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봉 일출
方 旻
어둠이 한줌씩 스멀스멀 옅어지는 산길. 시멘트 포장길로 사람들 발길이 하나 둘 이어진다.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발걸음이 향하는 곳. 새로 동이 트는 해를 맞이하는 정상, 그곳으로 가며 울리는 소리가 대기를 깨운다. 거친 숨이 한기와 나란히 귓불 곁을 파고든다. 촘촘한 그물처럼 둘러싼 한기를 헤쳐 가며 왜 이 길에 나서고 있는지 겨울잠에 빠져든 나무는 알까.
“봉우리 일곱 개, 사찰 세 곳, 굼부리 안에 자리한 연못, 5층 석탑 등, 원당봉은 볼거리가 많다.”라고 입구에 세워 놓은 “전국 유일의 삼첩 칠봉 원당봉” 안내판이 말한다. 제주시 동쪽 마을, 선사유적지와 검은 모래 해변으로 유명한 삼양동에서 마련한 이곳 해맞이 행사에 가는 길. 원당사와 불탑사로 가는 왼쪽을 버리고 오른편 비탈길로 접어든다.
십여 분 쯤 오르니 천태종 문강사에 이른다. 절 입구 마당에는 천막 여럿이 보이고 많은 사람이 오가며 웅성댄다. 고기 국수를 삶아내고 막걸리도 곁들인다. 기해년 새해의 소원을 적으며 차도 마실 수 있는 천막도 따로 있고, 추위를 몰아내기 위해 화톳불도 한 쪽에 피워놓았다. 신년 잔치 마당이 절간에서 벌어진다. 추위를 뚫고 올라온 훈김이 퍼지며 흥이 슬슬 한기와 자리바꿈 하느라 소란스럽다.
잔치 마당이 벌어진 절 오른 편으로 이어진 산길, 포도는 끝나고 걷기 좋게 멍석 길이 나타난다. 모자와 장갑으로 방한한 꼬마도 동참해 오르느라 아장대며 앞에 간다. 부지런한 패가 벌써 내려오는데 잠시 비켜서야 한다. 땀내 흥건한 숨을 몰아가며 숲속 길을 십여 분 오르니 사람들 옹기종기 동쪽 비탈길에 앉거나 서 있다. 정상의 좁다란 공간이 힘겨워 땀을 흘리느라 여기저기 김발이 오른다. 겨울 추위가 저 멀리 바다로 달아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일출을 보기 어렵다는 제주도 기상예보. 알면서도 적잖은 사람이 뿌옇게 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며 일출 시각을 기다린다. 첫날 태양을 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온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정녕 뻘겋고 큰 새 해가 그들 가슴에 떠오르지 않겠는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그 뒤에는 붉은 새 날의 해가 떠오른다는 걸 알리라. 무리 옆 자리를 비집고 잠깐 동쪽 하늘로 눈길을 보낸다.
제주도만 가버린 해 마지막 일몰도 역시 만날 수 없었다. 제주도에서 만난 무술년 끝자락과 기해년 첫발이 가슴에 파묻어둔 감정 봉우리에서 기웃한다. 퇴직한 첫 해라서 출발은 화려했다. 앞선 해에 마무리 못한 해파랑 길을 혼자서 완보하며 신나게 봄을 맞이했다. 백년만의 더위는 뒷산 계곡에서 아무도 모르게 바윗돌과 벗하며 씻어냈다. 가을엔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가 돌부리에 부딪혀 절룩이며 물러났다. 겨울은 갑작스레 전국 한파로 다가왔다.
한 해를 돌아보면 대한민국 촛불 정권의 성쇠를 닮았다. 연초에 치솟던 인기가 연말에 급전직하로 치달렸다. 쨍쨍 빛나던 하늘이 먹구름 온통 뒤덮인 어둠으로 바뀌는데 채 한 해가 걸리지 않았다. 국제 정세 또한 같은 길에 놓여 있다. 사회는 온통 부정적 어둠만이 가득 차있다. 꿈꾸던 새 나라도 나락으로 떨어지고 희망찬 사회도 앞길이 보이지 않게 걷어내야 할 암운이 여기저기 짙게 드리웠다.
원당봉에서 내려다보니 문강사에 밝힌 등불이 반짝이며 한풀씩 어둠을 밀쳐낸다. 봉우리 너머 태양은 가려있지만 구름 뒤에 분명 희망의 해는 빛난다. 헉헉대며 힘겹게 올라와 일출을 맞이하러 온 그들은 안다. 오늘 지나 내일이면 분명 구름 속 해님도 반갑게 얼굴 내밀 것이란 걸. 믿는 마음 두꺼운 옷 안에 담고 새해 첫날 여기 모인 거다. 더 붉고 큰 해를 맞이하러 걸음 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