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호가 보여준 '차근차근'의 미학
'빨리빨리 문화'를 버리고 다시 천천히 나아가야 할 때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12년 만에 원정 16강을 이루어내며 국민들의 마음을 끓게 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역사상 최초로 중도 교체 없이 임기 4년 동안 월드컵을 준비한 감독이다. 그동안 한국 대표팀의 감독 자리는 일명 ‘독이 든 성배’라고 불리며 4년 동안 착실히 월드컵을 준비하는 경우를 볼 수 없었고, 각종 비난과 바람에 흔들리며 잦은 감독 교체를 볼 수 있었다. 선수들도 여러 인터뷰에서 잦은 감독 교체가 선수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벤투 사단의 선임은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발전시킴과 동시에 체계적인 행정 기준과 시스템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 사례가 됐다. 2018년 김판곤 당시 국가대표감독 선임위원장은 ‘능동적인 축구’라는 우리 축구의 큰 틀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감독들을 면밀히 물색했다. 벤투 감독은 코치들을 면담에 동행하고 자신들의 체계적인 자료들을 보여주며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 결과 파울루 벤투가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당시 벤투 감독이라는 선임 결과와 함께 주목받았던 것은 김판곤 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감독 후보 설정부터 최종 결정까지 그 모든 과정을 직접 언론에 나와 투명하게 설명했다.
적합한 과정을 통해 선임된 벤투 감독의 4년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항상 똑같은 선수만 뽑는 고집쟁이’, ‘우리에게 맞지 않는 축구를 한다’ 등의 고정적인 비판과 함께 주변에선 벤투호를 흔들었고 나아가 한일전 패배는 벤투호에게 아주 큰 역경이었다. 심지어 벤투의 거취를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감독과 코치진에게 굉장한 신뢰를 보냈고 감독도 철학을 꺾지 않으며 우직하게 나아갔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준비한 것들을 여실히 보여주며 우수한 경기력으로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김판곤 위원장과 벤투가 보여준 일련의 과정과 결과는 단순 대한축구협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본보기가 되었다. 올바른 과정 뒤에는 시간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는 확실한 방향 설정과 체계적인 절차 그리고 투명한 설명으로 신임을 얻었고, 벤투 사단 또한 명확한 축구 철학과 체계적인 훈련 및 시스템으로 선수들의 신뢰와 함께 팀을 이끌어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은 '빨리 빨리'의 민족으로 유명하다. 참혹한 전쟁 후 굉장한 속도로 발전해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행정부터 서비스 등 무엇이든 빠르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빨리 빨리'에는 장점과 더불어 수많은 단점도 낳았다. 무엇보다 나름의 방향을 설정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는 사람들의 노력을 시간 낭비로 여기며 시행착오의 과정을 실패로 치부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는 또 다른 근본적인 문제를 낳으며 발전을 막기도 한다. 어떤 사고나 문제가 발생하면 늘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나아갈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지금은 빨리빨리보다 차근차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