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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폭력의 역사'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표현들의 조합으로 이뤄진 부제가 이 책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전쟁의 역사'라고 평가할 수 있는 이 책의 내용은 종교와 권력이 결합하여, 자신들과 다른 종교를 이교도라 지칭하며 전쟁으로 억눌렀던 역사의 전개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목도해왔던 역사적 흐름을 보건대, 저자는 '서양에서 종교가 본래 폭력적이라는 생각은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자명해 보이기까지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전쟁의 상당 부분은 종교적 대립에 기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때로는 그것을 일컬어 '신의 이름'을 걸고 신성의 의미를 강조하기도 한다. 종교 특히 일신교를 내세우는 이들은 이교도에 대한 관용의 여지없이, 자신의 편인 신의 이름으로 이교도를 몰아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종교와 권력이 분리된 지금에도 이러한 모습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종교와 권력이 결탁되었던 과거에는 종교적 명분을 내건 전쟁이 비일비재했었다. 저자는 고대사회에서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보다 쉽게 식량을 약탈하려는 이유로 전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농민들이 한 해 동안 열심히 노동을 해서 거둬들인 수확물을 지배계급들이 손쉽게 빼앗아 자신들의 것으로 취하는 방식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농업과 더불어 문명이 나타났고 문명과 더불어 전쟁이 나타났'으며, '자원과 권력이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소수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자 종교를 지배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끌어가기 위한 종교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고, 그 때문에 전쟁을 시작하면서 '신의 이름'을 내걸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문명의 폭력과 종교의 딜레마'라는 제목으로, 고대 국가가 형성되면서 권력과 결탁한 종교가 본래적 의미에서 벗어나 폭력의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수메르 지역에서 농경의 시작과 함께 잉여 농산물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이 벌어졌고, 장편 서사시 '길가메시'는 이러한 전쟁 영웅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하였다. 물산이 풍부한 수메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쟁으로 인해 그 지역이 피로 물들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탄생한 조로아스터교는 절대 악과 절대 선의 대립으로 그것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인도의 고대 문명 역시 권력의 유지를 위해 사람들의 등급을 구분하는 카스트제도가 만들어졌으며, 지금은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요가는 본래 전쟁에 나가기 전 전차에 말의 멍에를 단단하게 묶는 행위에서 유래했다고 말하고 있다. 갠지스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농업지대를 차지하기 위한 역사는 고대 인도의 전쟁사라고 할 수 있으며, 후에 자이나교와 불교의 교리가 확립됨으로써 비폭력의 길을 걸었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 역시 광대한 영모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의 과정이 춘추전국시대를 관통하고 있고, 저자는 이 과정에서 인과 겸애를 주장한 공자와 묵가의 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폭력에 맞서는 그들의 정신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초의 통일제국이었던 진나라는 거듭 폭력으로 통치하다가 단명을 하게 되었고, 오랜 기간이 흘러 다시 천하를 통일한 한나라에서 비로소 법가와 유가가 지배적인 이념으로 등장하면서 전쟁보다 안정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전쟁을 통해서 안정을 찾은 이후에야 비로소 평화와 안정을 논하는 패턴이 반복되었음을 동서양의 역사를 통해서 목도할 수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경향은 유대교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히브리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저자는 이스라엘인은 애초에는 유일신 교도가 아니었지만 점차 유일신 신앙을 창조해서 그렇게 굳어졌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루부터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후에 같은 뿌리를 지닌 이슬람교가 등장하면서 더욱 치열한 갈등 과정에 놓이게 되었다. 특히 이들 종교는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지만, 유일신 신앙을 고수하면서 서로를 이교도라 칭하면서 그러한 갈등이 전쟁이라는 형태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전쟁의 역사를 종교에 초점에 맞추어 설명하는 내용이 흥미롭고 매우 설득력이 있게 받아들여졌다.
전쟁은 결국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 과정에서 종교나 각종 이념은 전쟁을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중세에 이르러 권력과 종교가 결탁하면서, 서양의 제국주의 권력자들은 대부분 신의 이름을 내걸고 전쟁이 뛰어들었던 사례들이 2부의 '제국의 폭력과 종교의 응전'이라는 제목으로 서술되고 있다. '예수'로 상징되는 기독교는 초기에는 민중의 편에 선 소수자들을 위한 종교였으며, 그 과정에서 로마 제국의 박해를 통해 '순교자'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종교가 권력과 결합하여 '기독교인 황제'가 등장하면서, 종교는 전쟁을 촉발하는 폭력의 수단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종교의 타락을 목도한 수도자들은 도시를 떠나 사막으로 향했고, 이들에 의해 기독교 교리가 보다 체계화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기독교만이 아니라, 7세기 경 예언자 무함메드의 등장과 함께 성장한 이슬람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하나의 뿌리에서 탄생한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 세력들은 서로를 상대로 이단이라 칭하면서, 이를 명분으로 삼았는데 기독교에서는 '십자군'을 조직하여 전쟁을 촉발했고 이슬람교에서는 '지하드'로 맞서게 되었던 것이다. 종교를 명분으로 했지만 그것은 명분과는 상관없는 대규모 학살로 이어졌고, 결국 권력자들의 영토 확장과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전락했음은 역사가 실증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종교가 권력과 분리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많은 전쟁들이 종교를 명분으로 내세운 권력의 탐욕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당시의 민중들조차도 오랜 기간 동안 체화된 종교적인 인식으로 인해 전쟁의 명분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이해된다.
중세시대까지는 대체로 종교와 권력의 결탁으로 권력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종종 전쟁이 벌어지곤 했지만, 근대 이후에는 명목상으로는 종교와 권력이 분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전쟁들은 대개 '신의 이름'을 명분으로 내건 종교적 갈등으로 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들을 3부 '세속주의 시대의 종교 근본주의'라는 제목으로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며, 가장 먼저 종교개혁을 들고 나온 서양의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루터에 의해 촉발된 종교개혁은 권력과 결탁한 기독교의 허위를 깨뜨리는데 일조를 했지만, 그로 인해 상당한 기간 동안 이교도를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 종교재판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마녀’라는 이름으로 희생되는 사례가 속출하였다. 결과적으로 종교개혁의 거센 물결은 권력에 이용당하지 않는 '개인종교의 탄생'을 가져왔으며, 이로 인해 미국과 프랑스 등지에서 과거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혁명으로 진행되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근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정치적 종교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유럽에서 건너간 신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미국은 '독실한 신앙인들이 세운 최초의 세속국가'로 칭해지고 있다. 아울러 근대 이후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라는 이념이 만들어지면서, 이제는 '민족'과 '종교'가 결합되어 새로운 명분으로 작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갈등이 비화되고 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더욱이 대부분의 종교들은 각자의 교리 해석을 기반으로 분파가 형성되면서, 동일한 종교 사이에도 종파간 갈등이 전쟁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권력자들은 종교를 명분으로 내세워 권력을 탈취한 이후,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종교를 자의적으로 활용하여 독재정치를 펼치기도 했다. 지금 중동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다양한 갈등의 원인 역시 이러한 요인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의 갈등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비행기 납치로 인한 미국 뉴욕의 빌딩이 폭파되는 이른바 '9.11 테[러'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해석되고 있다.
최근에는 종교적 교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면서, 여러 종교에서 근본주의적 성향을 지닌 이들에 의해 사회적 갈등이 촉발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종교와 전쟁으로 살펴본 세계사의 흐름을 짚어내는 것이라고 하겠는데, 종교의 근본적인 역할에 대해서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시켜주고 있다. 종교가 개인의 위안과 공동체의 안녕에 기여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오히려 갈등과 전쟁을 촉발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 주위에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강조하면서,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 배타적인 태도로 대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를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한 양상들을 살펴보면서 저자의 '종교는 본래 폭력적인가?'라는 '머리말'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하겠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각자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상대의 종교도 인정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종교를 이용하여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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