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절 이야기다. 마을 초입부터 빼곡하게 늘어선 서늘한 대나무 그림자 위로 떨어진 댓잎을 밟으며 올라가는 담양 소쇄원길은 잊히지 않는 데이트코스다. 지나가는 바람에 서로 부딪힌 댓잎에서 나는 스스스 소리, 그 아래로 도란거리며 흐르는 물소리, 때로는 계곡을 가득 채우는 것 같은 벌레 우는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마치 조선 시대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시간만 아니라 계곡 옆에 바짝 대어 지은 정자와 자연과의 경계 또한 구분이 애매한 곳이어서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손꼽힐만하다.
그곳에서 기분 좋은 쉼을 가진 후 지금의 아내와 손을 잡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불호령이 떨어졌다. “여기가 어디라고!” 지게를 지고 오시던 마을 어르신이 금방이라도 지게막대기로 내려칠 듯이 버럭 화를 내신 것이다. 당황한 그 순간 나는 “여기는 소쇄원… “하고 대답할 뻔한 입을 간신히 막았다. 소쇄원이 관광지인 것이야 우리보다도 그분이 잘 아는 일일 테지만, 관광지를 떠나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엄연히 살아있는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그분의 마음이 순간 섬광처럼 깨달아졌기 때문이다. 그분의 눈에는 그 경계를 넘어선 줄 모르고 즐거이 내려오던 우리가 마치 자신의 집 담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와 희희낙락하는 불손한 침입자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분이 소중히 여기는 것까지 이방인들에게 내어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서울 한 복판에 있는 북촌, 예스러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 마을에는 매일같이 관광객들의 행렬이 그치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소문을 듣고 온 이들이 골목이나 집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사진을 찍으며 다녀간 흔적을 남긴다. 현대와 고대를 오가는 듯한 들뜬 마음에 취해 소리는 커지고 행동 범위는 넓어진다. 허락된 곳만 아니라 할 수 있으면 그 집 안까지도 기웃거리며 옛 것을 탐색한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공기취급하며 전혀 개의치 않는 대범함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으니 정숙을 유지해 달라’는 호소문이 걸려있으나 관광객에게는 외국어처럼 의미가 없는 안내문일 뿐이다. 호기심이 충만한 이방인들에게는 거주자들까지도 관광의 대상이 될 뿐이다. 관광이 생업인 사람에게는 반가운 손님이겠으나 거주자에게는 골칫덩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유럽의 옛 도시의 형편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눈에는 보이는 경계가 누구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누구는 존중하며 지키는 경계를 누군가는 몰라서 범하고 때로는 알면서도 범한다. 방과 방, 집과 마당, 집과 집 사이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 가정과 가정, 세대와 세대, 나라와 나라, 하늘과 땅, 조물주와 피조물 사이에도 경계가 있기 마련이다. 보지 못하면 실례를 범하게 된다. 무례하게 행하게 되어 자의 반 타의 반 피해를 주고 만다.
대개는 그 경계를 설명하기도 번거롭고 그 과정에서 소란이 일어날까 하여 지나친다. 그러나 그 노인에게서는 아무런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대로 일갈이었다. 아마도 그 마을에서는 성격이 까탈스럽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평소에 유별나다는 소리를 들어왔을 수도 있다. 젊은 혈기에 “왜 그러시느냐고?”라고 묻는 대신에 우리는 황급히 손을 놓고 “죄송합니다” 깍듯이 인사까지 하고 내려왔다. “쯧쯧, 요 샛 것들은 경우를 몰라.”하는 소리가 그 길을 벗어날 때까지 따라오는 것 같았다. 벌써 40년가량 지난 일인데도 여전히 생생한 기억일 뿐 아니라, 마음에 새겨진 교훈으로 남았다.
사랑하는 친구가 소개해 준 뒤 늘 되뇌게 되는 시구가 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담장을 보았다/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화분이 있고/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함문복 “꽃”)
모든 경계에 꽃대신 철조망을 세우고, 지뢰를 매설하고, 높다란 벽마저도 모자라 그 위에 뾰족한 유리 조각을 박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피어나게 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다. 지켜야 할 경계에 무엇을 두려는 사람일까? 남의 경계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마땅히 경계를 인식하며 존중해야 할 것을 가르쳐 준 그날의 호통소리가 고마운 이유다.
그분이 집에 돌아가 아내나 이웃들에게 자신이 한 일을 나눌 때, ‘젊은것들이 서로 좋아라 하면서 손도 잡고 안기도 하는 것인데, 그것 하나 이해 못 하고 뭘 그렇게까지 면박을 주었수!”라는 핀잔을 들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꼿꼿하게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용기 있는 어르신은 반드시 우리의 칭찬을 받으셔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도 그 이야기를 나누면 우리 부부는 마음이 가벼워지고 행복해진다.
이제 그 시대도 오래전에 흘러갔다. 그러나 여전히 감사하다. 우리 시대에 만나기 드문 참으로 귀한 어른을 만난 그때 일이. 우리를 상종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지 않고 바로 잡아 준 그분이. “경우와 경계를 아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준엄한 가르침이 왠지 같은 사람으로 존중받은 느낌으로 여전히 남아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