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正常)과 비정상(非正常)의 괴리(乖離)
사람들은 누구나 정상(正常)의 삶을 추구한다. 정상의 삶을 추구한다는 말은 현재의 실존적 삶이 정상적이지 않거나,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비정상적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현재의 삶이 불안정하고 무원칙 ․ 몰궤도 ․ 비이성적 ․ 비역사적일 때 더욱 강렬하게 안정과 원칙, 정상궤도, 이성적, 역사적이길 바란다는 말이다.
사람은 정상을 바라면서 살아가지만 결국 그것은 항상 희망사항으로 남아있을 뿐, 오늘의 삶은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는 어떤 괴리를 가지고 있다. 또 그 때문에 고민과 갈등, 번뇌와 방황의 늪지대를 헤매기도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 진지할수록, 빈번할수록 이 괴리감은 더욱 깊어지고 다양해지게 마련이다.
문학행위는 그 장르에 상관없이 정상과 비정상의 괴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일이 해당한다. 현상의 삶을 진지한 눈으로 탐색하고 재음미하여 또 다른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문학행위이기에 비정상의 탐색과 정상의 지향이라는 이중적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이중적 작업은 서로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끝내 단일선상에 놓이기보다는 현상적으로는 정반대의 카테고리 속에 함몰하게 된다. 문학행위의 고민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인생의 고민이 어떻게 정상적으로 사느냐에 있다면, 문학행위의 고민도 비정상적인 삶을 포착하여 어떻게 정상적인 창조의 의미를 천착해 내느냐 하는데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삶과 문학행위는 항상 정상과 비정상의 사이에서 심각한 괴리현상을 노출하게 마련이다. 삶이라는 행위 속에서도,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행위 속에서도 정상을 희망하며 비정상을 살아가고 있고, 비정상을 포착하여 정상을 창조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현상에 해당한다.
일상의 삶 속에서 노정(露呈)되는 비정상을 포착하는 일은 정상을 지향하는 삶의 창조에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괴리현상은 우리들의 일상의 삶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첫댓글 어쩜 오늘 '명량'이 천만 관객을 돌파할 거라고도 합니다. 시대적으로 정상을 갈구하는 비정상에서의 대리자 역할을 충분히 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 괴리 속에서 관객은 카타르시스라는 위로를 받게 되고...
그런 열망을 가진 민족이라면 충분히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명량의 DNA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