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허공이 젖고 나도 젖는다. 저녁나절에 깃든 적막한 폐사지. 부처가 없다고 사찰이 아닐까. 범종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 소리를 듣지 못할까. 폐허라도 언제나 금당이고 대적광전인 것을. 비어 있는 윤회의 공간을 지키는 불탑이 서럽도록 장엄하다.
천년이 삼층 석탑의 기상만은 꺾지 못했나 보다. 맨 위 노반의 한 모서리만 풍파에 내주었을 뿐 흐르는 시간에서 비켜난 듯하다.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법수사의 맥을 잇고자, 부처를 대신해 생불의 삶을 살아온 삼층 석탑. 무한한 시간 동안 자신을 버려둔 세상에 노여울 만도 하련만, 웅숭깊은 숨을 고르며 하루하루 역사를 새기고 있다. 그 순정한 시간 앞에 숙연해진다.
이 유적은 신라 애장왕 때 창건한 법수사지로 매장 문화재 보호 및 발굴, 훼손의 행위를 금한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어둠에 갇혔던 법수사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석탑과 건물지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없었다면 이곳에 목탁 소리 그치지 않고 향화 끊이지 않은 사찰이 있었다고 누가 짐작이나 할까. 잘 지어진 절이 아니어도 승려가 없어도 법열이 살아 있는 절집다웠다.
우산을 움켜잡고 마을로 내려간다. 십 분쯤 걸었을까. 나이가 지긋한 느티나무 아래 당간지주가 보인다. 석탑과는 거리가 멀다. 그 사이가 절터로 짐작되지만 법등이 꺼진 그곳엔 백성의 집이 들어서고 농작물이 뿌리를 내렸다. 삼국유사에 9개의 금당과 8개의 종각, 천여 칸이 넘는 건물이 있었다고 전하니 대가람이었다는 것만 가늠할 뿐이다.
세월에 일그러진 당간지주는 좁은 선방을 나와도 풀리지 않는 화두에 싸인 수행자 같다. 땅에 붙박인 그를 두 눈으로 어루만지며 나는 본디부터 있었던 조그만 돌처럼 꼼짝하지 않는다. 저 몸속에 배어 있을 과거를 상상하며 묵연할 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연화문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배례석은 당산나무인 느티나무가 보듬었다. 정월이면 정성껏 올리던 제祭도 요즈음은 시들해졌다고 농기구를 들고 지나가는 노인이 들려준다. 두어 발짝 떼며 헛기침을 남긴다. 죽비를 내려치듯 뼈 있는 한마디로 와 닿는다.
탑을 우러른다. 잃어버린 천년과 기다림의 시간이 교차하는 공간에 숨죽인 석축만이 한 시절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탑과 당간지주는 맞바라보며 허물어진 절을 중창하고 법등이 다시금 켜지기를 서원한다. 휘둘러보아도 일주문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헤아려지지 않는다. 산승 같은 당간지주를 뒤로하고 그 옛날 법수사를 찾던 사람처럼 다시 석탑 곁으로 오른다.
몸 하나 들일 곳 없는 절터에 소낙비만 들이친다. 한참을 서성인다. 천년이나 눕지 않고 꼿꼿이 서서 수행해 온 탑 앞에서 잠시의 폭우를 견디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빈터에서 홀로 불도를 닦는 석탑에게 드리는 나만의 경배의 몸짓이기도 하다. 새 한 마리가 비를 피해 옥개석에 앉아 있다. 우리가 천년의 시공을 초월해 이렇듯 만난 것도 부처의 존재 때문이리라. 부처는 떠나지 않았다. 우매한 중생의 혜안을 위해 잠시 법당을 비운 것뿐이다.
생각해 보니 빈 공간 이대로도 괜찮을 듯하다. 일주문이 없고 단청이 없으면 어떠랴. 닫집이 없고 후불탱화가 없으면 또 어떠랴. 가을이면 갖은 색깔의 단풍이 화려한 단청이 되고, 짙은 초록과 들꽃이 후불탱화가 되며, 낙엽 내음이 향냄새가 되는 흔치 않은 자연 그대로의 법당이 아닌가.
석가모니도 법전에만 있지 않았다. 보리수 아래 앉아 깨닫고 바람에 몸을 맡기기도 했다. 참된 소리를 들을 줄 안다면 장소가 무에 대수일까. 새것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폐허라고 좋지 않은 것 또한 아니다. 아직은 꾸며지지 않았지만 전각 안에 계시는 부처님이 앉은 자리 못지않은 소중한 자리다. 있는 그대로도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임을 폐사에서 깨닫는다.
탑을 만나고 나니 그의 존재보다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한 시간이었다. 글을 쓴다는 핑계로 여기에 왔지만 어쩌면 퍼부어 대는 빗속을 헤적이며 몸과 마음과 입으로 지은 선업을 참회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량하게 쏟아지는 비가 극락의 빗발 같다. 몸은 비바람에 움츠러들어도 마음은 피안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다.
편평한 기슭이 거대한 연화좌로 보인다. 한때 많은 승려와 천여 칸의 건물이 있었다는 대가람 법수사. 이곳 금당을 지켰던 비로자나불은 지금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중생들의 번뇌를 씻어준다. 공(空)으로 있어도 신라의 역사는 면면히 흐르고 있다. 잡풀과 들꽃들이 무너진 도량을 장식하고 있지만 법수사의 숨겨진 지문을 만져볼 날도 멀지 않았다. 그날을 위해 삼층 석탑과 당간지주는 오늘도 내일도 불멸의 부처를 안고 잠들고 깨어날 것이다.
세상의 소리가 사라지고 부처의 소리만 머무는 법수사지야말로 문 없는 문, 진정한 무문관이 아니런가. 꿋꿋한 법전이 되어 오가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어 주는 불탑을 바라보며 부처의 땅을 빠져나온다. 폐사지는 쓸쓸해도 성주 법수사지에는 무너지지 않는 불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