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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 현실을 돌아보는 내용들은 대체로 희망적인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성적 위주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현실, 모든 것이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교육의 본질을 제대로 실현하기 힘든 교육 정책 등이 그러한 상황 진단에 자주 언급되고 있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입학을 담당했던 저자가 바라보는 한국의 교육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리하여 현재의 현실이 <교육이 없는 나라>라고 진단하고, 이에 대한 저자 나름의 제언들을 책의 후반부에 제기하고 있다. 대체로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에 공감할 수 있었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방안들은 우리 현실에서 해결책으로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곧 현재 우리 교육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 진단은 일치하지만, 그 해결책은 각자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떼문이라고 하겠다.
언젠가부터 한국에서는 모든 학부모들이 교육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대학입시의 결과로 자녀의 일생이 결정될 수도 있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교육 정책이나 입시제도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교육에 대한 관심은 우선적인 순위에서 밀려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들의 교육제도에 대한 관심은 ‘교육’ 그 자체가 아니라,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바로 이러한 현실이 현재 교육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는 진단이 일치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잇을 것인지에 대한 대안이 다양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저자도 강조하고 있듯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어려움을 겪고 한국이 오늘날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한몫을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역설적으로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1장)가 오늘날 ‘교육이 없는 나라’(2장)가 된 것은 어쩌면 사람들의 과도한 ‘교육열’에 기인하고 있다고 진단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온전한 ‘교육’에 대한 열정이 아닌, 자식들을 사회에서 성공한 존재로 키우고 싶은 세속적인 욕망이 그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다고 하겠다. 물론 그러한 부모들의 ‘욕망’이 그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한 대중들의 욕망에 맞춰져 ‘교육’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성적과 결과 위주의 정책으로 귀결된 우리의 교육제도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강연 현장에서 “공부는 언제 가장 열심히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이 질문에 정답이란 존재할 수 없으니, 사람들의 자신의 입장에서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라면 초등학교 고학년을 꼽을 것이며,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라면 또 그에 맞춰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던진 ‘공부’의 의미를 듣는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인데, 대학교수인 저자는 ‘대학 2학년’을 ‘원하는 답’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이유를 제시하는 저자의 입장이 충분히 공감되지만, 이 역시 다양한 관점의 하나일 뿐이라고 여겨진다. 항상 대학생들과 만나고, 그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의 입장에서 당연한 생각이라고 이해된다.
‘미래를 위한 교육, 공부와 연구’(3장)라는 대학 교육의 관점에서 보자면 저자의 입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을 주제로 한 저자의 강연에 아마도 대학생 자녀만을 둔 학부모들은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고, 대체로 중학생과 고등학생 혹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대부분 청중으로 참여했을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듣고 싶은 ‘대학교 2학년’이라는 답은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이고, 정작 ‘공부’는 대학에서 자신의 전공 적합성을 찾고 그에 맞춰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더라도 청중들은 만족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저자는 그러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의 입학처장으로서 어떠한 방안을 마련하여 시도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성적만이 아닌 지원자의 면면을 고려하여 선발한 학생들의 대학에서의 학업 성취도가 높았다는 것도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저자가 재직하고 있는 KAIST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라면, 저자가 제시하는 내용들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중등교육까지 연계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지만, 저자는 그 대안으로 ‘대학의 혁신’(4장)을 꼽으면서 ‘서열화를 차별화로’ 바꾸어야만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적어도 대학 교육에 대해서는,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저자의 진단과 대안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대학입시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대학교육의 문제는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교육으로 다시 일어서는 나라’(5장)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바르게 서는 중고등학교 교육’을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지금까지 교육 전문가들이 우리이 교육 현실에 대해 진지한 대안을 제시했지만, 그것이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가 그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대학 교육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취업 가능성과 장래성을 따지는 현재의 풍토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인문학 관련 학과에서는 입학 지원자가 줄어들어 학과가 없어지거나, 실용적인 성격의 학과로 이름을 바꾸고 있는 것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당위와 현실’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하여 아무리 ‘대학의 서열화’를 없애는 정책을 마련한다고 할지라도, 이미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해당 대학의 관련자들은 갖가지 이유를 들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은 명백하다. 결국 현재 한국의 교육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성적과 경쟁 위주의 ‘대학입시’ 제도에 있다고 할 것이며,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결국 어떠한 대안도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정착되기 힘들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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