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한나 아렌트).hwp
활동적 삶(노동, 작업, 행위), 노동은 인간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하는 활동이다. 노동은 생명체가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이고도 자연발생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활동이다. 노동이 이뤄질 수 있는 근본조건은 삶 그 자체이다. 노동으로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구별할 수 없다. 노동은 생존활동과 그에 필요한 소비를 위한 활동이다. 그러한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것들은 소모적일 수밖에 없고 그것들은 모두 소멸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작업은 인간 실존의 비자연적인 것에 상응하는 활동이다. 작업은 자연적 환경과 구별되는 인공적인 세계의 사물들을 제공해준다. 인간은 작업을 통해 세속적인 삶을 이어나가는 인공적인 환경을 만들어 낸다. 그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소멸할 수밖에 없는 노동의 생산물과는 달리 세계에 영속성과 지속성을 부여한다. 인간이 역사를 이루며 살아 나갈 수 있는 것은 작업의 결과물에 의존한 것이다. 작업하는 인간은 제작인으로 형상화된다. 제작인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자연세계를 조율하여 인공물들을 만들어내고 그 인공물들은 유한한 존재한 인간의 삶을 보완하는 안정성과 항구성을 제공한다. 행위는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 없이 인간 사이에 직접적으로 수행되는 유일한 활동이다. 이러한 행위의 근본조적은 바로 인간의 다원성에 있다. 인간은 어떤 누구도 다른 누구와 동일하지 않다. 이러한 서로 다름으로 인해 인간은 서로 다른 인간과 소통하려는 노역을 기울인다. 그러한 노력은 행위로 연결되며 그 행위가 바로 정치이다. 활동적 삶을 이루는 노동, 작업, 행위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노동은 개인의 생존과 종의 삶까지 보장하며 작업과 그 결과물인 인공품은 인간의 삶에 영속성과 지속성을 부여한다. 또한 행위는 정치적 공동체를 건설하여 역사의 조건을 창출한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모두 탄생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어서 이 세계를 보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삶의 요소 중 인간이 인간으로서 진정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요소는 바로 행위이다. 행위는 인간이 언제나 새로이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탄생성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러한 점에서 정치적 활동인 행위는 인간의 활동 중 가장 우월한 활동이고 배타적인 능력이다.
활동적 삶과 인간의 조건, 노동인간 실존의 세 가지 조건에 생명, 세계성, 그리고 다원성이 있다. 생명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유기체를 의미한다. 인간 역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살아 숨 쉬고 있어야 한다. 반면 세계성은 생성과 소멸 즉 태어남과 죽음을 반복하는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벗어나 영속할 수 있는 자기 세계를 의미한다. 이것이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는 첫 번째 차이이다. 그러나 세계성은 다원성이 없다면 그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다원성은 언어와 행동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다른 존재 즉 다른 인간을 의미한다. 종합하면 인간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시에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이를 나눌 수 있어야만 인간으로 살아 있다는 뜻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 삶, 이 선택의 필수적 전제조건은 자유(지위, 인격적 불가침성, 경제활동의 자유, 제약받지 않는 이동의 자유)이다. 즉 생존의 필요성과 주인의 지배라는 강제에 예속된 노예적 삶의 방식인 노동, 장인의 작업, 상인의 탐욕적인 삶이 배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