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명의(名醫) ㅡ 안유환
‘무좀은 난치병이 아니라 불치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무좀에 대해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무좀에서 벗어나려고 40~50년 동안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그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마디로 무좀은 지긋지긋하다. 어떤 약이나 민간요법을 다해도 무좀은 치유되지 않았다. 암 투병의 교훈 가운데 하나가 ‘친구처럼 암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도 고칠 수 없는 병이라면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수에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도 생전에 발가락에 휴지를 접어 끼우고 양말을 신으시는 것을 본적이 있다. 나는 ‘무좀은 유전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내 오른쪽 발에는 20대 중반에 3년 동안 병역의무를 다한 흔적을 기념하듯 무좀이 깊이 새겨져있었다. 무좀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내 몸의 컨디션을 살피며 공격했다. 건강상태가 좋을 때는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도 입맛이 떨어지거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총공격을 개시했다. 특히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었을 때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나는 사람들이 입맛을 다시는 춘천막국수나 제육볶음, 삼계탕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오래전에 멋모르고 너무도 맛이 좋아 한 그릇, 한 접시를 다 비웠을 때는 잠시 후엔 ‘왜 그것을 먹었느냐!’고 책망하듯 무좀은 벌겋게 성을 냈다. 요즘 TV에서 맹렬히 선전하는 ‘닭튀김’이나 사람들이 즐겨먹는 ‘치맥’ 얘기를 들으면 나는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는다. 치킨이 얼마나 맛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소외감에 사로잡힌다.
나는 무좀 치료를 위해 좋다는 약과 민간요법을 다 동원했었다. 뚜렷이 기억에 남는 것은 식초요법이다. 빙초산에다 정로환을 녹여서 하루 두 차례씩 발을 담그면 무좀이 깨끗이 낫는다는 것이었다. 살결이 떨어져나가고 어린아이 피부처럼 곱게 되었다가도 며칠이 지나면 무좀은 되살아났다. 무좀 치료약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한번만 바르면 뿌리가 뽑힌다는 ‘명약’도 없지 않았다. 아무리 약을 발라도 완치가 되지는 않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연고를 계속 바르면 상태가 조금 좋아지거나 증상이 제자리에 머물러있기도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발가락 양말을 계속 신는 것. 그러나 이것도 완치를 끌어내지 못하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무좀 치료를 위해 여러 차례 피부과 병원을 찾았지만 그것은 시간낭비로 끝났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그렇듯이 피부과 의사들에게도 불치병은 없었다. 치유가능성을 물으면 그들은 한결같이 “완치된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의사의 처방을 성실히 따랐다.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고−. 어떤 때는 6개월 동안 꾸준히 약을 발라주었다. 발을 깨끗이 씻은 후 하루 2~3회씩 연고를 발라도 완치되지는 않았다. 병원을 옮겨 다른 의사의 처방을 받아보기로 했다. 새로 만난 의사는 되도록 양말을 신지 말고, 걷기를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겨울에 양말을 신지 않는 것도 힘들지만 매일 필요한 걷기운동을 삼가라는 주문도 따르기 어려웠다. 그래도 노력을 하면서 약 먹고, 주사도 맞으면서 2~3주가 지났다. 다 나은 것 같았는데 며칠 만에 재발했다. 의사는 정밀검사를 할 수 있는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듯했다.
종합병원 피부과를 찾았다. 피부병 때문에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감기환자처럼 많았다. <지긋지긋한 무좀·사타구니 백선−S크림>을 처방받고 주사도 맞았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번, 두 주간이 지나서는 2주에 한번씩, 석 달쯤 치료를 받았다. 무좀이 다 나은 것 같았다. 나는 한 달 더 치료를 받고 싶었으나 의사는 경과를 지켜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혹 족욕이나 목욕은 삼가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일정한 목욕회수를 줄일 수 없어 목욕하는 시간을 20분~30분으로 대폭 단축했다. 의사의 말대로 했지만 발가락이 근질근질 하더니 일주일도 못가서 처음 상태로 되돌아갔다. 종합병원도 무좀의 기세를 꺾지는 못했다. 나는 ‘무좀은 불치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언젠가는 한동안 온천수를 계속 마셨을 때는 무좀이 고개를 숙이고 새끼발가락 쪽에 조금 흔적이 남아있었다. 정수기에서 알칼리수를 마실 때는 무좀이 다 나은 것 같기도 했었다. 그러다 얼마 후에는 새끼발가락에 붙어있던 무좀이 왼쪽으로 차례로 이동하면서 엄지발가락으로 옮아갔다. 무좀은 참으로 지긋지긋하고 얄미운 병이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엄지발가락의 무좀은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한때는 연고를 바르면 현상유지는 할 수 있었으나 아무리 좋다는 약을 발라도 무좀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견디다 못해 개인 피부과 두 곳과 종합병원에서 잇달아 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나고 며칠 지나자 양말을 신은 엄지발가락 쪽은 진물로 흠뻑 젖고 계속해서 지긋지긋한 괴로움을 더해주었다. 잘 때는 무좀약이 이불이나 시트에 묻지 않도록 밴드를 붙여야 했다. 40매짜리 밴드10갑−400여 매의 밴드와 거즈를 사용하며 무려 석 달이 넘게 치료에 정성을 쏟았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이제야 말로 죽을 때까지 무좀과 괴로운 동행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체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님도 돌아가실 때까지 무좀을 갖고 사셨는데······’
그렇다고 무좀 치료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무좀은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휴대폰에서 무심코 무좀치료 병원을 검색해보다가 레이저로 피부병을 치료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불치병’이라는 생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아 며칠을 기다리다 전철로 다섯 정거장이나 떨어진 S피부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환부를 긁어 정밀검사를 하고나서 약과 연고를 처방해주었다. 나는 레이저로 치료하지 않느냐고 물었으나 만성피부염이기 때문에 레이저는 불필요 하다는 것이었다. 3주간 치료를 끝내고나서 의사는 “이것은 감기처럼 그때그때 나타나는 질환이니 다시 생기면 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지긋지긋한 피부병을 ‘무좀’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나는 무좀이 재발하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루하루 기다렸으나 넉 달이 지난 지금 까지도 발가락은 깨끗하다. 설사 재발이 되어도 S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된다는 생각이 마음에 평안을 더해주었다. 나는 오늘도 불치의 무좀이 완치된 발을 보면서 고마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처음 검색했던 자리를 찾아 감사의 댓글을 달려고 시도했으나 자리가 없었다. 병원전용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홈페이지 새 단장 중입니다’라는 글만 떠있고 운영은 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댓글에 남기고 싶은 말은 「선생님은 진짜 명의입니다! 나의 50년 난치병 무좀을 고쳐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이다. 무좀이 떠나간 나의 발가락은 볼 때마다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반세기 동안이나 지독한 무좀에 매여 살던 내가 20일 만에 이처럼 확실한 해방을 맞다니! 이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특별한 은총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