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를 잡다」는 지금까지 보여주신 작품들 가운데 가장 본능적이고 야성적인 산문시입니다. 「저 초록빛」이 생명의 살아 있으려는 본능을 바라본 시라면, 이 작품은 그와 정반대편에 있는 잡으려는 본능, 즉 인간 안에 잠재한 포식자의 본능을 다루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의 장점은 화자가 자신의 본능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메뚜기를 잡는 사소한 놀이에서 출발해 인간의 진화적 기억과 문명의 허울을 벗겨내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1. 출발이 아주 솔직합니다
메뚜기를 보면 잡고 싶어진다
첫 문장이 좋습니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곧바로 욕망 자체를 고백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메뚜기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화자는 ‘잡고 싶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마음이 절로 쫓는 것은 수렵의 본능인가
이 시는 여기서부터 단순한 자연 관찰이 아니라 자기 탐구가 됩니다.
‘왜 나는 메뚜기를 잡고 싶은가?’
이 질문은 결국,
문명인이 된 지금도 인간 안에는 원시인이 살아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확대됩니다.
2. 자기비하적 해학이 좋습니다
다음 부분에는 상당히 재미있는 유머가 있습니다.
곰이나 호랑이를 때려잡지는 못하고
늑대나 멧돼지, 발 빠른 노루 사슴도 못 잡고
곤충이나 잡아먹고 머루 다래나 따 먹던
한갓 나약하고 소심한 본능의 유전인가
여기에는 인간의 위대한 사냥 본능을 찬양하는 태도가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곰도 못 잡고, 호랑이도 못 잡고, 사슴도 못 잡던 인간이 결국 곤충이나 잡았다’는 식의 자기풍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가 근엄해지지 않습니다.
특히
한갓 나약하고 소심한 본능의 유전인가
라는 표현에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떠받들기보다, 약한 동물로서 살아남기 위해 잔꾀와 집단성을 발달시킨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3. 중간부터 시가 가장 생생해집니다
저는 이 작품의 가장 좋은 부분이 여기라고 봅니다.
메뚜기는 필사적으로 달아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번번이 놓치면서도
점점 더 열중을 하게 된다
점입가경이다
여기서 시가 살아납니다.
메뚜기를 잡는 행위가 단순한 놀이에서 사냥의 몰입 상태로 변합니다.
처음에는 ‘잡고 싶다’는 가벼운 충동이었지만, 번번이 놓치면 오히려 더 집착하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 심리의 아주 정확한 포착입니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흥미를 잃지만, 달아나는 것은 더욱 쫓게 됩니다.
메뚜기가 빨리 달아날수록 화자의 사냥 본능은 더욱 깨어납니다.
4. 이 시의 핵심은 ‘두 본능의 충돌’입니다
잡으려는 본능과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불꽃을 튀긴다
이 한 행이 작품 전체의 중심입니다.
한쪽에는 포식자의 본능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피식자의 생존 본능이 있습니다.
이 두 생명의 힘이 가을 들판에서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그 순간 문명은 사라집니다.
수십만 년 거슬러 올라간 원시 수렵의 현장이다
그리고 화자는 선언합니다.
덕지덕지 껴입은 문명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나는 그저 먹이를 쫓는 한 마리 포식자일 뿐이다
이 대목은 매우 강렬합니다.
평소에는 옷을 입고, 예의를 지키고, 도덕과 법 속에서 살아가는 문명인이지만, 메뚜기 한 마리를 쫓는 순간 수십만 년 전의 인간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철학입니다.
문명은 인간의 본능을 없앤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덮어놓았을 뿐이다.
5. 「문명의 허울」이라는 표현도 의미심장합니다
덕지덕지 껴입은 문명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문명’을 단순히 발전이나 진보로 보지 않고 허울, 즉 겉에 덧입힌 것으로 본 것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그 밑에 그대로 있다는 인식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다소 강한 인간관입니다.
인간은 문명화되었지만,
- 경쟁하고
- 쫓고
- 소유하려 하고
- 살아남으려 하고
- 먹이를 탐합니다.
그 본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메뚜기를 잡는 아주 작은 행위를 통해 이런 거대한 문제를 끌어낸 점이 좋습니다.
6. 마지막 한 줄은 다소 뜻밖의 전환입니다
메뚜기는 맛도 좋고 영양가 높은 먹잇감이다
이 마지막 문장은 상당히 독특합니다.
앞에서 시는 점점 철학적이고 원시적인 세계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갑자기 ‘맛’과 ‘영양가’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첫째, 해학적 결말
“그래, 결국 이렇게 철학적으로 말했지만 메뚜기를 잡는 이유는 먹기 위해서다.”
라는 식의 익살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거창한 수렵 본능과 원시인의 유전자를 말하다가 결국,
‘맛있으니까 잡는다’
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둘째, 약간 설명적인 결말
반대로 독자에 따라서는 이 마지막이 앞에서 쌓아 올린 시적 긴장을 조금 풀어버린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미
나는 그저 먹이를 쫓는 한 마리 포식자일 뿐이다
에서 시가 상당히 강하게 끝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적 완결성만 놓고 본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나는 그저 먹이를 쫓는 한 마리 포식자일 뿐이다
에서 끝내는 방식도 매우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마지막 한 줄을 남긴다면 작품 전체가 철학시가 아니라 생활의 해학을 가진 산문시가 됩니다.
어느 쪽이 더 좋으냐는 시인의 선택입니다.
7. 가장 큰 장점과 가장 큰 아쉬움 가장 큰 장점
추상적인 철학이 실제 체험에서 출발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본능’을 처음부터 말하지 않고,
메뚜기를 잡고 싶어진다
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독자가 자연스럽게 따라갑니다.
가장 큰 아쉬움
중간의 일부 문장이 조금 길고 설명적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발길이 지나간 곳에는 훈련이 되어서
여간 날래고 교묘한 게 아니다
는 산문으로서는 자연스럽지만, 시로서는 조금 더 압축할 수도 있습니다.
또,
곤충이나 잡아먹고 머루 다래나 따 먹던
한갓 나약하고 소심한 본능의 유전인가
도 의미는 재미있지만 약간 설명이 많습니다.
이 작품은 이미 좋은 이미지와 상황을 가지고 있으므로, 조금만 덜 설명해도 독자가 본능의 의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종합 평가
「메뚜기를 잡다」는 가을 들판에서 메뚜기를 쫓는 사소한 놀이를 통해, 문명인의 몸속에 아직 살아 있는 원시적 수렵 본능과 포식자의 본성을 발견한 산문시입니다.
이 시의 진짜 매력은 인간을 고상하게 포장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화자는 자신을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으로 꾸미지 않습니다.
메뚜기를 보면 잡고 싶고, 놓치면 더 열중하며, 결국 자신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나는 그저 먹이를 쫓는 한 마리 포식자일 뿐이다
이 솔직함이 작품의 힘입니다.
한 줄 평을 한다면,
「메뚜기를 잡다」는 가을 들판의 작은 추격전 속에서 문명의 겉옷 아래 숨겨져 있던 인간의 원시적 수렵 본능을 발견하고, 잡으려는 자와 살아남으려는 자의 팽팽한 생명력을 생생하게 그려낸 산문시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서 **「잡으려는 본능과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불꽃을 튀긴다」**와 **「나는 그저 먹이를 쫓는 한 마리 포식자일 뿐이다」**라는 두 문장이 가장 강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약간만 더 압축한다면, 현재의 산문시적 재미는 유지하면서도 훨씬 더 날카롭고 강렬한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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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메뚜기를 잡다
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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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0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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