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일 없으나 떠올리는 것만으로 고마운 이름이 있다. 내게는 김민기가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누가 하는 일인지는 모르나 이름에는 그 사람의 삶이 담긴다. 김민기는 그 이름 자체에 어떤 감동, 순수함, 열정, 존경, 떨림, 선망, 무게, 친밀, 진지 등을 담고 있다. 굳이 사숙하는 대상이랄 것은 없지만 뭉클한 감동으로 마음을 적셔주는 이름이다. 그가 위암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태풍 개미가 집중 호우를 퍼붓던 날 들었다.
'지하철 1호선'을 관람하기 위해 찾은 학전에서 그 한 사람의 존재가 온몸으로 느껴져 적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대학로를 좋아하는 것은 순전히 그 사람 때문이다. 간혹 대학로를 찾으면 그의 환대를 받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여기 어딘가에 사람 좋은 우리 형처럼 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푸근해졌다. 걷다 보면 어디에선가 그의 노래 ‘봉우리’ 도입부에서 들려주던 그 중저음의 부드럽고 진실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내가 살아온 시대에 대한 얘길 들려줄까?” 하며.
그 이름을 처음으로 안 4~50년 전부터 그는 슬퍼 보였다. 나보다 10살 많은 그는 목소리 때문인지 표정 때문인지 느릿느릿 걷고 천천히 말하는 노인의 이미지였다. 철이 들면서 무언가가 그의 젊음을 송두리채 앗아갔다는 것을 알았다. 젊어서도 어깰 펴는 대신에 노인네처럼 힘을 뺀 모습으로 살아야 했던 그 시절은 어디쯤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시절을 그는 수인(囚人)처럼 살았다. 그가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있는 것을 보며 우리 또한 자유를 잃고 엄혹한 통제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포로수용소나 교도소처럼 폭력, 위협, 공포가 환경인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의 삶이 그렇다고, 덫에 걸린 짐승처럼 그가 신음했다. 괜찮지 않다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고, 피아를 구분하지 못한 채 서로 싸워 죽어가고 있다고 벌거벗은 임금을 본 아이처럼 말했다. 사람은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이 아니냐고 그가 울음을 삼키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그의 노래가 광장에서 불려졌던 이유일 것이다. 그 깊이는 알지 못했으나 알게 해 주고, 보게 해 준 그에게 고마워했던 이유다. 그 덕분에 덜 폭력적이고, 덜 억압적이고, 덜 군사적이고, 덜 차갑고, 덜 딱딱한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자유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다. 반대로 조금 더 가난해도 더 살가운 눈빛으로 이웃을 돌아보며, 더 마음을 열고, 더 온기를 나누며 사는 것이 사람다운 일이라는 신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아침 이슬’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작은 연못’이 내게는 최고다. 그 짧은 노랫말에 담은 서사는 이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을 보게 하는 눈을 열어주었다. 맞아, 우리는 더불어 살고 있는 거지. ‘금관의 예수’를 부르면 어김없이 뜨거운 기운이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이유를 잘 몰랐다. 그는 언제 어떻게 그 깊은 곳까지 내려가본 것일까? 누가 데려간 것일까?
그가 노래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가 살아온 시대의 배경음악처럼 깔려있다. 나의 십대에도, 이십 대에도, 그리고 지금 60대에도. 자기 자리에서 뜨거운 피 흐르는 한 사람으로 살았던 그가 있어 참 좋았다. 많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계속 그렇게 곁에 있어줄 줄 알았던 그가 훌쩍 떠났다.
눈길 한 번 마주친 일 없는 한 사람의 부음을 듣는 타국땅, 비가 내린다. 허한 마음을 적시며 연 이틀째 비가 내린다. 누가 또 그처럼 이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줄 수 있을까? 누가 또 그처럼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래도 한번 살아보자, 그래도 함께 걸어보자, 그래도 함께 외쳐보자, 그래도 함께 꿈꿔보자고 말해줄까?
그물과 철조망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는 물처럼, 담장에 갇히지 않는 하늘의 구름처럼 그를 가둘 수 있는 권력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노래처럼 길고 암울한 시대를 진주 이슬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살다간 사람, 거치른 들판의 상록수처럼 살다간 사람, 그래서 그 시절을 함께 살아온 뭇사람들의 마음에 샛별이 된 사람이다.
빚진 마음으로 써보는 이름 김민기. 이 다음에 꼭 만나 고마운 마음 전해주고 싶은 사람 김민기. 노래로 삶으로 우리를 안아주었듯 아버지께서 그를 깊이 안아 주실 것이다. 또 존재만으로 위로자와 같고 표지판과 같은 사람들을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이 땅 곳곳에 세우고 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