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의 파이프오르간은 동안거 중이다 외 2편
—낙대폭포
백선혜
심장으로 흘러든 힘겨운 무게 음이
흐르다 멈춰버린 낙대폭포 시린 길에
노승의 파이프오르간 동안거 중이다
끌어안아 쏟아내는 남겨진 자국들과
골짜기 묵은 사연 명치끝에 걸어두고
날이 선 대쪽과 같은 마디뼈를 거둔다
바람벽에 밀봉한 채 신열을 잠재우며
말갛게 속 보이는 참선에 들어갈 녘
떨어진 한 잎 낙엽도 이젠 수도승이다
오십견 앓는 밤
골밀도
퇴행성이
날 세워 덤벼드는
축시를 넘어가는
불면의 골든타임
날밤에
뭉그러지는
참아왔던 퍼즐 조각
가을 산
한 그루 단풍나무
홍등을 밝혀 드니
우르르 온 산 가득
술렁술렁 넘친다
각질로
두터워져버린
잎맥에 흐르는 피
초록의 간극으로
마침내 터져 나와
늘어진 꽃숭어리
연신 붉게 흩날려도
꽃인지
꽃이 아닌지
난분분한 가을 산
당 / 선 / 소 / 감
빈 찻잔 속 커피향을 마시며 써온 그리움들
커피는 못 마시지만 커피향은 즐겨 마십니다 다
마시고 남겨진 빈 찻잔 속 커피향을 마시면서
그리움의 글을 씁니다
어쩌다 커피까지 마신 날은 그 그리움 곱으로 쓰느라
그 밤은 하얀 밤이 됩니다
그렇게 써왔던…
하지만,
아이가 크듯이 저 또한 클 줄만 알았던 내 삶 속의 글들은
도저히 세상밖으로 나올 줄 모르고
어느새 초로를 걷고 있는 60대의 해진 삶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건,
오래된 미결을 기억 속에 버리고
더운 사우나에서 뛰쳐나와 다시 사우나 속으로 들어가는 일
제 글에 눈을 뜨게 해주신,
저에게 선물한 큰 상에 누가 되지 않도록
그렇게 자신을 연마하겠습니다.
백선혜 대구 출생 정음시조 동인
심 / 사 / 평
역동성과 큰 보폭이 가능성 갖게 해
심사위원 문순자, 이종문(글)
환한 봄날, 봄처럼 푸르고 봄보다도 싱싱한 작품을 번쩍! 들어 올리고 싶었다. 그러나 심사대상으로 올라온 다섯 분의 작품들 중에는 ‘됐다, 이거야!’ 하고 외치고 싶은 걸출한 작품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 심사위원들은 누구를 선뜻 뽑는다기보다는 내려놓을 작품들을 먼저 내려놓고 남는 작품들을 쓴 사람 가운데 신인상 대상 자를 골라 보기로 했다.
이러한 견지에서 발견의 새로움을 찾아보기 어려운 평범한 일상을 다룬 작품, 시적 형상화가 전제되지 않은 산문적 직설로 이루어 진 작품, 시조의 형식을 갖추고 있기는 했지만 시조의 가락을 살리지 못한 작품, 표현의 참신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작품 등을 내려놓 았다.
그 결과 김은생 씨와 백선혜 씨의 작품들이 남았다. 김 씨는 「모서리」라는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을 주무르는 솜씨가 남달랐다. 「고속도로에서」에서 볼 수 있는 비유의 재치에도 눈이 갔다. 그러나 여러 곳에서 말이 늘어져서 리듬의 긴장과 탄력을 놓치고 있었는데, 시조에 대한 공력이 부족한 데서 오는 미숙함이 그 원인으로 판단되어 아쉽지만 내려놓기로 했다.
백선혜 씨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장중하고도 역동적인 기세가 돋보였다. 수직의 낙대폭포를 파이프오르간에 비유하고, 겨울의 한 파로 빙벽이 된 파이프오르간을 동안거 상태에 비유한 「노승의 파이프오르간은 동안거 중이다」가 특히 그렇다. 이 작품은 비유가 빛 나는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데다 전반적으로 힘이 넘쳤고, 세계와 인간에 대한 사유의 깊이가 느껴지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은 백 씨의 작품들에서 세부적으로 구체적인 의미가 모호하거나 시상의 흐름과 그 기맥이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섞여 있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큰 보폭을 지닌 백 씨의 미래의 가능성에 크게 기대를 걸기로 했다.
당선한 백선혜 씨에게 뜨거운 축하를 드리며, 앞으로 부단하게 정진하여 시조단에 지각변동을 일으켜주시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에 선에 들지 못한 분들에게는 정말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시조의 형식에다 현실 인식과 표현미학을 제대로 담아낸 빼어난 작품으로 다시 한번 도전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