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판단을 보류해야 할 때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좋은지 알 수 없는 때다. 내가 탄 배가 예상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 않는 때다. 사면이 캄캄한 흑암의 시간이다. 이 시간에 할 일은 입을 다무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다. 모든 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듣는 것이다.
욥은 입을 열었다. 이해할 만 하지만 그의 판단에 오류가 생겨하지 말아야 할 말을 많이 했다. 아는 척했던지 안다고 생각했던 지다. 친구들 앞에서 자존심 세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욥의 친구들이나 욥이나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가 답을 알고 있는가? 누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볼 수 있는가? 사탄과 내기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침묵할 줄 모르는 그에게 질문을 쏟아놓으셨다. "그래 네가 그렇게 잘 안다면, 대답해 보아라!" 친구들 앞에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하나도 없었다. 모른다고, 스스로 입을 막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흑암의 시간을 지날 때 입을 여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입을 열어 상한 마음에 아무 말이나 쏟아놓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주신 말씀이 아니면, 주신 부담이 아니면 침묵하는 것이 믿음이다. 자녀를 위하시는 아버지를 향한 신뢰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증명해 주실 것이다.
얼마 전, 일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느낀 일이 몇 차례 있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형편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느낌이었다. 불편했다. "여기까지인 것 같다."는 말이 거의 나올 뻔했다. 하지만 일단 판단을 보류하고 흑암과 같은 그 시간을 침묵하며 지내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바로 그 시간을 통해 내 삶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 물결 위의 종이배처럼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님께서 친히 모든 상황을 정리해 주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도 믿을 수 있었다. 다만 그 흐름을 따라가려면 내가 더 유연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로써 충분했다. 그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많은 것을 배우게 하시고 얻게 하셨다.
놀랍게도 그날 아침에 읽은 ‘회의하는 용기’(오스 기니스)는 이렇게 적고 있었다. “키잡이가 배를 조종하듯 주님은 저를 인도하고 계셨으나 다만 주님의 조타 경로가 제 이해를 벗어났을 뿐입니다.”(어거스틴) 오스왈드 챔버스는 말한다. “지금 당신 상황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흑암 중에 있는가? 그렇다면 가만히 있으라. 어둠 속에서 입을 열면 삐딱한 기분으로 말하게 된다. 흑암은 경청의 시간이다.”
내가 전날까지 시간을 보내면서 느꼈던 마음 그대로였다. 입을 열지 않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다.^^ 흑암이 경청의 시간임을 생생하게 배운 것으로 충분했다.
주님은 우리 배의 키잡이시다. 나의 상황이 마치 키도 노도 없었던 노아의 방주나, 마치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면서 탄 배처럼 광풍에 이리저리 떠다는 것 같아도 괜찮다. 키는 아버지께서 잡으셨으니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이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