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때 묻은 종탑의 밧줄이 하릴없이 흔들리고 있다. 도시보다 이르게 여름을 밀어내고 있는 교회 마당에 노을을 부르는 분꽃이 핀다. 성상 앞 잔디밭은 고르게 숨죽이며 길어지는 그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봄꽃이 찬란한 청명 무렵의 아침나절, 동곡 가는 길로 나선다. 색색의 꽃 색깔에 어우러진 초록의 세상이 싱그럽다. 낙산으로 접어들어 한적한 길이 끝날 무렵, 작은 동산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 하나가 보인다. 가실 성당이다.
가끔씩 마음이 고단할 때면 찾는 곳이다. 크고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한 품위를 안고 있는 가실성당은 고요한 평화가 있다. 마음에 무엇도 들이지 않고 침잠할 수 있는 장소이다. 본적 없는 신에게 가까이 가려는 나만의 성사이기도 하다.
한티 순례길이 완성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스페인의 산티아고길 같은 길이다. 산을 넘고 저수지 제방을 따라 걷기도 하는 그곳은 가실성당에서 시작하여 한티 성지에 이르는 45.6킬로의 짧지 않은 거리다. 총 다섯 개의 구간으로 나뉘어 있지만 한 번에 전 구간을 걷는 것은 무리이다. 나는 가실성당에서 시작하는 1구간을 먼저 걷고, 일주일 후에 마지막 구간인 한티 순교마을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순례 첫 날,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성당 마당은 텅 비어 있었다. 백 년의 시간도 이곳에서는 잠시 멈추어 있는 듯하다. 성당 외벽은 세월이 묻어 반질반질하다. 거친 벽돌의 표면도 시간이 흐르면서 신에게 순응하는 순교자의 옷자락처럼 부드럽게 변한 것 같다. 일부러 꾸미지 않았음에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는 성전의 모습은 그 자체가 그림이다. 밝은 햇살을 받아 뽀얗게 보이기도 하고 지는 해를 따라 색을 바꾸기도 한다.
장미 창 아래의 빛바랜 문을 밀었다. 사찰의 대웅전이나 교회의 본당에서 신발을 벗는 것은 절대자에게 바치는 경배의 의미라고 한다. 나도 맨발로 허리를 숙였다. 성당 중앙에 자리한 작은 불꽃이 흔들린다. 고상 밑에 있는 감실 옆 작은 등잔에서 기름이 타고 있다. 칠보를 올린 유리화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나이 먹은 성당과 함께하는 서양 양식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예수의 생애를 그린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붉은 햇살이 기웃댄다.
이른 나이에 가정을 가지면서 미처 끝내지 못한 공부를 다시 붙들었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은 기를 쓰고 앞만 보게 만들었다. 목표는 늘 눈앞에서 흔들리며 나를 다그쳤다. 어느 날은 멀었다가 어떤 때는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아이들도, 남편도 장애물 같았다. 이기심으로 가득했던 나의 삼십 대는 그렇게 야위어갔다. 행복해지고 싶어 시작한 공부가 결국 많은 것을 놓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내 욕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잠시 나무 십자가가 잘 보이는 긴 의자에 앉았다. 여전히 그분은 벽에 매달려 있다. 생각에 잠겨있는 등 뒤로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종소리가 들린다. 기도시간을 알리는 걸까. 나도 생각을 멈추고 두 손을 모았다. 물결치듯 번지는 종소리가 평화롭다. 기도는 신에게 전하는 나의 이야기가 아닌가. 성자가 되고자 하는 자유인의 삶같이 정신의 비움이 더 중요함을 의미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성당 마당과 이어진 1구간의 첫발을 내딛는다. 가실성당에서 신나무골 성지까지의 조붓한 산길이다. ‘그대 어디로 가는 가’ 라고 쓰여 있는 표지석의 글귀에 잠시 마음이 저릿하다. 어디로 가려고 했을까. 어디를 가고 싶은 걸까.
길의 초입에서부터 숲이 시작된다. 침묵하며 걷는 길의 발끝마다 포근한 흙냄새가 올라온다. 길을 잃지 않도록 곳곳에 작은 리본이 묶여져 있다. 순례길에 든든한 동반자가 있는 것처럼 안심이다. 살짝 지칠 때 쯤 도암지 근처 정자에서 생수 한 모금으로 땀을 식히고 다시 걷는다. 연못을 품고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아채라고 토닥이는 것 같다. 신나무골 성지가 눈앞이다. 이름 모를 꽃들을 친구삼아 ‘돌아보는 길’이라는 부제처럼 지난 시간들을 되돌려본다. 구름 속에 숨은 해는 어느새 나보다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길 위에서는 누군가가 늘 떠나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처음이라는 말과 끝이라는 말을 함께 써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그곳에서 내딛는 걸음은 그 자체로 순례 의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멈추지 않고 가기만 하면 반드시 만나게 되리라는 구원의 상징처럼 길은 그렇게 이어져 있다. 한 구간을 마칠 때마다 찍어주는 스탬프의 푸른색은 손 내밀어 적시고 싶던 하늘빛을 닮았다.
마지막 구간은 예정보다 늦어졌다. 보름도 더 지나서야 겨우 시간이 났다. 연일 내리는 비가 발목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며칠간 내린 비로 색깔이 달라진 길은 진한 연둣빛이다. 진남문에서 한티 성지까지는 골짜기와 계곡이 함께한다. 한티는 ‘높고 큰 고개’라는 뜻으로 박해 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깊은 산속에 모여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면서도 끝내 버리지 않았던 신앙은 순교자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서 막상 거기에 모든 것을 걸지 못하는 나로서는 목숨으로 지켜온 신에 대한 믿음을 가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길이라는 말은 여러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목적지로 가는 수단이기도 하고, 인생을 비유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중에 가장 깊은 뜻은 인간 삶의 잣대가 되는 도덕적인 비유가 아닐까 싶다. 고승이나 철학자들이 길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한 이유를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한티마을로 접어들었다. 색색의 야생화가 어우러진 모습이 천국의 꽃밭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그 길 옆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리본이 길게 늘어서 있고, 이름 모를 순교자들을 형상화해 놓은 크고 작은 돌들이 보인다. 입석이라고도 하고 동네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돌을 보며 짧지만 영원히 사는 삶을 생각한다.
길 위에서 길을 생각하는 시간, 마을로 내려온 산 그림자가 길어진 어깨를 감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