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안으로 깨달은 말씀만 아니라 밖에서 들어오는 말씀도 필요하다. 야곱처럼 20년 동안 강도 높게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은 후에도 안의 말씀으로는 충분히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라반의 일도, 얍복강의 일도, 에서의 일도 잘 통과했다고 생각한 야곱은 세겜에 자신과 가족이 쉴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 영구 정착할 생각으로 땅을 매입했다. 자신을 괴롭혀 온 문제들이 해결된 후, 하나님과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지, 그 기억 자체가 사라졌는지 모를 일이다.
20년 전,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챈 후 형을 피해 도망하던 그는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 이렇게 약속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 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창 28:20-22)
자기 입으로 분명히 말했다.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원치 않게 집을 떠나 생면부지의 땅으로 떠나는 그는 아비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얼마나 간절해 원했을까?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의 기도대로 응답하셨으나 지금 야곱은 아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자기 마음에 든 곳에 그대로 눌러앉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와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그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시다. 늙은 이삭은 세겜이 아니라 헤브론에 살고 있다. 야곱이 세겜에 정착해 버리면 자기 가족들은 언제 어떻게 아버지를 만날 것인가? 모든 환경을 하나님이 주도하셨다고 할 수는 없지만 허락하셨다고는 할 수 있다. 허락하신 환경을 통해 하나님은 말씀해 오신다. 모든 환경은 하나님의 안배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어한 세겜에서 야곱은 실로 슬프고 괴로운 일을 만난다. 딸 디나가 바로 그곳에서 강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 격노한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의 남자들을 할례 받게 한 후 모두 죽여버렸다. 일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커져 주변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살벌해졌다.
온 가족이 꼼짝없이 몰살당할 처지에 놓인 야곱은 그 일을 주도한 시므온과 레위를 질책한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장 34:30)
감정은 감정이고, 상황은 상황이다. 우선은 살고 볼 일이지만 길은 보이지 않는다. 숨조차 쉴 수 없게 환경의 압박강도가 높아졌다. 아직도 세겜이 자기 가족이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결코 아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껏 환경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직접 입을 열어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창 35:1)
이제는 살만하니 자신의 뜻대로 살 생각을 굳혔던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이셨다. 얍복강에서 찾아와 주셨으나 어느 사이 까맣게 잊었던 하나님, 자신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한 때에는 의도적으로 멀리했던 하나님이었다.
그가 일행 모두에게 말한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환경을 통해 두렵게 말씀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더는 숨기지 못하고 행한 일이다."(2)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4)
그 일이 아니었으면 헤브론까지도 우상들을 가져갔을 것이다. 매일 은밀히 그것들을 위하며 섬겼을 것이다. 이미 삶의 일부처럼 된 그것을 스스로 처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자랑했을 수도 있고,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믿음의 자손이 숨겨운 그 혐오스러운 것들이 떡하니 한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아무리 버리라고, 하나님이 몹시 싫어하시는 일이라고 강조해도 귀담아듣지 않을 때, 허락을 통한 환경의 압박을 통해서라도 그 부분을 해결하시는 하나님은 두려우신 사랑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