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읽고 싶은 시: 권대웅 시인의 ‘민박/삶을 문들이라 부르자’◈
민박/권대웅
반달만한 집과
무릎만한 키의 굴뚝 아래
쌀을 씻고 찌개를 끓이며
이 세상에 여행 온 나는 지금
민박 중입니다.
때로 슬픔이 밀려오면 바람소리려니 하고 창문을 닫고
알 수 없는 쓸쓸함에 명치끝이 아파오면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녀서 그러려니 생각하며
낮은 천장의 불을 끕니다.
나뭇가지 사이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손톱만한 저 달과 별
내 굴뚝과 지붕을 지나 또 어디로 가는지
나뭇잎 같은 이불을 당기며
오늘밤도 꿈속으로 민박하러 갑니다
삶을 문득이라 부르자/권대웅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오전
낯선 골목길 담장 아래를 걷다가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는 순간,
내가 저 꽃나무였고
꽃나무가 나였던 것 같은 생각
화들짝 놀라 꽃나무 바라보는 순간
짧게 내가 기억나려던 순간
아, 햇빛은 어느새 비밀을 잠그며 꽃잎 속으로 스며들고
까마득하게 내 생은 잊어버렸네
낯선 담장집 문틈으로
기우뚱
머뭇거리는 구름 머나 먼 하늘
언젠가 한 번 와 본 것 같은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고요한 골목길
문득 바라보니 문득 피었다 사라져버린 꽃잎처럼
햇빛 눈부신 봄날, 문득 지나가는
또 한 생이여
*내공이 단단한 시인입니다. 시인이라고만 하기엔 그의 동화도 참 좋습니다.
시인의 다양함이 이런 시를 우리들에게 선물한 것이겠지요.
삶이 ‘민박’이며 ‘문득’이라는 시인에게서,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이슬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