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저물 때 청송을 찾았다. 다들 하는 걱정만큼만 하고 살고 싶은데, 감추고 사는 추가 무겁고 답답한 날이었다. 청송을 찾아 주산지 둘레를 걸었다. 청송은 우리나라 제주도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특별한 땅을 밟는다는 기분에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주산지 초입부터 전망대까지 자연관찰로를 걸어 들어가면 작고 오목한 저수지를 만날 수 있다. 세상사 뭐 별거냐는 듯, 무심한 왕버들나무가 물에 발 담그고 서 있다.
주산지는 숙종 때 시작되어 경종 때 완공되었다. 수백 년 전 이 땅을 파내던 수많은 곡괭이 질과 크고 작은 돌맹이를 나르던 수레와 흙투성이 손이 보인다. 그 손에 지워질 날이 없는 상처, 한 낮에 힘쓰는 소리에 대비되는 밤의 신음 소리가 물에 묻혔다. 밥을 배불리 먹었을까,잠은 편히 잤을까. 두고 온 땅을 일구지 못해 헛헛한 농부들의 마음은 언젠간 물을 끌어다 농사에 댈 생각에 비로소 그득했을까.
물에 잠긴 왕버들나무에 다시 시선이 간다. 왕버들나무의 한자는 선류(腺柳)이고, 버들나무 보다 크고 잎도 크다. 주로 물가에 자생하고 1년에 한두 번 정도 물에 잠기는 곳에서 더 잘 자란다. 적당한 근심거리가 주는 삶의 긴장감 같은 것일까 빗대어 본다. 걱정은 마르지 않는 물 같다. 걱정은 높고 낮음을 달리할 뿐, 항상 인생의 기저 그 어딘가 있다. 우리의 삶은 물 속에서도 생명을 지탱하는 왕버들나무와 다르지 않다. 물이 있어서 사는 것인지, 물이 있지만 사는 것이지 알 수 없고 그저 계절을 따라 잎을 틔운다. 잎은 색을 달리하고 바람과 하나 되어 물 위에 내려앉는다.
물에 드리워진 반영이 애달프다. 같은 모습이지만 하나가 아니고, 의미 있는 존재이길 바라지만 진상과 허상의 경계는 극명하다. 허상이 있어 더 이목을 끌면서도, 나무와 연결된 나뭇잎과 비춰진 그림자에 내려앉은 낙옆은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그 태생이 다른 것이다.
왕버들나무 주변으로 물결이 일고, 파문을 눈으로 더듬으며 물이 와서 가는 곳이 어디일지도 가늠해 본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 가는 것일까, 가야 하니까 응당 가야 하는 것일까.
과거와 현재, 미래의 넘나들던 잡념이 결국 또 나를 향한다. 걱정 없는 삶을 바라지만 그것은 허상이다. 작은 걱정을 큰 걱정이 덮으면, 나를 괴롭히던 작은 걱정은 이미 걱정이 아니다. 자기 몫의 괴로움이 있을 뿐이고 내 것이 크고 제 것이 작은 것도 아니다. 내게는 있고 너에게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걱정은 어디에나,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한다.
삶이 버거울 때 내 어머니들을 생각한다. 칠순을 목전에 둔 엄마, 여든을 기다리는 시어머니. 산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적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하셨다. 무언가를 이룰 필요도 없고, 더 이상 무언가에 쫓기지도 않는 상태가 주는 편안함이었다.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메달에 연연해하지 하는 마라토너처럼, 순례길을 걸어온 뒤 누추한 모습이지만 충만한 순례자처럼. 늙고 지쳤지만 이제 쉴 수 있다는 안온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내 한 발, 한 발을 내디뎌 일상을 걷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도 누워만 있고 싶은 날은 죽음을 처음 알았을 때 무서워하던 아이를 생각한다. 어린 아들이 위인전을 읽을 때면 그 사람이 몇 년 도에 태어나서 몇 년 도에 죽었는지를 살폈다. 나이를 계산하며 베토벤은 몇 살에 죽고, 윤동주는 몇 살에 죽고를 읊조리던 날들이었다. 갑자기 그 어린 아이가 슬픈 얼굴로 “엄마 죽는게 무서워.”라고 말하고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꼈다. 손이, 몸이 떨고 있었다. 베토벤도, 윤동주도, 그 누구도 피해 가지 못하는 것이 너를 슬프게 하는구나 싶어서 그 머리통을 꼭 안아 주었다. 그러고 다시 일어나 앉고, 서고, 걷게 된다.
이런 저런 상념에 사로 잡혀 주산지 주변을 걸으며 물에 잠긴 왕버들나무를 본 날이었다. 결론은 없고 누구 하나 조언 한 이도, 위로 한 이도 없지만 명치에 걸린 추가 가벼워졌다. 아니다. 쉽게 가벼워질 성질의 것이 아닌데 가볍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삶의 무게가 버겁다 생각했는데, 시간의 힘에 다시 기대게 된다. 다들 자기 몫을 지니고 살아가다 보면 조금씩 가벼워지거나 내가 강해진다고 생각하니, 다시 그 무게의 끝자락을 거머쥐게 된다.
물의 높낮이를 달리할지언정 마르지 않는다는 주산지를 보고 왔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