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삐질 때가 있다. 많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을 때다. 하나님의 거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바람이나 기도를 묵살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생각하거나 그려볼 수 없을 정도로 더 좋은 방식으로 일하신다는 뜻이지만 우리는 기다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성급한 것이다.
하박국도 그렇다. 그가 미칠 듯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쏟아놓는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 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 같게 하시나이까”(합 1:13,14)
단단히 삐진 그는 하나님께 따져 묻고 기어이 답을 얻을 생각이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합 2:1)
하나님은 그런 그를 속이 좁다, 무례하다, 믿음이 적다 하여 꾸짖거나 외면하지 않으시고 대답해 주신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 2:2,3)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고, 그때가 되면 신속하게, 늦지 않게 반드시 이뤄질 일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때, 일하시는 방법이 사람과 다를 뿐이다.
사실 의인이 잘못되는 것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주님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마 23:35) 그럼에도 잠언은 말한다. “의인에게는 아무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잠 12:21) 말씀이 서로 부딪히는 것인가?
악인이 하는 일을 하나님이 못 보시고 모르시는 것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일 말고도 사람의 마음속까지를 이미 보고 계시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한 치도 오차 없이 이루신다. 우리는 잊었을지라도 하나님은 기억하고 행하신다. 그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아도 오고 있으며, 더딘 것 같아도 때가 되면 심히 급하게 진행된다. “왕의 명이 심히 급하매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에 8:14)
왕이 세운 금령과 법도는 변개할 수 없다는 불문율마저 바꾼 조서를 보내서 한 일이다. “에스더가 왕의 앞에 나아감을 인하여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 머리에 돌려보내어 하만과 그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으므로”(에 9:25) 반전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다. 잘못 판단하시는 일이 없으시다. 사람이 만든 조서를 바꾸게 하셔서라도 말씀하신 바를 어김없이 이루신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 15:29)
권력을 잡았느냐, 안 잡았느냐, 부를 획득했느냐 못 했느냐는 사람에게 중요한 일처럼 보인다.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서는 것이 큰 일처럼 보인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환경이 바뀌는 것을 직접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그가 가진 힘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는 중인가 하는 것이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또한 공의로우신 재판관이시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들로 사는 삶이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0:37,38) 의인이 입을 열지 않은 이유는 삐져서가 아니라 잠잠히 기다리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