 치료를 잊어버렸는데 집에 돌아 와보니 상처부위가 깨끗이 나아있었다. 아내는 환부를 치료할 때마다 남편이 자연치유력을 방해하던 일들을 되짚었다. 그때는 뭘 몰라서 상처를 덧나게 만들었지만 살아오면서 우리 몸은 자연치유가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아무리 유능한 외과의사라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째고 꿰매고 약을 바르는 것밖에 더 할 수 없다. 그 다음엔 하나님이 낫게 하시는 것이라 믿었다. 옛날에는 웬만한 병이나 상처는 그저 견디는 것이 상책이었다. 넘어져 다친 상처에는 흙먼지를 바르고, 머리가 깨지면 어머니가 된장을 발라 싸매어주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상처가 아물고 아픈 몸도 거뜬히 회복되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더욱 자연치유력에 의지하며 병원으로 달려가기보다는 오래 참고 기다렸다. 턱에 난 뾰루지도 시나브로 낫기를 바라며 오래 견디었다. 그래도 낫지 않으면 여드름처럼 돋은 자리의 고름을 짜내고 쓰다 남은 광범위 피부치료제를 바르면 깨끗해졌다. 그러나 이번 뾰루지는 며칠째 봄 언덕의 냉이처럼 돋아나고 또 돋아났다.
“아저씨 턱이―, 어디 다쳤어요?”
과일을 사러오는 단골손님들은 턱의 상처자국을 볼 때마다 한마디씩 했다.
“뭣이 나더니, 잘 낫지 않네요.”
그는 손으로 턱을 가리며 멋쩍게 대답했다. 하루에도 수없이 그런 말을 듣고 또 듣는 것이 민망했다. 이번에는 약을 발라도 잘 낫지 않고 옆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며칠 동안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치유가 되지 않았다. 아내는 선천적으로 건강 체질을 타고났다. 무얼 먹어도 소화가 잘 되기에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같을 것으로 생각한다. 피부도 언제나 깨끗한 편이며 혹 상처가 나도 잘 낫는 편이다. 그러나 남편은 이따금 원인모를 피부질환으로 고생한다.
그는 지난해 초 항문주변과 사타구니에 걸쳐 습진이 생겨 연산교차로에 있는 M피부과를 찾았다. 그는 돌아서서 엉덩이를 까 내리고 젊은 의사에게 부스럼 자리를 보여주었다. 고무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눌러보던 의사는 대수롭잖다는 듯이 말했다.
“예, 일주일치 약을 처방해드리겠습니다. 약을 먹고 하루 두 세 차례 연고를 바르면 좋아질 것입니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와 일주일을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진은 차도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항문 주위 여기저기에 콩알만 한 돌기까지 돋아나 몹시 가려웠다. 다시 M피부과에 가서 이번에도 일주일치 약을 처방받았다.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환부를 깨끗이 하고 약을 잘 바르세요.”
젊은 의사는 씨익 웃으면서 가려워도 참고 손으로 만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남자다운 서글서글함은 있으나 의사다운 자상함은 보이지 않았다. 그 뒤에도 의사의 말을 믿고 계속해서 약을 먹고 연고를 발랐으나 습진은 낫지 않았다.
“한 달이나 치료를 받았는데도 왜 전혀 낫지 않습니까?”
그는 M병원 의사에게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그는 엉덩이를 까 내리고 환부를 보여주었다.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문질러보던 의사가 말했다.
“피부가 늙어서, 기름기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대로 견디는 수밖에 없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의사가 하는 말 같지 않았다. 못 고쳐도 끝까지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의사들에 비하면 양심적이라고 해야 할까?
“다른 치료방법이 없을까요?”
의사는 옷을 추스르며 허리띠를 매고 있는 그를 보고 혼잣말처럼 “늙으면 죽어야지요!” 라고 말하며 싱긋이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70도 안된 그에게 늙으면 죽어야지요, 라는 말은 너무한 것 같았다. 그러나 웃는 얼굴에 어찌 침을 뱉을 수 있으랴? 그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분을 감춘 채 진료실을 나왔다. 젊은 의사가 참으로 교양이 없고 괘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가 늙어서, 기름기가 없어서’라니! 듣기 좋게 말하기 좋게 ‘피부의 노화현상 때문입니다. 나이 들면 피부질환이 잘 낫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늙으면 죽어야지요’ 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의사가 환자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의사가 아니라도 타인에게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입시과목이 아닌 윤리도덕은 제쳐놓고 다른 공부만 했기 때문일까? 그는 ‘늙으면’이란 말을 되씹으며 집에 돌아와 몇 번이나 거울을 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내 나이가 어떼서?’ 요즘 한창 유행인 대중가요를 떠올렸다.
그는 30여 년 전에 겪었던 일도 아직 잊지 못한다. 백내장 증상이 나타나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서면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안과병원을 찾았다. 그때는 요즘처럼 초기에는 초음파 유화 흡입술로 혼탁한 수정체를 뽑아내고 인공수정체를 갈아 끼우는 수술이 아니라 낭외적출술이었기 때문에 수술을 하려면 수정체가 굳어지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의 어머니 백내장은 50%정도 진척되었던 것 같다. 어머니를 진료하던 의사는 자세한 설명도 없이 불쑥 “봉사되면 오세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다시 물었을 때 의사는 ‘혼탁한 수정체가 완전히 굳어져서 눈이 안보이게 되는 때’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는 아쉬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수정체가 좀 더 굳어져야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백내장은 그렇게 염려할 병이 아닙니다. 좀 더 상태가 진전되면 오시지요.’라고 부드럽게 희망적으로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맞벌이하는 아들내외의 살림을 살아주며 한창 자라나는 손주들을 돌보는 것을 낙으로 삼던 그의 어머니는 ‘봉사되면’이라는 말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며느리가 착해도 앞이 안 보이는 시어미와 함께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어머니는 자리에 눕게 되었고 두 달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의사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것을 그는 톡톡히 경험했다. ‘봉사되면 오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눈을 감고 엉금엉금 기면서 화장실을 찾아가는 연습을 하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늙으면 죽어야지요.’
의사의 말에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 못지않게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국민건강을 돌보며 환자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어야할 의사의 무지한 언어습관에 대한 충격이었다. 그는 다시 M병원을 찾지 않았고 견디는 데까지 견뎌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피부가 늙어서, 기름기가 없어서 그렇다는데 다른 도리가 없었다. 죽을 때까지 참으려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인내로 이어갔으나 가려움이 너무 심해 도저히 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언젠가 무좀 때문에 몹시 고생할 때 바늘로 찔러서 피를 빼는 것으로 가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날로 의료기기상에 가서 사혈침을 사와서 가려운 곳의 피를 빼보기로 했다. 저녁이 되면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살고 있는 손주들이 불시에 뛰어 올까봐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의사 앞에서 보였듯이 아내 앞에 엉덩이를 까 내리고 돌기부분을 찔러 피를 빼기 시작했다. 크리넥스 티슈를 한 뭉텅이나 적셔낼 만큼 검붉은 피가 나왔다. 그러고 나면 가려움증도 사라지고 돌기도 낮아져 치료가 되는 것 같았다. 그 이상한 의사보다 아내의 손이 약손이었다. 밤이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피를 빼는 일을 계속했다. 시원하고 견딜 만하기는 했으나 완치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이 없기에 저녁이면 TV연속극에 열중하는 아내를 불러대느라 실랑이를 했다.
그 상태로 지속만 되어도 견딜 수 있으련만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세균감염 때문인지 가렵던 부분은 종기처럼 큰 부스럼으로 변했다. 의자에 앉아 있기도 불편했다. 과일가게에서는 가운데 구멍이 뚫린 방석을 구입해 사용했지만 치료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에 쓰다 남은 습진연고를 발라보았지만 가려움증은 더욱 심해졌다. 마침내 다른 병원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났다. 그에게는 사고의 일대 전환이었다. 오래전부터 그와 아내는 한번 거래를 하기 시작한 가게는 좀처럼 바꾸지 않았다. 약국이나 병원도 다른 곳을 찾지 않았고, 재래시장에서 장을 볼 때도 늘 가던 집을 찾는다. 단골집을 바꾸는 것은 신의를 배반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요즘 세상에 고지식한 자신의 모습이 새삼 부끄러웠다.
늘 이용하던 M피부과는 빌딩지하에 넓은 주차장도 갖추고 병원 간판도 눈에 잘 띈다. 여인들의 박피나 점을 빼는 피부 관리를 위해서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새로 찾아간 K피부과는 건물도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골목 안쪽에 있었다. 그의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나지막한 건물 너머로 지붕위에 세워진 ‘K피부과’ 간판이 보일 뿐이었다. 그는 병원의 위치가 진료하는 의사의 실력과 정비례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늘 다니던 병원을 두고 그 옆의 다른 병원을 찾는 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진 골목에 위치한 K피부과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주차장도 없고 교통도 불편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K피부과에 처음 가던 날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람들의 왕래도 그리 많지 않고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뒷길에 위치한 병원 대기실에 환자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전철을 타면 엉덩이부터 먼저 들이미는 아줌마들 같으면 틈새를 비집고 소파에 앉을 수 있을 것이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체면을 생각하며 서있는 그의 뒤에 들어온 한 아주머니는 소파 끝 쪽에 엉덩이를 절반쯤 붙이고 앉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자리를 조금씩 좁혀주었다. 그의 차례는 언제 돌아올지 몰랐다. 5평 남짓한 좁은 로비에 15명이 넘는 대기환자는 한참 만에 한사람씩 진료실로 불려 들어갔다. 그는 시간을 재보며 생각했다. M병원 경우를 미루어보면 피부과 진료는 3~4분, 길어야 5분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K피부과 진료는 5분을 넘기는 것은 보통이고 대부분 10분을 넘기고 있었다.
엉거주춤하게 서있던 그는 조금 전에 진료실로 들어간 사람의 빈자리에 끼여 앉아 신문을 펼쳐보고 있었다. 한 예쁘장한 아가씨가 들어와 그가 서있던 자리에 서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몇 번이나 시계를 들여다보아도 시계바늘은 늘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5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10분이 지나도 앞서 들어간 환자는 나오지 않았다. 한사람에 5분씩만 잡아도 그의 차례는 1시간 반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한참 후에 진료실에 들어간 중년 여인은 다행히 5분이 체 못되어 나왔다. 그는 의사가 진료를 잘해서 환자가 많은 것이 아니라 진료시간을 늘려 잡기 때문에 환자가 많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박 한 시간을 넘기고 그는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 맞은편 벽에는 ‘嚬來笑歸’라 쓰인 액자가 걸려있었다. 그는 두 번째 그 병원에 갔을 때 첫 번째 글자가 무슨 자인지 물었다. 찡그릴 빈, 올 래, 웃음 소, 돌아갈 귀, ‘찡그리고 왔다가 웃으며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좋은 말이지만 그 의사는 웃음을 주는 사람이기 보다는 언제나 깐깐한 인상이었다. 책상위에는 모니터32인치 데스크톱이 놓여있고 의사는 약간 이마가 벗어진 조그만 체구였다. 그의 뒤쪽에 위치한 전문서적 책장이 병풍처럼 그를 감싸고 있었다. 키는 160cm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의사에게 궁둥이 습진의 경과를 자세히 얘기했다. 의사는 일어서서 한 뼘쯤 열려있던 진료실 문을 닫으며 환부를 보자고 했다.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굽히고 엉덩이를 까 내렸다. 의사는 환자의 환부를 긁은 슬라이드를 작은 창틀 옆에 놓인 현미경 재물대에 올려놓았다. 초점조절 손잡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말했다.
“진균이 있습니다.”
“진균이 어떤 것입니까?”
그가 물었다.
“곰팡이가 피부에 감염되어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염모제 때문에 오는 수도 있습니다. 머리염색을 하고 있습니까?”
“머리 염색을 한지는 10년도 넘었습니다. 머리에 염색을 하는데 왜 궁둥이에 진균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그는 항문주위의 피부염이 염색약 때문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시중에 유통 중인 염모제를 사용하고 나서 피부발진, 탈모 등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시력손상까지 가져오는 사례가 해마다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머리염색약은 여태껏 아무 탈이 없었는데 왜 이제 발병을 하지요?”
“술병으로 건강을 잃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 병이 술 때문이라고 말하면 이때까지 술을 마셔도 괜찮았는데요, 라고.”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만······.”
그는 더 이상 대답할 말이 없었다.
“어떤 질병이나 몸의 가장 약한 부위에서 부작용이 먼저 나타납니다. 젊을 때는 저항력으로 병을 이겨낼 수 있지만 나이 들어 면역력이 떨어지면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습진이 여기저기 나타나지요.”
“습진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 지요?”
“피부가 외부로부터의 복잡한 화학물질, 세균, 곰팡이, 이종단백질 등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경우는 영양상태의 불균형, 기름샘의 과다분비 및 외부의 단순자극에 의해 생기기도 하는 피부염증입니다. 물집이 생기거나 붓고 진물이 나고 가렵고, 증상은 여러 가지입니다. 분명한 원인을 잡아내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현미경으로 검사를 합니다. 피부병에 현미경을 사용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의사는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환자들이 유의해야할 대처방법을 말했다.
“고추, 마늘, 양파를 먹지 않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매운 고추를 또 고추장에 찍어 먹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바보예요! 매운 것이 얼마나 인체에 해롭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는 의사의 자상한 설명이 마음에 들었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바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신문 건강섹션에 나온 ‘양파의 효능’을 떠올렸다. 혈액속의 불필요한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피를 맑게 함으로 고혈압·당뇨병을 예방하고 콩팥기능을 강화시켜 신장병치료에도 도움을 준다고 했다. 생전의 그의 부친도 양파를 즐겨먹는 것을 보았다.
“양파는 우리나라보다 중국인이 더 많이 먹잖아요. 특히 혈압조절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고―, 중국인들은 기름진 것을 즐겨 먹어도 양파를 많이 섭취하기 때문에 성인병을 이길 수 있다고 하던데요.”
“짜장면에 양파가 많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짜장면은 중국음식이 아니지요. 중국 사람들은 양파를 그렇게 많이 먹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참 바보예요!”
“중국에 여행 갔을 때 전통 중국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는데 양파가 안 들어간 음식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중국 사람들이 양파를 많이 먹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바보예요. 김치도 매운 양념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요즘 김치는 세계적인 식품이 되었고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김치를 즐겨 먹었습니까. 한때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일대에 유행했던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의 피해를 입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김치를 즐겨먹는 것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글쎄요―. 우리조상들은 참 똑똑 했습니다. 그들이 어디 매운 것을 즐겨 먹었습니까? 그런데 후손들은 매운탕, 낙지볶음, 비빔냉면, 아구찜 등등 매운 것만 골라서 먹지요. 진짜 음식 맛은 매운 것을 빼면 나타납니다. 조상들은 백김치, 동김치, 물김치, 나물 등을 즐겨 먹었습니다. 한국인들은 모두 바보입니다.”
채식주의자인 것처럼 보이는 의사의 말은 참으로 듣기 싫었다.
“한국인들이 세계 200여개나라 가운데 경제·문화 분야가 10위권이란 것은 원장님도 아시잖아요.”
의사가 말끝마다 ‘한국인은 바보’라는 말에 그는 한국인의 우수성을 제시했다.
“우리는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외국인들은 실제로 그렇게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계최고라고 말하는 것들은 선진국에서 보면 마치 어린아이 장난 같은 원시적인 것들도 있어요.”
그는 의사의 말에 한편은 수긍이 갔다. 오래전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옛날 초중고생의 수학여행은 모두 경주 불국사를 찾았다. 불국사 대웅전 앞 석가탑과 다보탑은 세계적인 조형물이며 자하문의 청운교 백운교는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예술작품이라고 배웠었다. 석굴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기억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나일강 중류 테베의 룩소르를 방문하면서 불국사와 석굴암은 아이들 장난감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에서 “테베는 집집마다 보물이 가득하고 100개의 성문이 있는 도시”라고 말했다. 100개의 성문이 있는 거대한 도시에 비하면 서울의 4대문은 역시 장난감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의사의 말에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때 간호사 한사람이 진료실 문을 노크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전달과 함께 의사가 진료를 빨리 끝내주기를 바라는 신호였다. 의사가 환자들의 얘기를 낱낱이 다 들어주며 설득작업을 펼치는 시간이 끝없이 이어질 때 간호사들은 이런 방법으로 의사를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인이 다 바보가 아니라 그 의사가 바보인 것 같았다. 좁은 대기실에 넘쳐나는 환자들을 빨리 빨리 진료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그의 습진진료에 소요된 시간은 30분도 더 지난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의사의 시간을 뺐고 싶지 않아 입을 닫았다. 처방을 기다리는 그에게 의사는 말했다.
“우선 1주일 정도 약을 먹어봅시다.”
그는 서둘러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대기실의 환자들의 눈망울이 모두 그에게로 꽂혔다. 어쩌면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은 몹시 원망하는 눈초리였다. 돌아와서 3~4일 약을 복용하자 가려움증이 사라지고 진물도 나지 않았다. 그 후 2주 동안 더 약을 복용하고 궁둥이의 습진은 깨끗이 치료되었다.
그러나 머리염색은 큰 숙제였다. 아직 흰머리로 살아가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즈음 신문광고에 ‘흑발청춘’이라는 염모제 광고가 잇달아 나왔다.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고 염색방법도 간단하고 오랜 연구를 통해 부작용은 전혀 없다는 내용이었다. 머리염색 알레르기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솔깃한 말이었다. 그런 광고를 보고 그 염모제를 구입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는 전화로 3개월 치를 구입했다. 대금은 20만원. 그가 이때까지 사용한 염모제에 비하면 10배쯤은 비싼 것 같았다. 그러나 이때까지 써온 염색약이 부작용 때문에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새로운 염모제를 만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는 흑발청춘으로 머리염색을 하고 며칠을 지내보았으나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 달 후 두 번째로 염색을 하고나서는 사타구니에 두드러기가 돋았다. 곧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1주일이 되어도 낫지 않았다. 의사가 그렇게 매운 것을 먹지 말라고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식성을 당장 바꿀 수는 없었다. 그는 처음 얼마동안은 맵지 않게 먹다가 다시 옛날 식습관으로 돌아갔다. 그날은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좋아하는 아구찜 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이튼 날은 사라질듯 하던 두드러기가 더 심하게 번졌다.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어 다시 K피부과를 찾았다. 이날도 대기실에는 환자가 가득했다. 웬 피부병 환자가 그렇게 많은지? 그는 의사에게 ‘부작용이 없다는 머리염색약’으로 바꿨다는 말을 했다.
“어떤 염모제도 부작용이 없는 것은 없습니다.”
의사는 단언했다.
“이번에도 그럼 염색약 때문인가요?”
그는 허리띠를 풀어 사타구니를 의사에게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손가락으로 환부를 쓸어보면서 의사는 “음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구찜을 먹은 것을 실토했다. 매운 것을 먹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그저 흘려들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바보예요. 그토록 매운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는 습관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한국인들이 고추 마늘 빼버리면 무슨 맛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한국축구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고 올림픽에서도 동 메달을 따는 것을 두고 이구동성으로 고추장과 김치 때문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는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의사의 말을 맞받았다.
“우리 조상들은 똑똑 했지만 후손들은 다 바보예요. 조상들은 매운 것을 먹으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 의사는 참으로 괴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럼 조상들이 매운 것 먹지 말라는 말은 했어요?’ 라고 반문하고 싶었으나 시간만 더 길어질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어떻든 그의 피부병은 K피부과만 다녀오면 깨끗이 나았다. 그는 좀처럼 낫지 않는 외손자의 아토피성 피부염도 거기 가서 치료하라고 일러주고 친척들에게도 K피부과를 추천했다.
그는 대기하는 시간을 줄이려 오전 9시,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병원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기 때문인지 대기실에는 한사람의 환자도 없었으나 잠시 후에는 소파의 빈자리가 하나씩 메워졌다. 입소문이란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K병원을 다녀간 지는 1년쯤 지났다. 10시부터 진료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어떻게 오셨어요?”
모니터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하며 의사가 물었다.
“턱에 뭐가 자꾸 나서요.”
그는 턱을 내밀며 대답했다. 의사는 늘 그랬던 것처럼 슬라이드로 입술 아래에 돋아난 뾰루지 자리를 슬쩍 긁어서 만든 프레파라트를 현미경에 올려놓고 관찰했다.
“세균이 보입니까?”
그가 물었다.
“상처에는 다 세균이 있습니다.”
그의 대답으로 미루어보아 그렇게 심각한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매운 것, 고추, 마늘, 양파를 먹으면 안 됩니다.”
의사는 언제나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원장님은 댁에서 어떻게 식사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먹는 대로 따라하지는 못합니다.”
전에도 물은 적이 있었지만 의사는 끝내 그가 집에서 반찬을 어떻게 해먹는다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참 바보예요. 매운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고―.”
의사는 똑같은 ‘처방전’을 늘어놓는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똑똑한데요. 경제는 세계 7위지만 다른 분야를 종합해도 10위권이라고 하잖아요.”
그는 했던 말을 다시 하며 오늘은 그에게 좀 따져보고 싶었다.
“그건 우리 생각이지 세계가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의 ‘한국인 바보’ 생각은 요지부동이었다.
“엊그제 신문 보셨지요? 한국국력이 세계 아홉 번째로 평가되었다는 것. G20(주요20개국)을 대상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국방 등 13개 부문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결과라고 보도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정치만 좀 업그레이드되면 일류국가에 손색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는 신문의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신문에 나는 것이라고 다 믿을 것은 못됩니다. 거짓말이 얼마나 많은데요. 통계는 조사자의 의향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모릅니까? 보도는 참고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보도는 참고로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사의 주장은 옳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가 공인하는 ‘10위권 한국’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사의 태도가 고집스런 바보처럼 보였다. 그는 조상들이 매운 것을 먹으라고 일러주지 않았다는 의사의 주장에 다른 반론을 제기했다.
“우리 조상들은 면역성이 강한 매실은 많이 먹으라고 했잖아요?”
“그건 바보 같은 사람들이 맛을 내기위해 즐겨 먹는 것이지 허준이 많이 먹으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의사는 바보론을 굽히지 않았다.
“그가 전염병 치료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매실이 좋다는 말 아닙니까?”
그도 물러서지 않았다.
“매실과 설탕을 1대1의 비율로 액기스를 만드는 것, 그것은 어쩌면 설탕 덩어리입니다. 매운 것도 단 것도 우리 몸에는 다 좋지 않습니다.”
설전 아닌 설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노크소리와 함께 간호사가 진료실 문을 열었다. 그는 반론을 접고 “알겠습니다.”라는 말로 의사에게 동의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기실 안에는 어느새 환자들이 꽉 차있었다. 무수한 눈망울이 그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나오면서 그는 생각했다. ‘그는 참 바보야!’ 한사람 씩 빨리 진료를 하면 수입도 더 늘어날 것이고 좋은 자리에 높은 빌딩도 올릴 수 있을 텐데, 의사는 환자의 무지를 깨우쳐주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의사의 지시대로 빠트리지 않고 하루 한차례 약을 먹고 연고를 발랐다. 기대와는 달리 환부는 충혈되고 상처는 덧나는 것 같았다. 마지막 이틀간은 약을 먹지도 바르지도 않으니 한결 나은 것 같았다. 꼭 1주일 만에 K피부과를 다시 찾았다.
“피부가 더 가렵고 충혈되어 이틀간은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뾰루지가 덧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의사가 혹시 잘못 진단한 것이 아닌가 하는 투로 말했다.
“균이 죽으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일시적으로 더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의사의 지시대로 약을 먹어야지요. 의사가 공연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연구해서 하는 말인데 한국인들은 모두 자기가 의사예요.”
의사는 말끝마다 반론을 제기하는 그에게 이제는 실력으로 권위를 세우려는 것 같았다. 그는 처방전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왔다. 답답한 것은 환자인 자신이기 때문에 그는 의사의 지시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사흘 후에 병원에 다시 들렸을 때는 환부가 꺼득 해지고 약효가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의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지는 않았다.
“같은 것이 아니라 낫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바보예요. 모두가 즐겨먹는 등 푸른 생선, 고등어·참치도 알고 보면 다 좋지 않습니다.······”
의사는 자기주장을 더욱 확대해 나갔다.
“선생님은 피부진료 하나를 두고 우리 모두를 바보라고 말씀하시는데 또 다른 바보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는 자기 앞에 있는 환자와 한국인 모두를 너무 무시하는 어투 때문에 의사의 말을 잘랐다. 의사의 말을 다 들으면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국민의 한사람인 의사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한국인을 ‘모두 바보’라고 말하는 것은 들을 때마다 견디기 어려웠다.
“한국인들이 바보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대표적으로 정치인들만 보아도 생각할 수록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어요. 90년대 말은 북한이 고사 직전 상황에 놓여 있었어요. 마치 꺼져가는 등불과 같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솝우화를 빌어다 햇볕정책을 펴고 5년 동안 북한에 퍼주기를 하여 항복하려는 적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격려하는 꼴이었어요. 그 후임 대통령이 그 정책을 계승하므로 죽어가는 그들을 회생시켰습니다. 사실상 핵무기를 만들도록 도와주고 이제 그 핵무기 때문에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어요. 우리 정치인들은 다 바보예요. 수십만의 정치범들을 수용하고 처형하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국회의원이 RO조직을 이끌고, 적화통일을 호시탐탐 노리는 북쪽에 동조하려는 정치인들이 제정신이 있는 사람들 입니까? 자기 고모부를 방사포로 가루를 만드는 끔찍한 상황을 보고 들으면서도 일부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북한인권’은 입 밖에도 내지 않고 그들을 옹호하고 있잖아요.······”
열변을 토하던 의사는 입이 마른지 머그잔에 물을 부어 마시고 그에게도 종이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말을 계속했다. 그는 ‘또 다른 바보는 어떤 사람들’이냐고 반론을 제기한 것에 대한 대답을 들으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다 비슷한가 봐요.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러시아의 태도를 보면서 크림반도 대학생들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잖아요. 혼란만 발생하지 않으면 어느 국가에 속하든 상관이 없다고 하니―, 요즘 젊은이들은 참 이기적인 것 같아요. 이기적이란 바보들이 하는 놀이지요. 지금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맹목적으로 북을 추종하고 있어요. 한국인들은 다 바보예요.
경제적인 면은 어떻습니까? 상하이나 싱가포르에서는 외국 자본이 독자적으로 은행·병원·테마파크를 세울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자유무역지대에 투자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내국인과 동일한 대우를 약속하고, 5~10% 법인세 면제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재능 있는 외국인들이 영주권과 시민권을 쉽게 얻을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인허가 과정이 너무도 까다롭고 근로자들은 높은 임금을 요구하며 집단 파업을 연례행사처럼 벌이고 있으니, 임금이 싸고 절차가 수월한 나라를 찾아 기업들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정치지도자들도 다 바보처럼 보여요.”
의사는 머그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그렇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했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만약 해외로 나갔던 우리 기업의 직접투자가 모두 ‘한국 땅’에서 이뤄졌다면 제조업에서만 65만개의 일자리가 생겼을 것이라고 했어요.”
그는 의사의 현미경적 안목에 공감을 표했다. 간호사가 노크를 하고 진료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으로 이끌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현미경을 바라보고 벽에 걸린 액자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嚬 來 笑 歸’
그는 의사는 이때까지 돈 버는 데만 치중하는 줄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의 생각은 바로 그의 생각이었다. 모처럼 시원한 말을 주고받았다. 병원을 찾을 때마다 그는 아픈 것 때문에 찡그리기보다는 ‘한국인은 바보예요’라는 그 말을 또 들을 것이란 생각 때문에 찡그리며 진료실에 들어섰다. 그러나 오늘은 웃으면서 병원을 나서게 되었다. 오랜 습진도 다 나았고 답답하던 가슴도 한결 가벼워졌기 때문이다.(한국동서문학:2016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