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라인 / 문경희
들리는가. ‘스윙의 황제(sultans of swing)’라는 곳이야. 절망적인 궁핍, 누군가는 똥구녁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원색적인 말로 풀어 놓기도 하더구만. 아무튼, 그런 의미를 가진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데뷔 앨범이지.
깔리는 연주음에 귀를 기울여 보게.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까닥이거나 손가락 장단을 맞추고 있는지 않은가. 리더 격인 마크 노플러가 이 곳에서 선보인 핑거 피킹, 기존의 피크 대신 세 손가락을 사용하는 주법이 당시의 기타 애호가들 사이에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더군.
대학 2학년 때던가. 기타를 배웠어. 아니, 배웠다기보다 배울 뻔 했다는 게 맞겠네. 두어 달 교습을 받다가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으니. 저 그룹도 그때 알게 됐고. 예나 지금이나 예능 방면으론 영 젬병이라 소위 말하는 콩나물대가리는 준 것 없이도 괜스레 미운털을 박아 놓고 외면하던 터였지.
우연찮게 과 예비역 한 명이 아마추어 치고는 수준급의 기타리스트였어. 아지트 삼아 그가 운영하는 교습소를 들락거리게 됐지. 왜소한 체구에 그다지 호감이 가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기타를 부둥켜안은 채 때로 애절한 가락을 뜯고, 때로 격렬한 리듬을 타는 모습만은 꽤나 멋있었어. 단짝으로 붙어 다니던 친구와 의기투합을 한 거야. 저거 배우자.
힘든 세월을 겪어온 탓인지, 우리 사회는 딴따라니 무슨 쟁이니 해가며 예藝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데 참 인색했어. 의식주라는 일차적인 욕구가 해갈되지 않던 때니 결코 밥이 될 수 없던 예술이야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가진 자들의 호사스런 자기 과시의 수단 내지는 몇몇 속세를 등진 괴팍한 이들의 전유물쯤으로 치부되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나 역시 보통의 그렇고 그런 사고의 소유자였어. 없는 집 맏딸의 자리라는 게 필요 이상으로 과한 철딱서니가 들게 만드는지, 어린 마음에도 오늘은 비루하지만 내일은 결단코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지. 너나없이 아들, 아들 하던 시절. 열 달 동안의 기대를 저버리고도 당당하게 어머니의 문을 열고 나온 이 땅의 맏딸들에게 이름보다 먼저 붙여진 감투가 살림 밑천, 네 글자 아니던가. 말나온 김에 사족을 달자면, 그로인한 막연한 의무감 내지는 오기가 내겐 지금까지도 떨칠 수 없는 굴레 같은 거라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 기를 쓰고 공부했던 걸 보면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그 구절을 무척이나 신봉했던가 보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결과야 별반 신통치 않지만.
그러면서도 무의식중에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게 앙금처럼 갈앉아 있었나 봐. 들어 귀가 즐거운 호사는 꽤 많이 누렸거든. 더러는 종일을 음악에 파묻혀 있기도 했으니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영 아웃사이드만은 아니었어.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편도로는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만드는 이가 주체라면 보고 듣는 객체의 몫도 당연 존중을 받아야 마땅할 터. 누군가 혼신으로 선율을 만들어 냈다면 나또한 시간과 정열을 투자하여 언저리나마 기웃댔으니 음악사를 두고 절대무관하다 따돌림을 당할 노릇은 면했다고 나름 자부하네만. 궤변이려나.
이따금 멋들어진 곡조로 건반을 두드리거나 현을 켜는 이들을 보면 알 수 없는 통점들이 아릿하게 퉁겼어. 누구나 그러하듯 이 현실이라는 허방을 딛고 벌떼처럼 부산을 떨며 살아야겠지만 문득 주체 못할 고단함으로 막막해지는 순간, 등 비빌 언덕이 필요하리라 싶었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더라고.
일주일 단위로 만든 쥐꼬리만 한 용돈으로야 교통비에 점심 값 정도가 고작이었어. 쥐꼬리도 소꼬리인 양 감지덕지 받아 들어야 할 형편이었지만 말이야. 충만한 의욕에 태클을 거는 교습비가 문제더군. 요즘 아이들 식으로 해결을 하자면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아르바이트하는 걸 했겠지만 당시 내겐 그럴 만한 늘품이 없었어. 돈이라면 오직 부모님 호주머니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으니.
고작 찾은 방법이 뭔지 아는가. 설사 들통이 난다해도 나를 상대로 결코 법적인 실력행사를 하지 않으실 부모님을 상대로 사기를 친 거야. 말하자면 피 같은 가금家金을 횡령했다 할까. 무덤덤한 품성과 절대음감의 부재가 전부다시피한 내 감성주소에 비추어 볼 때 가능성이야 희박했지만,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는지 모른다는 말처럼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 한 내 재능이 음악일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추기면서 말이야.
어학원 등록을 빌미 삼았더니 빤한 형편에도 두말없이 거금을 내어 주시더군.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혀도 찍힌 줄을 모르면 아프지 않듯이 배은망덕은 짐작도 못한 채 외려 뿌듯해 하셨을 걸세. 경상도 말로 문디 콧구멍에 마늘을 빼 먹은 셈이지. 너나없이 허리가 휘던 시절, 대학생 둘에, 중학생 셋이 날마다 제비 새끼처럼 손을 벌리던 우리 집 경제 사정이라는 것도 ‘다이어 스트레이츠’ 별반 다르지 않았거든.
얼마 후, 비상금을 털어 기타도 사고 교본도 샀어. 그때 산 기타가 결혼 후에도 한동안 먼지 앉은 이십대의 비망록처럼 친정에서 굴러다니는 걸 보기는 했지만 지금은 행방이 묘연하다네. 내 젊은 날이 그러하듯이 어느 결엔가 세월로 화형 되어 불티처럼 산산이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지 싶네. 더러는 회한이어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매정한 속성을 허물처럼 벗어 놓은 채.
해보자고 불쑥 덤볐다가 끝을 못 본 일들이 기타뿐이겠는가. 살다보니 기쁨보다 슬픔의 문양이 더 아름답더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 역시 내가 거머쥔 것보다 그 반대편의 것들이 가슴으로 더욱 선연해. 그렇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미완이라는 말은 아직 진행형이란 말과 동의어더라고 사死화산이 아니라 휴休화산이란 말이지. 이따금 꿈틀꿈틀 해묵은 기억을 들추는 바람에 내 안으로 남모르는 장마전선이 지나기는 하지만 언제든 나를 박차고 나올 뒷심을 다지고 있는 중이라 여기면 못 견딜 바도 아니야.
‘인생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 때로 데드라인이 필요하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더군. 갑작스레 시한부의 선고를 받은 주인공 에드워드와 카터가 죽음이라는 거룩한 종말 앞에서 비로소 순정한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내용이었어. 벼르기만 하다가 종영을 앞두고서 부리나케 달려간 심야영화관에서 횡재처럼 건진 이 구절은 몸도, 마음도 타성으로 굼떠 있던 나를 위한 전언이었네. 무엇의 무엇을 벗고 자연인 내가 되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나하나 실행해 옮기는 모습이야말로 물살을 거스르는 연어의 회귀처럼 더러는 경건하고, 더러는 아름다운 마지막 자기애의 구현이라 싶더군.
극장을 나서며 곰곰 나를 되짚어 봤지. 이름 석 자를 치장하는 그럴듯한 꼬리표도 매력적이지만 인생의 저물녘에 속절없이 바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 이쯤에서 나도 데드라인을 긋고 부지런을 떨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더군. 관객을 향한 영화의 노림수도 그런 경각심이 아니었을까.
진정한 버킷리스트는 결국 나를 울려나오는 소리일 게야. 내 안에 있지만 실상 산다는 변명으로 내게서 멀어 있던 나에게 더 진중해질 일이네. 나는 법을 잊어버린 타조처럼,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영영 놓쳐버리기 전에 말이야. 혼자만의 밥상일수록 성찬처럼 차리고 경건하게 수저를 든다는 친구가 새삼 대단해 보여.
귓전을 울리던 노래가 한 마리 파충류처럼 길게 내 안을 빠져나가는군. 살아 펄펄하던 청춘의 야성이야 되돌릴 수 없다 해도 만성빈혈을 앓는 오늘에 더운 피를 적잖이 채워준 것 같으이. 예술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의 위력인가 보네. 조율된 기타 줄처럼 내 안을 지지하는 실핏줄들이 팽팽해지는 기분이야. 세상 어떤 곡조라도 명곡으로 뽑아 올릴 수 있을 것 같아. 듬성듬성, 더러 건너뛰었던 삶의 공란으로 슬며시 만선의 욕심을 내게 되는군.
배수진을 치네, 살아 숨 쉬는 오늘이 바로 데드라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