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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모년 모월 모일. 화창한 가을
그의 전화를 받은 것은 뜻밖이었다.
이미 오래 전에 떠난 직장이었지만 한때 우리는 같은 회사에 근무했고 더욱이 입사 동기였다. 한 이십여 년 울고 웃으며 함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남다른 우정을 쌓았다.
유달리 작은 키의 그는 시골 출신에다 구수한 사투리까지 나와 닮았으니 우린 남다르게 친하게 지냈다. 단언컨대 누구보다 우린 열심히 일했다. 우리가 보인 노력으로 회사 안에서는 기대주로 꼽아주었다.
대개 기업체에서는 사원에서 과장까지는 큰 탈이 없으면 승진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 다음이 문제인데 부장은 녹녹한 게 아니지.
부장까지 앞서가던 그가 별안간 사표를 던진 것은 의외였다.
전화로 어렴프시 들은 바는 있었지만 그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다. 사장과 부사장 간의 밀고 당기기 싸움에 애매하게 그가 걸려든 게 탈이었다. 밀고 당기기 싸움이란 것도 그랬다. 회사 영업에 큰 영향이 있을 건 없고 그저 다소간의 의견 차이가 두 우두머리의 자존심을 불 지른 것이었으니 일개 부서장의 목숨이야 하찮은 건지 모르겠다.
여하튼 자리를 내동댕이치고 만난 날, 주량도 시원찮은 그가 코가 삐뚜러지게 마시더군.
사표를 낼 것까지 뭐 있냐고 말려봤지만 혀가 꼬부라지게 취한 중에도 분명히 이런 말을 했었다.
'쉬고싶어서 그래, 이제 지쳤어'
뜻밖이었어.
매사 날을 세우고 덤벼드는 공격적인 나와는 달리 그는 참 원만했거든. 유달리 작은 키 때문에 그는 덕을 많이 봤다. 씩 웃을 때면 얼굴이 통째로 녹아드는 게 바로, 하회탈이었어. 언제나 넉넉한 모습을 보이는데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던가?
상사들이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독종인 자네하고 마음씨 좋은 촌영감이 친하게 어울리는 게 고이한 일이고.'
내가 사표를 던진다면 어울릴 거 같은 데 말야.
아무튼 그는 시골로 돌아갔어.
배농사를 짓는다고 했어. 임마 너 농사는 지어본 적이 있어 물어보면, 학교 다닐 때도 집에 와서 농사를 거들려고 하면 어림도 없다고 엄하게 야단치셨대. 평생 허리도 펴지 못하고 농사만 짓던 그의 부모님께서는 집안의 맏이가 대학도 가고 서울 여자와 결혼해서 아들 낳고 오손도손 사는 걸 원하셨던 게야. 대 기업의 부장이 되어 번듯한 자가용을 굴리고 시골에 내려 온 걸 보는 것이 부모님의 소원이셨겠지. 또한 그는 부모님의 간절한 소원을 멋지게 이루어 주었어.
그런데 나잇살이 쉰을 바라보는 무렵에 덜컥 낙향 해버리고 과수원에 나가서 농약을 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으니...
귀향한 첫 해와 이듬 해 까지는 자주 전화를 주었어.
힘들지 않은가 하고 물어보면 할만하다고 하는 의젓한 모습이 눈에 보이듯 생생했지.
그가 떠나고난 그 다음 해에 우리 회사가 부도가 나고 말았어.
참 웃음이 나더군. 아무리 아이엠에프라 해도 그렇지 우리 회사가 보통 큰 회사던가. 영업실적 또한 얼마나 우량했었는데 말야. 알고 보니 사장이라는 자나 부사장이라는 자나 똑 같았어.
‘부’짜 붙은 놈은 실력이 모자란 건지 모르지만 부하 직원들만 달달 볶았어. 지 몸 하나 까닥하지 않던 그가 한 건(件) 따오기는 했는데 알고 보니 회사에 아주 불리한 옵션이 붙었더군.
예상대로 거래선에서 소송을 건다 시끄러우니 더 높은 녀석은 잘 됐다고 대주주한테 일러바쳐 짤랐지. 그건 좋아. 가라지를 솎아 낸 거니 회사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나쁜 건 아닐테니.
더 높은 양반은 정말 큰 일을 내버렸지.
대주주가 회사 돈을 빼내려하니 덜컥 사인을 해준 게 아니겠어. 부하들이 말렸고 법에 걸리는 데도 말야. 자그만치 천오백이나.
이 글을 읽는 분은 천오백이 정확하게 얼만가 알아맞추어 보시지요. 그 당시 돈이래도 이 금액이면 보통 큰돈인가?
큰 거래선 접대하는 게 주 업무인 내가 골프 나가서 술을 걸친 밥상 한 번 거하게 차려 대접한 영수증을 올리면 별 껄 다 물어보았어. 혹시 거래선 말고 친구하고 놀아난 거 아닌가 꼬치꼬치 캐물었어.
양반이라서 앗사리하게 대놓고 묻지 않고 애둘러 묻는 게 웃기더군.
거래선 근황도 묻고는 은근하게 가십거리도 끼어서 말야. 접대한 게 맞는가? 테스트하는 거겠지.
제가 일요일에 한 번 골프 나가 쓴 접대비가 얼마였나고?
한 오십에서 칠십 되었겠지. 그것도 부하나 상사 하나 데리고 나가 쓴 경우지. 제가 잘 나갔다고?
에이 왜 이러슈, 접대 한 건에 다음 날이면 몇 천에서 억정도 회사에 이익을 올려 주는 데 어쩌라고. 세상에 밑천을 들여야 돈을 버는 게 아니겠소.
아직도 제가 물어본 돈의 단위를 모르겠소?
사장이라는 한심한 양반이 날린 게 천오백이고 내가 쓰는 접대비가 건당 많으면 칠십이라면 돈의 단위가 어떻게 되는지 아시겠지. 억과 만의 차이라고요.
이야기가 빗나가버렸네.
졸지에 부도 난 회사에 뭐만 남더라고.
그해 겨울은 억세게 추웠어. 나라가 온통 추위에 거덜 나게 생겼더라고. 그가 일부러 올라와서 위로하더군. 지나고 보니 미리 회사를 때려치운 그가 부럽더라고. 전화위복이 되어버린 셈이지.
풀이 죽어 지내다가 규모는 좀 적었지만, 임원으로 날 모셔간 데가 있었어. 살아난 게지.
그해 그는 배 농사에서 폭삭했대. 농사 아무리 잘 지어보니 뭐하는가. 아이엠 에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뭐가 좋다고 과일을 깎아 먹겠는가. 판로가 막히고 값도 똥값이 되어버려 그냥 갈아엎었다 했어. 서툴지만 뒤 늦게 벌린 농사 일이 손에 익힐 만하니 우환이 그치지 않는 듯 했어.
나도 공짜로 임원이 된 게 아니었어.
숱하게 고생하면서 버티어 보았지만 커오는 젊은 사람들 땜에 밀려난 거지. 또 imf 뒤끝이라 사건은 좀 많았을까? 아무튼 물러나왔으니 쉬는 게 좋겠지만 어쩌나, 그냥 퍼질러 앉아 있을 수는 없잖겠어. 다시 사무실에 나와 소일하고 있는 참에 그가 전화를 해준 거는 뜻밖이었어.
"나, 지금 병원에 있네."
부랴부랴 달려갔어. 시골 아낙이 다된 그의 아내가 넋을 잃은 표정으로 맞아 준다. 검사하러 내려갔다는 말을 듣고서 차근차근 사연을 들었지.
서울사람이 공해에 찌들어 산다는 건 거짓말이래.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보면 농약에 중독되기 쉽다네. 밭이나 논농사는 문제도 아니고. 농약을 쳐도 밑으로 치는 거니까 마스크를 쓰고 바람 부는 방향을 등지고 치면 별 문제 될 것 없다지. 과수원이 문제라네. 나무를 올려다보며 약을 쳐야하기 때문에 아무리 조심해도 농약을 고스란히 마실 수밖에. 서울까지 실려 온 그가 한 동안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었다는군. 오죽하면 대세까지 받았다니까 할 말이 있겠어.
막상 얼굴을 대하니 다행이었다. 볕에 찌들어 촌로가 다 되었지만 씩 웃는 모습은 별반 변하지 않았더군. 정신을 잃고 넘어지고 실려오는 와중에 어디에 부딪친 건지 앞니가 세 대가 나가서 완전히 노인이 다 되어버린 게 마음이 아팠다.
"자네가 성당에 다녔지 아마"
"그래, 니 댈코 갈라꼬 저승사자가 왔다가 니가 대세를 받은 덕에 돌아간 기라. 자네는 저승 문턱에서 살아온 줄 알어라"
"글세말이야. 마누라가 어떻게 대세를 줄라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 참 신기하더군."
“이제 교리 공부해갖고 진짜로 신자가 되그라"
"글세말이야, 그래야 되갔어."
이런 말을 나누고 했지만 그의 얼굴빛이 썩 시원해보이지 않았어.
"참 자네 아들 하나랬지. 장가는 보냈는가?"
"그래, 재작년에 보냈지. 지금 손주가 하나라네"
"이 사람아, 나한테는 청첩장도 안보내고 섭섭하이."
"미안하이, 워낙 갑자기 하느라 경황 중에 빼먹었네."
이빨 빠진 사이로 말이 새는 탓에 겨우 알아들었다.
"자네 병실은 며느리가 지키면 되겠네"
"으~음, 뭐 고생시킬 거 뭐있나. 우리끼리 있으면 되지."
"이 사람아, 며느리 봐서 뭐할라꼬."
"사실 연락이 안돼."
"연락이 안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고?"
"아직 얼굴도 못 봤다네"
"아들이 서울에서 직장 다닌다했잖아?"
"벌써 나와가꼬 지 사업한다고 그랬지."
아무래도 심상찮아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글쎄 지난 추석에도 고향에 다니러 오지 않았다는군. 공장이 잘 돌아가 바빠서 못 내려온다고 전화를 주더래. 그래, 추석 쇨 돈이라도 보내던가? 하고 물어보니 정신없이 공장 돌리느라 한가할 때 잠시 다니러 내려오면 용돈 드리지요 했다는군.
내가 '괜한 소리지, 면목 없으니 공장 핑게 댔지.'
불쑥 말이 튀어나올 뻔 했어. 침울해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니 사태의 전말을 이미 짐작하는 거 같았어. 집으로 연락해보아도 전화를 받지 않고 지 고모가 가봤더니 이사 간 지 꽤 오래 되었대.
다시 오리다. 하고 병원을 나서며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 아들내외와 앙증맞은 손을 흔들고 있을 손주를 떠올려 보지만 도무지 마음은 막막했어.
백악의 병원을 나서면 사차선 도로가 외로운 섬을 휘돌아 가고 있었어.
강변이라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왔어. 그때마다 벚나무가 무성한 갈색의 잎을 바람에 손 잡혀 떠나보내고 있었어.
외로운 섬.
강변에는 벚나무가 총총히 줄을 서 있어, 흡사 사열병처럼. 그래서 섬은 한결 포근해 보였지. 우리가 다니던 회사는 섬 깊숙이 은행나무가 무성한 금융가 한가운데에 자리했어.
섬이란 좀 묘한 데가 있어. 일부러 섬을 돌아 죽 벚나무를 심었는가 하면 그 안으로는 은행나무를 배치한 것은 아무래도 대단한 조경솜씨임에 틀림없어.
봄이면 현란하게 벚나무가 만개했지. 세상의 꽃이란 필 때가 더 아름답지만, 오히려 질 때가 더 나은 건 벚꽃이었어. 참 우스운 일이야, 꽃이 피어날 때보다 꽃잎이 지는 게 더 아름다울 줄은.
폴폴 꽃잎이 날리는 강변을 따라 걸으며 인생은 늘 화려하고 눈부신 줄 알았어. 어렸을 때는 창경원으로 야사꾸라 보러 밤에 갔거든, 벚꽃은 역시 밤이야.
그때는 늘 야근이었어.
늦은 저녁은 윤중제를 따라 카바이트 불을 켠 포장마차에서 때웠지. 우린 소주잔을 들고서 청춘을 노래했고 일을 사랑했어. 한창 성가를 높이던 영화 제목처럼 '우리 기쁜 날'을 노래했다네.
참 대단한 근성이었어. 늘 귀가 길은 비틀거렸지만 다음날은 새벽부터 출근길을 서둘렀지. 으례 아침은 회사 옆 해장국으로 때우면서 말이야.
가을 이야기를 할까.
섬에는 가을이 늦었어. 가을이 벌써 다녀간 건 아닌가 싶을 10월을 넘겨서야 비로소 섬 안에서 은행나무가 빚는 화려한 단풍잔치가 벌어졌거든. 길에는 지천으로 깔리는 노오란 은행 단풍을 밟기가 황송해서 길을 비켜가곤 했어.
생각해보게 10월을 넘길 때면 회사는 긴장의 연속이지.
한 해 장사가 대충 결판이 나는 때라 득달같이 퍼붓는 질책이거나 회의가 밤낮으로 열렸어.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하느라 내 애마는 하얀 갈기를 날리며 입에는 거품이 끓었어. 또각또각 달리는 말발굽 소리와 히히잉~ 콧김도 뽀얗게 내쉬며 말은 어지러이 달렸어. 내 길고 긴 창에는 늘 피비린내가, 옆구리에 찬 시퍼런 칼은 지잉~하며 울었어. 누군가의 피가 고픈 거야. 어느 놈이건 전장터에서 어울린 적병의 목을 따고서야 내 칼은 울음을 멈추었다네. 피비린내를 풍기며 전장터를 쫒아 다니느라 고단해도 씩씩한 시절이었지.
참모진은 늘 못마땅한 얼굴로 작전도를 지켜보며 불평을 했어.
작전을 이해하는 장교가 부족해서 이 모양 이 꼬라지라고 징징댔어. 말여물이라도 먹이려고 진지로 돌아와서 우리는 물 한 잔 마시고는 전선으로 다시 달려가야 했어. 우리도 사람이니까 씨부렁거리며. 전선은 일진 일퇴라 했지만 사실은 늘 이겼어. 지휘관이 바뀌어도 별 이상 없었어. 용장이 오나 덕장이 오나 전선에서는 백전백승이었어.
생각해봐, 이기는 싸움은 아이들 땅뺏기 놀이보다 더 재미있었어.
어느새 가을이 온 건지 첫 서리가 내린 건지도 모른 채 우리는 적진 깊숙이 들어와 버린 거야.
참모도 정신없기는 매한가지였어. 깊숙이 들어 온 우리는 가을, 지독한 안개에 걸린 거야. 퇴로를 차단당한 채 우리는 우왕좌왕했지. 얼마나 안개가 지독했던지 바람도 뚫지 못하는 듯 질기기만 했어. 어쩌면 그 때부터 매콤한 연탄 까스처럼 독한 걸로 가스총에 포위된 건지 몰라.
전쟁 터로 나갈 때면 우리는 갑주를 단단히 챙겼어. 어디에 잠복하고 우리를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나서는 싸움은 엄청 무서웠어. 최종병기, 화살이라도 한 대 맞아봐. 갑자기 전쟁이 으스스했고 무서워졌어. 이런 느낌은 정말 처음이었어.
벌써 겨울이 온 건지.
안개가 우리를 덮고 있는 동안 노란 은행잎이 다 떨어진 줄도 몰랐어. 군인이 계절이 바뀐 거도 몰랐으니 전투에 어찌 이길 수가 있을까?
병참 놈들이 월동 전투복을 다 팔아 먹었대. 우리가 승승장구할 때 전쟁은 금방 끝날 줄 알았을 테니 겨울옷이랑 월동장비는 다 팔아버렸지 뭐. 엔진오일도 겨울 거는 팔아먹었으니 병참놈들, 간도 엄청 큰놈이야. 원망할 힘도 남지 않았어. 지리한 소모전으로 들어가나 하더니 전선이 무너지기 시작했어.
금방이야.
며칠간 애써 만들어 둔 부교는 적진으로 달려갈 때는 좋은 지름길이 되었지만 우리가 밀리기 시작하자 적이 창부리를 꼬나들고 덤벼들 때는 기가 막히더구먼. 나중에는 창이고 칼이고 다 팽개치고 도망가기 바빴어.
허무한 일이야. 세상사 다 허망했어.
가을과 섬.
갈잎, 가을빛에 젖어가는 섬은 은행잎이 노오란 불꽃을 피워 올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 가을을 붙잡는 몸부림이 아니겠어.
이렇게 가을이 형형색색의 불꽃으로 타오르는데 젊은 날, 늘 푸르던 청년은 병상에 쓰러지고 기별도 없는 아들 녀석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래, 젊었던 한때 우리가 드링킹 송을 부르며 씩씩하게 걸어가던 은행나무 아래로 나는 지친 다리를 끌면서 길고도 아득한 그 길을 쓸쓸하게 걸어가고 있었어. 내 키보다 긴 창을 질질 끌고서.
바람이 불어 올 때마다 누렇게 물든 나뭇잎은 바람에 제 몸을 맡기고 어디론가 길 떠나고 있었어.
왜 이리 인생은 맘대로 되지 않는걸까?
노을이 지는 샛강에는 수양버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제 몸을 맡긴 채 흩날리고 있었어. 똬리를 틀며 흘러가는 개울에는 은빛 비늘을 번득이며 물고기가 자맥질하고 있었고. 운치를 즐기는가? 구름다리 위에 젊은이 한 쌍 노닐고 있는 풍경화로 내가 들어서고 있었지.
그대, 내 눈가로 번져오는 눈물을 보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