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유리로 지어졌다 사각형의 투명한 창문으로 사각
거리는 산소와 환한 햇살이 비쳐든다 은밀한 입맞춤 소리 담
장 밖으로 새어 나온다 때로 우당탕, 싱크대 안에서 냄비가
신경질적으로 부딪치는 소리 들린다 사각형의 집들이 수족관
707호 주변에 닭장처럼 모여 산다
(예언자가 사라졌어)
인터넷을 두드린다 수족관 707호에 사는 고기에게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이 올라올 뿐 그 시간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구원을 약속한 젊은 남자가 이천년 전에 죽었
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지루한 고기들은 긴 하품을 한다 먹이
를 꾸역꾸역 삼킨다
(22살 때, 수족관을 부수고 탈출하고 싶었어)
빗속에 갇혀 산지 벌써 39년이야, 꽤 긴 시간이야 벽이 아늑
해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이고 차의 불빛도 반사되지 나를 들
여다보는 시선은 집요하게 내 몸을 갈망하지 회칼로 살을 저
며 늘씬한 뼈를 발라내고 붉은 입술 안으로 나를 밀어 넣겠
지 내장으로 들어가 한 몸이 되는 거야
(죽음은 입 안으로 들어가는 여행이지)
미래를 알 수 없는 수족관은 하늘에 매달려 있지 기억이 점
점 뇌세포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어 고기는 뇌가 작잖아 남
자와 재산을 나누고 산딸기를 그릇에 담아 하얀 설탕을 뿌려
아이 입안에 넣어주는 이 수족관 안에서
(아, 행복해 여기가 천국이야)
종말이 오면 수족관에 쩍쩍 금이 가고 고기들은 바다로 가
겠지 초라한 비늘이 은빛 깃털로 변할 거야 지느러미를 펄
럭이며 저 하늘로 날아가겠지 날마다 시작이야 날아봐 솟
구치는 고래 한 마리, 푸른 바다가 네 안에 있어!
<시안 2004년 가을호>
<<시에 대한 느낌 나누기>>
-이시는 (가로)까지 합해서 모두 9연으로 이루어져 있네요.
-시인은 지금 <자신이 사는 집>과 <지구>를 이중구조로 해서 <수족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연에서는 닭장처럼 모여 사는 싱크대가 있는 <집>과 산소와 환한 햇살이 비취는 사각형의 유리로 된 <수족관>이 맞물리도록 구성해서 <입맞춤>과 신경질적으로 <우당탕> 부딪치는 소리로 사람들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물고기>와 <사람>을 같이 묶어 이야기하니 거리감이 멀어서인지 평범한 이야기인데도 새롭게 느껴집니다.
-2연에서는 뜻밖의 예언자가 나오고 3연에서는 종말론 이야기가 인터넷에 올라오지만 믿지 않아 물고기(사람)들은 하품을 해대고 있지요.
-구원을 약속한 2000년 전에 죽은 남자는 예수를 말하는 것 같고요.
-사는 것이 지루했는지 아니면 종말을 지구 탈출로 생각한 것인지 화자 자신도 <집>을 <지구>를, <수족관> 탈출로 4연 처리를,
-5연에서는 결혼생활로 들어가는 것을 물고기가 회가 되어 몸속으로 들어가 한 몸을 이루는 것으로,
-7연에서는 미래를 알 수 없는 결혼생활이지만 아이도 생기고 행복함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고요.
-9연에서는 다시 <지구> 또는 <수족관> 종말의 끝이 하늘로, 바다로 갈 것이라고 마무리처리를 하네요.
-이 시에서는 <집><지구><수족관> 이렇게 이중 삼중 처리를 한 것이 돋보입니다.
-그 때문에 긴장감이 생기고 중간마다 (가로) 속에 앞 연에 대한 반전 처리를 함으로써 종교적 뉘앙스까지 풍기고
-단순한 삶을 이야기 했지만, 뜻밖의 엉뚱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듯하여 전혀 지루하지 않고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아마도 그것이 시인으로서 습득해야 할 중요한 점이겠지요.
-707호는 시인의 아파트 호수인 것 같고 39살 때 지은 시같이 느껴지는, -문 향-
김혜영/ 시인, 문학평론가
경남 고성 출생
월간 [현대시] 1997년 등단
부산대, 대학원 영문학과 졸업, 영문학 박사
부산대, 동의대 강사
시집 <거울은 천 개의 귀를 연다>
평론집 <메두사의 거울>
계간 [시와 사상] 편집위원
문예지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