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클로스냐, 예수 그리스도냐?
크리스마스 계절이 다가오면,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아리송해진다. 교회들마다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위해 매우 분주한 모습들을 보게 된다. 마치 크리스마스란 선물을 주고받는 날인 것처럼 생각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산타클로스를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크리스트 킨들(Christkindl)'로 알려져 있는데, 이 말은 'Christ Child'라는 말이다. 즉 '그리스도 아이'라는 말인데, 이는 '아기 예수'라는 뜻이다. 이 말이 나라마다 'Jesus boy', 'Little Jesus', 'God child' 등의 뜻으로 불려졌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예수님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Christkindl, Christkind, Christkindel 등으로 쓰이는데, 등에 천사의 날개가 있는 금발의 크리스 크링글(Kris Kringle)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아이들에게 몰래 선물을 나누어주는 존재로 산타클로스와는 처음에는 다른 존재였으나 현재는 산타클로스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아기 예수'라는 단어가 '산타클로스'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고 느껴야만 한다. 사실 기독교에서는 아기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사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는 분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만 되면 교회마다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 우리는 무언지 모르지만 속고있고, 속아 온 것이다. 그 속임이 과연 무엇일까?
성탄절이 다가오면, 많은 교회에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성극을 준비하고 크리스마스송을 준비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에는 이세상에 오신 성인 예수님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을 찬송하며 기념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엇이 살짝 끼어들어간 것이다. 마귀가 가라지를 뿌린 것처럼 마귀는 크리스마스를 살짝 변질시켜버렸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지키되 그 주인공의 형태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변형시킨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인간의 보호가 필요한 아기 예수님으로 바꿔치기 했고, 또한 '아기 예수'라는 말을 산타클로스라는 뜻으로 사용하도록 해 놓은 것이다. 결국 교회에서 '아기 예수'를 기념하는 행위는 산타클로스를 기념하고 있는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라고 하지 않으셨고, 오직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라고 하신 것일까?
영어로 'Old Nick'이란 말은 마귀(the Devil)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산타클로스를 우리는 'Old St. Nick'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마귀에게 'St.'라는 말을 붙였다고 해서 '성스러운 마귀'라는 말이 성립될까? 그런데도 세상에서는 마귀에게 'St.'라는 말을 붙여놓고 그것이 예수님을 대신하는 선한 존재처럼 크리스마스가 올 때마다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단처럼...(고후 11:14). 그 동안 우리는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그럴듯하게 잘도 속아왔다.
몇년 전에 우리 아이들에게 산타가 왜 적그리스도인지를 설명해주었다. 그랬더니 우리 아들이 "엄마! 산타의 스펠링의 순서를 바꾸면 사탄이 되네요?"라며 종이에 적어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니까 산타(Santa)라는 영어 단어에서 n을 뒤로 보내면 사탄(Satan)이라는 단어가 만들어 지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그것을 지적한 아들이 대견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기독교에 있어서 우연이란 없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있는 산타클로스야말로 적그리스도이며 사탄인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인가? 적(anti-)이라는 말은 두 가지의 뜻을 갖고있다. 첫째로 '~에 반대(대적)하여'(against)라는 뜻과 둘째로 '~을 대신하여'(instead of)라는 두가지 의미를 모두 갖고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적그리스도는 이교도들이나 무신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방하여(예수님처럼=빛처럼) 예수님 자리에 대신 앉아있지만, 그러나 그의 행위의 결과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산타클로스가 예수님의 자리에 앉아서 예수님을 대적하고 있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몇가지만 살펴보자.
(1) 전지(全知, Omniscience), 전능(全能, Omnipotence)
캐롤 중에 "울면 안돼. 올면 안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요"라는 노래가 있다. 이것은 산타클로스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행실을 모두 보고 알기 때문에 선물을 준다는 말이며 또한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하룻밤에 선물을 나누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만이 '전지전능'하신데, 산타 역시 전지전능하다는 말이다.
(2) 무소부재(無所不在) 및 편재(遍在, Omnipresence)
산타는 하루밤에 세상에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느 곳에나 계시는' 즉 하나님의 '편재성'을 말하는 것이다.
(3) 영원성(永遠性, eternity)과 불변성(不變性, immutability)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올 때마다 산타는 변함없이 아이들을 찾아온다. 이는 영원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말하는 것이다.
(4) 그의 오는 때를 알 수 없다
예수님의 재림은 예수님도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지만 그 때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처럼, 산타클로스가 오는 시간도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깨어있으라고 명령하셨듯이, 아이들도 깨어서 산타클로스를 보려고 기다리지만 결국 보지 못하고 잠이 든다.
(5) 북쪽에 거함
성경에서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을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산"(시 48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성막에서 번제물을 드릴 때에도 북쪽 하나님 앞에서 행했다. "그가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레 1:11).
반면에 루시퍼가 반역할 때에도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3-14)라며 북쪽을 언급하는 것처럼 산타클로스도 북쪽에 살며 썰매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온다고 한다.
(6) 심판자
산타는 아이들의 잘잘못을 따져서 선물을 준다. 즉 이세상의 재판관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신데, 산타가 그 일을 하고있는 것이다.
(7) 하얀 머리털
요한계시록 1장14절을 보면, 예수님의 머리털은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산타의 머리털 역시 흰 양털같고 눈처럼 하얗다.
(8) 각양 좋은 선물을 나누어준다
야고보서 1장17절을 보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선물을 값없이 나누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그 일을 산타가 하고 있다.
(9) 어른들이 자기 아이를 데리고 온다
누가복음 18장15절에는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즉 어른들이 자기 아이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듯이, 오늘날에는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산타클로스 앞으로 데려오고 있다. 그리고 산타클로스를 믿게 만든다.
(10) 믿으면 선물을 받는다
예수를 믿으면 영생이라는 구원을 선물받듯이, 산타클로스가 있다는 것을 믿으면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받는다. 교회에 다니는 부모조차 세상과 함께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끊임없이 가르치며 믿게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산타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받기 위해 착한 일을 행한다. 결국 교회에서도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의 복장을 한 산타가 나타나서 부모가 준비한 선물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린 자녀에게 참된 선물인 영생이 아닌 일시적인 거짓 선물과 거짓 산타를 믿게 한 결과가 무엇일까? 아이들은 조금만 자라면 부모가 선물을 사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선물을 받기 위해 거짓인 줄 알면서 산타클로스를 믿는 척 한다.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에게 믿음이란 별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 역시 산타에게 선물을 받기 위해 했던 것처럼 교회에 나가서 믿는 척(?) 한다. 따라서 영생이나 구원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 그저 삶 속에서 복받고 잘 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의 대부분은 무엇을 구하는 기도이며 자기의 삶을 바치려고 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왜 우리는 선물을 주고받아야만 할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교회에서도 그날만 되면 선물교환을 한다면서 성가대원들에게,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각 선교회별로 얼마짜리 선물을 사갖고 오라고 광고를 한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다른 핑계를 대고 그 모임에 빠진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혜가 없는 이들은 그들이 왜 빠지는지를 모른채 빠진다고 오히려 뒤에서 욕을 한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게 있어서 파티에도 참석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욕까지 얻어먹는 날이 크리스마스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끼리 즐기라고 이땅에 오셨는가? 예수님은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자들을 위해 이땅에 오셨다. 그래서 천사들이 가장 먼저 그 기쁜 소식을 전해준 대상이 왕족이나 귀족들이 아닌 천대받는 목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이들이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과 반대의 길을 걸어가면서 예수님께서 오신 날을 기념하고 있다.
현재 성탄절이 되면 교회 안에서 가난한 이들이 더욱 소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들은 선물교환을 해야한다며 부모에게 돈을 달라고 조르고, 돈이 없는 부모는 그러한 아이들에게 돈이 어디있느냐며 화를 내므로 집에서 뛰쳐나가서 탈선하게 하는 계절이 크리스마스이다.
왜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고받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남들이 다 하니까? 전통이니까? 그렇다면 선물교환을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받은 적이 몇 번이나 되는가?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받아서 처리하지 못한 적이 더 많지 않았는가? 12월만 되면 선물을 사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지는 않았는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쁨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의무감으로 없는 돈을 쪼개어 억지로 선물을 고르지는 않았는가? 성탄절에 행해지는 선물교환은 교회안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풍습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언제 예수님이 오신 날을 기념하라고 하신 적이 있는가? 없다.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그런 말씀은 없다. 그래서인지 예수님께서 언제 오셨는지에 대한 기록조차 찾아볼 수 없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라고 하셨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을 때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예수님은 잘사는 사람들과 파티를 즐기는 왕으로 이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죽으러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랑을 받거나 축하를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배신을 당하고 고난과 핍박을 당하며 죽기위해 오셨다.
성경에는 없지만 교회에서 성탄절을 지키는 이유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그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이 이땅에 오신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첫사랑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비록 크리스마스는 세상 풍속의 하나가 되었으나 교회만큼은 세상과 다른 성탄절을 맞이하며 보내야 한다.
크리스마스가 예수님께서 오신 날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날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을 한다. 그래서 필자는 성경을 보며 연구를 해보았다. 성경에 예수님의 태어나신 때를 정확히 기록하지 않지만, 대강 추정해 볼 수 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은 6개월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언제 태어났는지를 조사해보면 쉽게 문제가 해결된다(눅 1:26).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었다. 역대상 24장에 보면 유대의 제사장은 약 2만명 정도가 되고, 아론의 후손들을 24반열로 나누어서 순번에 따라 일주일씩(안식일에서 안식일까지) 성전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하도록 했다. 모든 반열이 모두 함께 봉사하는 기간이 1년에 4주가 있는데(유월절, 칠칠절, 장막절), 그것을 제외하면 각 반열이 1년에 두번 성전 직무를 수행했다(24반열+2번+4번=52주).
사가랴가 속해있던 아비야 반열은 8번째 차례로, 성경에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첫째 달(니산월) 초부터 계산하면 제10주째 차례가 돌아온다. 그 사이에 유월절과 초막절에 모든 반열이 성전에서 직무했다. 따라서 이때가 셋째 달(시반월) 둘째 주가 된다. 그 시기에 성전 직무를 마치고 사가랴가 집에 돌아온 후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임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세례요한은 셋째 달(시반월) 셋째 주 경에 잉태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6개월 뒤인 아홉째 달(키슬레브 월- 태양력으로 12월)말에 잉태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상 임신기간인 280일이 지나면, 유대력으로 일곱째 달(티쉬리 월) 중순이 된다. 그 달 15일이 바로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 날에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것이라고 우리는 가정할 수 있다(단 이것은 사가랴가 성전 직무를 봄에 수행한 이후라는 전제하에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사가랴의 첫번째가 아닌 두번째 성전직무때 이루어졌다면, (24반열+10주+2번=36) 36주째 쯤에 해당된다. 그런데 그럴 경우에 아홉째 달(키슬레브 월) 둘째 주 경에 요한이 잉태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셋째 달(시반 월)에 잉태된 것이고 그럴 경우 12번째 달(아달월) 말경에 탄생하셨을 것이다.
유대인의 아달월은 태양력의 2-3월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양떼를 치는 시기는 4월에서 11월까지이다. 12월부터 3월까지는 비가 오는 '우기'이며 추워서 바깥에서 양을 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태어날 당시에 목자들이 밖에서 양을 치고 있었으므로 추운 2-3월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잉태한 날을 3월25일로 정하고 기념하는데(성모수태고지일), 이것은 12월 25일과 정확히 9개월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를 지키기 위해 정해주신 첫째 달(니산월)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으로 봄 즉 3-4월이 된다. 따라서 일곱 번째 달은 태양력의 9-10월경이 된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날, 베들레헴 들판에 아직 목자들이 양을 치고 있었던 것도 예수님이 유대 지방의 우기인 겨울에 태어나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12월25일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반면에 앞에서 언급한 계산이 맞는다면,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던 때가 바로 아홉 번째 달인 기슬레브 월(태양력 12월)말인데, 이때가 바로 유다 마카비가 시리아 팔레스틴 왕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헬라인들이 우상과 돼지와 돼지피로 더럽혔던 성전을 다시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수전절인 하누카(חנוכה)이다. 이 날을 "빛의 절기"라고도 부른다.
"빛의 절기"인 하누카는 키슬레브월 25일부터 8일간 축제를 갖는다. 이를 태양력으로 하면 12월 하순으로 크리스마스와 거의 비슷한 시기이다. 따라서 오늘의 성탄절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잉태되신 날을 축하하는 셈이다.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것이 바로 이세상에 오신 날이다. 한국 사람들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도 나이로 계수해서 태어나자마자 1살로 계산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 아닌, 예수께서 이 세상에 성령으로 마리아의 태 안에 첫 발을 디디신 날이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이다(앞의 계산이 맞는다면...).
하누카는 빛의 축제일인데, 이 세상에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빛의 축제의 날에 잉태되셨다는 것이 우연일까? 예수께서 하누카에 잉태되셨다면, 이세상에 태어나신 날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초막절(수장절)이다. 그렇다면 참 빛이신 예수님은 ‘빛의 축제날’인 하누카에 잉태되어 ‘마지막 심판날’을 의미하는 ‘초막절’에 태어나심으로 애굽을 상징하는 마귀로부터 구원하는 구원주로, 그리고 마지막 추수때 심판하실 심판 주로 이세상에 오셨음을 확실히 보여주신 것이다(초막절은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원하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돌보심을 감사하는 절기이며, 또한 수장절이라고도 해서 곡식을 추수하여 저장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이다).
초막절(장막절)의 특별한 점은 8일간을 초막절로 지키면서 첫날과 마지막 8일에 거룩한 성회를 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안식일로 섬긴다는 것이다 이때는 이스라엘의 기후가 바뀌는 때였다. 이른 비가 와서 씨를 뿌리고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만약 몇 주간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다음 해에 심각한 가뭄에 들 수 있다. 그래서 장막절 7일째 날에는 “비를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 물을 붓는 행사를 하는데, 이 기도는 1년 중 최고의 행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알맞게 주셔야 그들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장막절의 6일간은 은나팔을 3번만 불지만, 마지막날은 3번씩 7번을 분다. 또 첫 6일간은 제사장들이 제단을 한 번 돌지만, 마지막날은 제단 주위를 일곱번 돈다. 이들은 제단을 돌면서 시편 118편25절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를 부른다. 그러면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다. 그래서 이 날을 호산나 라바(Hosanah Rabah) 또는 그레이트 호산나Great Hosanah)라고 부른다. 시편 118편은 메시야적 시편으로 메시야를 강조하는 축제때 쓰여진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 것을 볼 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가 될 것이다(마 21:8-9, 눅 19:38, 요 12:13, 계 7:9-10).
그런데 요한복음 7장 37-38절을 보면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라고 하셨다. 이것은 초막절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비를 구하는 기도”를 하며 물을 붓는 그들에게 예수께서 "내가 너희들이 기도하며 그렇게 갈망하는 메시야이며, 너희를 구원할 생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7장과 8장을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기 위해 장막절 마지막 날에 감람산에 오신 장면이 나온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할 때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며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라고 말씀하셨고, 그 다음날 또 다시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라고 말씀하신 뒤 소경의 눈을 고쳐서 빛을 보게 해주셨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이유는 참빛이심을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나서 '수전절' 즉 '빛의 축제일'인 하누카에 참빛이신 예수께서 그 절기를 지키러 성전에 오셨던 것이다(요 10:22).
그러므로 우리가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기슬레브월(12월) 25일인 '빛의 축제일'이 예수께서 이땅에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신 날이며, 마지막 심판날을 상징하는 '장막절'에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심으로(초림) 예수님께서 재림때 심판주로 이땅에 오실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아닐까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탄절의 날짜에 얽매여서 지켜야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하면서 옥신각신할 시간에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다시오실 것을 기념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세상과 똑같이 파티속에서 성탄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오신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경건하게 행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대신하여 그 자리에 앉아있는 산타클로스를 교회에서 완전히 추방해야 할 것이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낼 때, 산타클로스나 루돌프 사슴이 그려진 카드를 결코 사지 말도록 하며, 크리스마스 행사를 할 때에 산타클로스의 빨간 모자를 쓰지 말아야 할 것이며, 크리스마스 노래 중에서 산타가 들어간 캐롤은 부르지 못하도록 하며, 또한 우리 자녀들에게 산타클로스는 거짓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우리집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 선물을 드리는 날이지 우리가 선물을 받는 날이 아니라고 가르쳐왔기 때문에 우리집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지 않는다. 교회에서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이 추억거리도 없이 엄마가 너무 현실적이라서 불쌍하다며 선물을 사주기도 했지만, 나는 오히려 어른들의 거짓말에 속아서 크리스마스만 되면 예수님보다 선물을 바라게 만드는 부모들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더욱 불쌍하기만 하다.
지금 선택하라. 산타클로스와 그의 일시적인 가짜 선물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와 영생의 선물인가?
김 수 경
첫댓글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느니라. 요한 복음 1:18절 말씀 성탄의 참된 의미를 생각하며 십자가상의 주님과 부활과 다시 오심을 묵상하는 복된 시간을 소망합니다..
응주 오빠!
항상 은혜를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주님안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탄절을 보내시기를 기도드려요.
Merry Christmas!
샬롬! 어제는 성탄예배시간 헨델의 메시아를 합창(난 베이스)하고, 가족들과 예배를 드리고, 가족들과 크리스쳔 작가의 미술을 감상하고...울 동생목사님 말씀에 깊이가 있어요. 주님께서 더욱 귀하게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통해 더욱 넘치는 삶을 오늘도 간구합니다.
아멘!
저도 오늘 성탄 예배를 잘 드리고, 어제 반나절동안 남편과 아들이 터어키(칠면조)를 구워서 오늘 점심에 교인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어요. 지난 추수감사절에 터어키를 구웠는데, 처음 먹는 학생이 너무 맛있어해서 크리스마스때 한 번 더 구워주겠다고 했었거든요
전하는 말씀에 깊이가 있다보니(저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요~^^)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분들만 은혜를 받는 것 같아요.
은혜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믿어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깊이와 높이를 깨달을 수 있고 말씀을 통해 더욱 믿음의 고백이 나오니까요
오늘 복된 시간을 보내셨네요~^^
주님 안에서 항상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