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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욕심이 많다 보니, 필요한 책을 찾기 위해 서가를 한참이나 헤매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지럽게 꽂혀있는 것처럼 보여도, 내 나름의 분류 기준을 통해서 책을 배치하고 있다. 분명 이쯤에 있어야 할 책이 보이지 않을 때는 답답함을 감출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보이지 않던 책이 평상시에 찾아보면 제자리에 말짱하게 꽂혀 있기도 한다. 책에 대한 욕심이 불러온 경험이라고 치부할 수밖에 없는 기억이라 하겠다.
‘책과 사람, 그리고 맑고 서늘한 그 사유의 발자취’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책에 대한 인식과 태도 그리고 그것이 지닌 시대적 의미 등을 설명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오랜 인연을 지니고 있기에, 저자의 책에 대한 욕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책에 대한 사연을 소개한 이러한 책을 집필했을 것이다. 그래서 소개한 책들의 내용보다는 그것을 당대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바라보면서, 그 가치를 평가했는가 하는 점에 서술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전체 5부로 구성된 목차 가운데 1부에서는 ‘소설의 별난 재미에 빠져들다’라는 제목으로, 중국 명나라 때의 인물인 구우가 지은 <전등신화>를 비롯해서 6권의 소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책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그 내용도 <전등신화>가 어떻게 조선에 전래되었으며,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등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지하듯이 <전등신화>는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영향을 끼친 작품이기에, 저자 역시 이어지는 내용으로 <금오신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밖에도 일반 독자들에게는 낯선 신광한의 <기재기이>와 춘향전의 이본인 <수산 광한루기>에 얽힌 내용을 소개하고, 중국 4대기서의 하나로 꼽히는 <서유기>와 조선의 명문장가인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과 관련된 사례들도 다양한 기록을 통해서 소개하고 있다.
‘시문을 통해 열어가는 새로운 사유의 세계’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학습 대상이었던 책들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고문진보>와 <문선>과 같은 중국의 시문을 뽑아 엮은 시문집과 함께, 한시를 짓는데 필요한 방법을 익히는 <영규수율>과 <규장전운>의 효용과 용법 등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율곡 이이의 문학관이 담긴 <영언묘선>과 송나라 성리학자들의 시를 모아 엮은 <증산염락풍아> 등의 문헌이 당대 지식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던가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저자가 읽었던 다양한 기록들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의 독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식견이 글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고 여겨진다.
‘조선의 서당에서는 무슨 책을 읽었을까’라는 제목의 3부에서는 <맹자>와 <소학> 등 유가의 경서는 물론, <천자문>과 <계몽편언해>와 같은 도구서, 그리고 <자치통감> 등의 역사서를 소개하고 있다. ‘중생의 삶을 벗어버리다’라는 제목의 4부는 불교 사상을 다룬 <사십이장경>과 <선가귀감>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특히 <선가귀감>은 예전에 저자가 연구하여 분석한 내용을 책으로 출간한 적이 있던 문헌이기도 하다. 마지막 5부에서는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엿보다’라는 제목으로, 모두 8권을 대상으로 책에 얽힌 대 중국관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책을 수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여겼기에, 조선과 중국의 관계에서 해당 문헌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가를 당대 지식인들의 기록을 통해서 밝혀내고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책을 손에 달고 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러한 경험이 책을 좋아하고 그 결과로 연구자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여전히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 적지 않은 책을 출간했음을 책날개에 소개된 저자의 이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평소에 읽었던 내용을 잘 갈무리하여 정리한 결과가 ‘지식의 유통과 책의 문화사’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의 저술과 출간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사유의 자유로움과 떠돎을 따라가보는 여행’에 동참한 셈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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