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 오후
푸른빛 잃어가는 잔디밭에 투명한 햇살이
넉넉한 오후를 어루만져주고 있다
묵묵하게 키 세우며 푸른 잎 가득 채웠던 개쭉나무
몇 잎 털어놓고 한량으로 가을바람 맞이한다
가을바람에 잔잔한 무료만 가득 뿌려놓은 마당
그 많던 꽃도, 시간 따라 시든지 오래
형체만 갖춘 나무 위로
잠자리 몇 마리 허공을 좌우로 물리치며
담장 너머로 사라져가고
방바닥에 내질러 놓았던 배꼽을 추스르며
엉금엉금 베란다 문에 기대어 앉아
공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더니
어디선가, 다가오는
부드럽고 얇은 구름 떼가 앙금앙금 흘러간다
저 구름 따라 추임새 넣으며
어디든지 가고 싶다
2.
질경이
한적한 마을 뒷길
짓밟혀 반쯤 떨어져 나간 이파리
짓밟히는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저 태양 빛에 상처 난 얼굴로
바람에 흔들리며
꽃대 올리는 질경이
자신에게 묻는다
누구를 짓밟혀놓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얼굴에 뜨거운 가면을 쓰고
허울 좋게 웃으며 살고 있지 않냐고
지나치다 뒤돌아서서
한참을 뚫어지게 보다
짓밟혀 아픔보다
짓밟아 후회스러운 날이 많아
자꾸만 눈에 밟힌 질경이
3.
길
젊은이가 길을 묻는다
노신사는 손가락 끝에 달린
길을 가리킨다
주름살만큼 그려지는 드라마는
험준한 산길이 되었다가
평범한 능선이 되었다가
구부러진 길이 되기도 한다
길 위로 햇살이 넘쳐 나기도 하고
향기가 나르기도 했으며
흐느껴 우는 비바람 때문에
꽃들이 시든 이유도 알아갔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 길 위로
生(생)도 흐르고 있다고
길 위에 길이 겹쳐 흐른다
4.
혀
그 남자의 혀에는
방울뱀 꼬리가 살아요
혀가 춤을 출 때는 그 유혹에 안 넘어가고 못 배기죠
달콤한 향기까지 있거든요
내 혀를 품어줄 땐 구름 위에서 놀기도 하죠
부드러운 솜사탕 맛이 나거든요
너무 깊게 빨다 보면 치명적인 독이 퍼져요
등걸보다 더 앙상한 뼈대만 남고 죽기도 하지요
오늘 어때요
혀에서부터 항문까지 썩을 의향은
5.
나쁘지 않다, 오늘
바람 끝에 몸 뒤척이는 연초록 잎을 본다
날카로웠던 눈빛 맑아 온다
마당 가 백합 향기 창문 틈으로 들어와 가슴 채우면
답답하고 습한 마음을 한결 보드랍고 말랑말랑 한다.
질그릇에 연잎 차 한 잔 우려 보니
부러움도 외로움도 흩어져가고
칸 없는 공책에 연필로
오늘 이야기 쓰고 나면
싱그러운 듯, 샘솟는 듯
까닭 모를 즐거움이 스며들겠다.
너그럽게 퍼질러 앉은 여유가 달콤하여
나쁘지 않다, 오늘
전남 신안군 비금면 출생
2006년 시사문단 신인상 수상 ,
2023년 시와사람. 신인상 수상
한국 문인협회 회원
한국 문인협회 신안지부이사
시집 : 목련, 그 여자
주소 : 전남 함평군 신광면 호덕길 4- 51
https://mail.daum.net
hp : 010-8831-5010
( 바쁠 시간이라서 미리 올려봅니다. 혹시 편집하다 문장이 이상하면 연락 주세요.. 수고 해 주시고
감사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