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톨스토이의 단편 [어떤 결혼]은 한 중년의 돈 많고 잘 생긴 하숙인과 딸을 하나 둔 조신한 하숙집 여주인과의 결혼 이야기다. 하숙하면서 살핀 여주인은 조신함과 정결함, 깍듯한 예절 등이 몸에 빈틈없이 밴 나무랄 곳 하나 없는 완벽한 여성이었다.
남자는 청혼했고 둘은 부부가 됐다. 예상 못했던 일이 그때부터 시작됐다. 남편이 외출에서 돌아오면 아내는 신발의 먼지를 깨끗이 털어낸 후에야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주의를 주었다. 일터에서 종일 수고한 후 흙 묻은 신발로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전에는 그 정갈함이 좋았으나 결혼한 지금에는 성가신 일이었다.
어느 날 여자의 까다로움에 마음이 상한 남자는 흙 묻은 신발을 터는 대신에 그대로 여자 앞을 지나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일종의 시위였다. 하지만 여자는 큰 동요 없이 예의 주의사항을 차분하게 상기시켜 줄 뿐이었다. 저항해도 소용없는 여자의 태도에 질린 남자는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 그가 떠나던 날에도 아무런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은 여자를 보며 남자는 숨이 막혔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하숙집 주인이 아내가 되고, 하숙하던 사람이 남편이 된 것 외에는 결혼 전이나 후나 특별한 변화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상대방에 맞춰 변화하길 거부한 것이다.
결혼은 상대방이 내게 유익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지만, 일단 결혼 관계에 들어가면 바로 그 생각이 결혼 관계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무엇이 좋을까를 생각하고 움직이는 대신에 상대방이 나에게 맞춰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한 유치원 교사가 어린 학생들과 함께 학습 활동을 했다. 아이들에게 풍선을 불고 자기 이름을 쓰게 하여 한 곳에 모은 후 교사가 말했다. "이제 자기 이름이 적힌 풍선을 찾아보세요!" 아이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단 한 명도 자기 이름이 적힌 풍선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교사가 말했다. "이제 풍선을 하나씩 잡고 그 풍선에 적힌 이름의 친구에게 풍선을 가져다주세요." 순식간에 모두가 자기 이름의 풍선을 갖게 됐다.
교사는 자기의 즐거움을 찾는 일과 누군가의 즐거움을 만족시켜 주는 일이 그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는 말씀 그대로였다. 밝게 열린 아이들의 눈에 친구들이 새롭게 보였을 것이다.
결혼 전에는 시도 써 보내고, 노래도 불러주고, 꽃도 준비하고, 이벤트도 하여 상대방을 즐겁게 하다가도 결혼 후에는 상대방이 나를 즐겁게 해 주길 기대하는 오류에서 해방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적지 않은 날들을 자기를 섬기도록 상대방과 힘 겨루기를 할 수도 있고, 은밀하게 조종을 하며 보낼 수도 있다.
결혼 생활의 위기나 불만은 다른 것에서 오는 것 같지 않다. "결혼 후에도 연애때처럼 연애 때처럼 상대방의 풍선을 먼저 찾아주는 쪽으로 움직일 것인가? 아니면 상대방을 복되게 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것인가? 상대방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식지 않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지의 문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기본적으로 잘 하는 부분이지만, 남자들은 태생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선지 잠언은 아내가 아니라 남편에게 말한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잠 5:18) 하나님께서 모든 아내 안에 두신 진실이 있다.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19) 말씀 그대로 아내의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남편은 복이 있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