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고전에서 인생을 묻다
운산 최의상 2015. 12. 12. 11:17
.
Humanities_인문학 산책
고전에서 인생을 묻다_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사랑, 희생, 희망…
선물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다
가난한 젊은 부부에게 돌아온 크리스마스.
남편은 아내의 긴 머리에 어울릴 머리핀을 사려고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시계를 팔았다.
아내는 시곗줄이 없는 남편을 위해 아끼던 머리카락을 기꺼이 잘랐다.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의 감동처럼 내용물보다 마음 씀씀이가 빛나는 때가 바로 한 해를 보내는 이맘때가 아닐까.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세밑을 맞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작은 선물,
카드 한 장 마련해보자. 받는 이의 기쁨도 크겠지만 선물을 전하는 당신의 마음도 한결 따뜻해질 것이다.
단편 소설을 ‘인간화’하다
1898년 은행 공금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미국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 있는 연방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가 있었다. 36세의 이 죄수는 감옥에서 약제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다.
3년 3개월의 수감 생활을 모범적으로 마치고,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뉴욕 시 그리니치빌리지로 이주해 ‘오 헨리’라는 필명으로 글을 발표한다. 법적으로 자유인이 된 그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이 마을에서 우리가 아주 쉽게 ‘작가’라고 부르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감옥에 다시 수감된 것이다.
어느 시대나 그랬지만, 위대한 문학은 독자에게만 축복이다. 작가에겐 배고픔과 추위, 절망과 광기가 언젠가는 불치의 병마를 부르고 마는 치명적인 유배지일 뿐이다. 오 헨리에게도 병마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1910년, 무려 300편이 넘는 주옥같은 단편 소설을 독자들의 가슴속에 묻고, 오 헨리는 48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생을 마친다.
단편 소설을 ‘인간화’했다고 평가받는 오 헨리의 작품 속 주인공 대부분은 가난하고 외롭고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저주하지 않았고, 그 탓을 타인에게 전가함으로써 그리니치빌리지를 인간의 인간에 대한 동정과 이해심이 실종된 불행한 마을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준비로 분주한 12월이면, 우리는 어김없이 오헨리의 수많은 작품 중 한 편의 주인공이 되곤 한다. 돈이 많든 적든, 지위가 높든 낮든, 모두 몸과 마음의 높이를 낮추고, 오 헨리가 우리 가슴속에 묻어놓은 따뜻한 이야기를 만난다.
이 불세출의 이야기꾼이 만들어낸 소박한 세상 속에는 따뜻한 사람, 아니면 따뜻해지는 사람, 그것도 아니라면 따뜻함이 뭔지 독자에게 일깨워주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날, 일주일에 집세를 8달러 내는 초라한 아파트에서 남편 짐과 함께 살고 있는 델러의 수중에는 오직 1달러 87센트뿐이었다. 사랑하는 남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을 세고 또 세며 델러는 울먹였다.
그런데 델러에겐 갈색 폭포수처럼 떨어지며 반짝거리는 머리채가 있었다.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아파트를 나서 시내 한길로 들어선 그녀의 눈에 ‘마담 소르포니 - 머리용품’이라는 간판이 들어왔다. 델러는 20달러에 자신의 머리채를 팔았다.
다시 한길로 나선 그녀는 낡은 가죽끈으로 시곗줄을 대신하던 남편 짐의 금시계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떠올렸다. 그리고 가게를 샅샅이 뒤져 백금으로 만든 21달러짜리 시곗줄을 샀다. 남편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가문의 보물을 이 시곗줄이 더욱 빛나게 해줄 것을 상상하며.
집으로 돌아온 델러는 7시면 귀가하는 짐을 위해 커피를 끓이고 스토브 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고기 토막을 요리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하기야 남편을 위해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인 백금 시곗줄만큼 자랑스러운 준비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마침내 짐이 직장에서 돌아왔다. 짐을 맞이하기 전 델러는 중얼거렸다. 간절한 기도였다.
“오오 하나님, 저이로 하여금 제가 여전히 예쁘다고 생각하게 해주소서.”
아파트 문을 닫고 아내를 바라본 짐은 꼼짝도 하지 않고 문간에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델러가 예상한 분노나 놀라움, 뭐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얼굴에 이상야릇한 표정을 머금은 채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저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세요.
당신에게 선물을 드리지 않고는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가 없어서 제 머리채를 잘라 팔았어요. 머리는 다시 자랄 거예요. (…)
당신을 위해 내가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선물을 샀는지 당신은 모르실 거예요.”
짐은 외투 주머니에서 꾸러미 하나를 꺼내더니 그것을 탁자 위에 던졌다.
“델러, 나를 오해하지 마. 당신이 머리채를 잘라버렸건, 면도를 해버렸건, 아니면 샴푸를 했건, 그렇다고 내
어찌 당신을 덜 사랑할 수 있겠어? 하지만 그 꾸러미를 끌러보면, 왜 내가 아까 한동안 멍해 있었는지 알 거야.”
델러의 하얀 손가락이 재빨리 끈을 끄르고 포장지를 풀었다. 델러가 오래전부터 브로드웨이의 진열장을 바라보며 갖고 싶어 한, 옆머리용과 뒷머리용 한 세트로 된 바로 그 핀이 놓여 있었다.
황홀한 기쁨의 탄성이 발작적인 눈물과 통곡으로 바뀌었다. 짐의 위로로 정신을 차린 델러는 남편을 위해 준비한 백금 시곗줄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에게 내밀었다.
“참 멋지지 않아요? 이걸 구하려고 시내를 온통 샅샅이 뒤졌어요. 당신, 이제 하루에도 백번씩 시계를 꺼내 보고 싶어질 거예요. 자, 시계를 주세요. 이 시곗줄이 당신 시계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고 싶어요.”
짐은 침대에 풀썩 주저앉은 뒤, 뒤통수에 두 손을 갖다 대고 빙긋이 웃었다. 이제 그가 어리석은 선물로 아내를 실망하게 만들 시점이다. 델러가 자신의 보물인 머리채를 팔아서 남편의 백금 시곗줄을 선물로 샀다면, 짐은 도대체 무엇을 팔아서 아내에게 줄 핀 세트를 선물로 샀단 말인가.
독자의 기대나 예상을 뒤엎고 결말을 역전시키는 이른바 ‘트위스트 엔딩’이라는 기법의 대가인 오 헨리가 우리를 실망시키지는 않는다.
“델러, 우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당분간 치워둡시다.
지금 당장 사용하기엔 너무 훌륭한 것들이니. 당신에게 핀을 사줄 돈을 구하기 위해 난 시계를 팔았다오.”
뉴욕의 가난한 동방 박사 부부를 소개합니다
벌써부터 거리에는 트리가 반짝이고 캐럴이 울려 퍼집니다. 일찍이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 탄생을 축복한 분위기와는 조금 다르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서 사랑하는 이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들뜬 마음도 소중한 것이겠지요.
오 헨리가 작품 말미에 적었듯, 동방 박사들은 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선물을 가져다준 현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게 된 것도 바로 그들에게서 유래한 것이죠.
하지만 <성경> 그 어디에도 동방 박사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그들이 누구인지는 명확히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역시 오 헨리가 작품 말미에 적었듯, 자신의 가장 값진 보물을 상대방을 위해 가장 어리석게 희생해버린, 싸구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 두 부부야말로 곧 동방 박사들이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 하나 갖는 것, 그래서 시 한 줄을 쓰는 것,
그것이 반 생애요,
사랑하는 그 한 사람을 지키는 것, 그래서 그 시 한 줄을 지우는 것,
그것이 또 다른 반 생애요,
그 사람과 이 세상에서 만나 썼다 지운 그 한 줄의 시를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온 생애이기를,
기러기 나는 겨울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글 정제원
일러스트 홍소희 참고문헌 <오 헨리 단편선>(오 헨리 지음, 김욱동 옮김, 비채 펴냄), <문학의 즐거움>(정제원 지음, 베이직북스 펴냄)
글쓴이 정제원은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해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을 마쳤다. 1999년에 월간 <순수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서울대학교와 백제예술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으며,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 <교양인의 행복한책읽기 : 독서의 즐거움>, <문학의 즐거움>,
<고전 탐독> 등을 펴냈다.
GOLD & WISE
KB Premium Membership Magazine
www.kbstar.com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메모 :
좋아요공감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