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봄>, 영화 그대로 반란군에 맞서 희생된 김오랑 중령 그리고 남겨진 그의 아내.” 책의 표지에 제목과 함께 인쇄된 문구이다.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정치군인들에 맞서, 자신의 상관인 특전사 사령관을 지키려다 희생된 인물이 바로 김오랑 소령이다. 이 영화가 개봉되면서 대중들에게 당시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로 작용했고, 불의에 맞서 끝까지 대항했던 이들의 삶에 대해서도 각종 매체를 통해 조명되고 있다. 저자의 생전인 1988년에 출간되었던 이 책이 35년 만에 다시 출간된 것도 영화로 인한 대중들의 관심이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쿠데타에 저항하던 남편이 억울한 죽음을 맞은 이후, 아내인 저자는 충격으로 시력을 잃고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야만 했다고 한다. 종교에 귀의하여 부산에서 불교자비원을 설립하여 봉사를 시작하면서, 김오랑 소령의 명예회복과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쿠데타 세력에 대한 심판을 준비하며 차츰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실명한 상태에서 글을 쓸 수 없어, 자신과 남편의 이야기를 카세트테이프 20대 분량으로 녹음하여 책으로 엮었다. 하지만 독재정권 하에서 책이 제대로 보급될 수 없었고, 그로부터 3년 후 자신이 설립한 자비원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실족사’로 처리했으나, 사망 전후의 상황이 제대로 해명되지 않고 석연치 않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뒤늦게라도 이 책이 재출간된 점은 다행스럽고, 여로 모로 의미가 적지 않다고 여겨진다.
책의 속표지에 과거에 출간되었던 초판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저자가 개명했던 ‘백수린’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사진 설명과 함께 “12.12 군사반란의 핵심 노태우와 그 세력이 권력을 쥔 그때, 책은 배포될 수 없었다.”라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다. 실상 책의 내용은 저자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남편과의 추억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군부 독재의 후예가 최고 권력자로 자리 잡고 있던 당시에는 이러한 내용조차 허용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자신의 삶과 남편과의 만남을 추억하는 내용이지만, 이제 이 책은 그 당사자들이 역사적 인물이 되어 당대 역사를 재구할 수 있는 역사 기록이라는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할 것이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