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돌리기
신미균
심지에 불이 붙은 엄마를
큰오빠에게 넘겼습니다
심지는 사방으로 불꽃을 튀기며
맹렬하게 타고 있습니다
큰오빠는 바로 작은오빠에게
넘깁니다
작은오빠는 바로 언니에게
넘깁니다
심지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언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넘깁니다
내가 다시 큰오빠에게 넘기려고 하자
손사래를 치며 받지 않겠다는 시늉을 합니다
작은오빠를 쳐다보자
곤란하다는 눈빛을 보냅니다
언니는 쳐다보지도 않고
딴청을 부립니다
그사이 심지를 다 태운 불이
내 손으로 옮겨붙었습니다
엉겁결에 폭탄을
공중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엄마의 파편이
우리들 머리 위로
분수처럼 쏟아집니다
묵시록
꽃병 끝에 앉아있는 파리와
그 파리를 내리치려고
공책을 들고 있는 내가
눈이 마주쳤다
날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리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서로의 속을 알 수 없는
살벌한
한낮
쥐약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삼성문학상
공초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동인문학상
만해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오늘의작가상
이상문학상
동서문학상
백석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맛있다
비장의 무기
좁은 골목
어기적어기적
폐지 줍는 할머니의
손수레가
임시 번호판도 떼지 않은
새까만 외제 차의 옆구리를
쓰윽
긁으며 지나간다
차 주인이
울그락불그락
펄펄 뛰며
고함을 지른다
할머니가 느릿느릿
허리를 펴고
뒤돌아서
무표정하게
차 주인 어깨 너머
나뭇가지의
새를
본다
공
머리를 꺾어
다리 사이에 끼우고
팔을 잘라
옆구리를 감싸고
두 발은 머리에 붙이고
두 손은 발 사이에 끼우고
난 둥글어질 거야
이 사람이 던지면
저 사람한테 턱, 안기고
저 사람이 던지면
그 사람한테 척, 안기고
바닥에 떨어져도
금방 죽지 않고
자꾸 다시 살아나
튀어 오를 거야
- 신미균 시인 -
서울교육대학교 졸업
1996년 『월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맨홀과 토마토케첩』『웃는 나무』『웃기는 짬뽕』『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
공저 『코로나19이후의 삶,그리고 행복』『내가 잠잠하다』
한국시문학상, 강동문학상
현대시 회장역임, 한국시인협회회원, 시작동인
시연회지도교수, 강동문인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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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은 우리의 몫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신미균 시인의 시집 <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은 웃기면서도 슬픈 블랙코미디 같은 시들로 엮여 있다. 그에 시들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유쾌한 시선이 들어있다. 하지만 이 명랑한 언어 이면에 감춰진, 세상을 보는 예리한 그의 시선은 독자들에게 웃음과 충격을 동시에 안겨준다. 그래서 쉽게 읽히지만 마냥 쉽게 읽고 웃고 지나칠 수 없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성찰을 담고 있다. 신선하고 즐거운 언어유희는 이내 우리에게 통렬한 반성을 촉구하고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이 시집의 가장 큰 특징과 이 시집을 읽는 즐거움은 여기에 있다.
그의 시들에는 대비가 자주 등장한다. 웃음과 슬픔, 가벼움과 무거움, 언어유희와 진지함, 이런 대비가 그의 시에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면서 우리의 의식에 균열을 일으킨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시를 보자.
심지에 불이 붙은 엄마를
큰오빠에게 넘겼습니다
심지는 사방으로 불꽃을 튀기며
맹렬하게 타고 있습니다
큰오빠는 바로 작은 오빠에게
넘깁니다
...(중략)...
그 사이 심지를 다 태운 불이
내 손으로 옮겨붙었습니다
엉겁결에 폭탄을
공중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엄마의 파편이
우리들 머리 위로
분수처럼 쏟아집니다
- 「폭탄 돌리기」 부분
가족 간의 무거운 문제를 경쾌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늙고 병든 어머니를 둘러싸고 일어난 가족 간의 문제를 ‘폭탄 돌리기’라는 즐거운 놀이로 표현함으로써 우리에게 웃음을 준다. 하지만 이 웃음 뒤에 감춰진 풍자는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폭죽처럼 즐거운 이 경쾌한 언어들이 정말 폭탄이 되어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져 우리에게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이 고통은 한편으로는 늙어가는 엄마에 대한 연민으로부터 오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기심에 대한 자기 고백에서 오기도 한다. 이것을 통해 시인은 가족애라든가 사랑이라든가 하는 말들로 미화된 가족과 가족제도가 얼마나 허위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통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경쾌하고 즐거운 언어로 쓰여 있지만, 이 시는 이런 슬픔과 어둠과 고통을 그 안에 짙게 깔고 있다. 이렇게 우리 안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것들을 경쾌한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강렬한 대비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정서적 충격을 주고 있다. 웃다가 울리고, 울다가 분노하게 만드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시인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대비에 의한 아이러니는 강렬한 풍자를 만들어 낸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
- 「아파트」 전문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라는 격언을 재밌게 비틀어 시를 만들었다. 이는 상반된 생각을 동시에 하게 만든다. 이 격언의 의미는 평등의 가치를 말하고 있지만 아파트는 바로 이 격언과 정확하게 반대된다. 그리고 대다수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대비를 통해 이 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계층 간의 분리와 차별 그리고 그것이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간결하고 재미있는 말장난과 같은 표현들을 통해 시인은 우리에게 사회와 인간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다음 시는 좀 더 신랄하다.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삼성문학상
..(중략)...
김달진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맛있다
- 「쥐약」 부분
시인들에게 문학상은 영예이기도 하고 상금이 수반되므로 물질적 보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상이 어찌 운영되는지 그리고 그것을 받게 되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말들이 많다. 어떤 상은 친일 문인을 기리는 친일문학상이라고 낙인찍혀 그것을 받는 사람까지 욕을 먹기도 하고 또 어떤 상들은 심사와 추천 과정의 논란으로 상이 명예가 아니라 치욕이 되기도 한다. 시인은 그러한 문학상 제도를 풍자하고 있다. 그러한 풍자를 위해 시인이 사용한 단어는 딱 두 개다. 하나는 제목인 “쥐약”이고 또 하나는 마지막 행 “맛있다”라는 단어이다. 이 두 단어를 제시하는 것만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자신을 속물로 만들어 결국 파멸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고 이런 상에 목매달고 있는 시인을 꾸짖기도 하면서 시인 자신 역시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상들을 열거하며 그것에 입맛을 다시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욕망의 노예라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기도 하고 있다.
신미균의 시들은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하지만 그 재미 안에는 부끄러움이 들어있다. 즐겁게 읽으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비겁함과 욕망을 들켜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진다. 이 작은 한 권의 시집이 우리가 뻔뻔하게 잊고 있는 부끄러움을 넌지시 상기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시집으로 수상을 하게 된 것을 크게 축하한다. 다만 이 상은 “쥐약”이 아니라 수많은 독자의 부끄러움을 모아 만든 상이다.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1993년『창작과비평』으로 평론 활동 시작.
2002년『정신과표현』으로 시 발표.
저서『주변에서 글쓰기』『쉽게 쓴 문학의 이해』 등
종합문예지『불교문예』와『P.S』주간, 시 전문 계간『시와편견』공동주간
첫댓글 존경하는 신미균 시인의 시를 다시 읽어보는 이 시간 참 행복합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십시오
채수옥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