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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서양에 유학하면서 보고 들었던 바를 기록했다는 의미를 지닌 <서유견문(西遊見聞)>은 유길준(1856~1914)이 1889년에 탈고한 저작이다. 당대 지식인들이 사용하던 전형적인 한문 문장에서 벗어나, 한글과 한문을 우리말의 문장 형식으로 기술한 이른바 국한문혼용체(國漢文混用體)로 작성된 저서이다. 비록 한자를 활용하고 있지만, 한문이 아닌 우리말의 어순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내용 가운데 가능한 표현은 모두 한자로 표기하고 있다는 점이 일견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당대 지식인들에게 한문이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우리말의 어순을 좇아 국한문을 혼용하여 저술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고 여겨진다.
19세기 말에 이르면 서양의 문물이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서양의 발달된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른바 ‘개화(開化)’라는 관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당시 일본이 일찍부터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기술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문화가 발달되었다고 여겨졌기에, 이른바 ‘개화사상’이란 일본에 치우친 의식을 보이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개화(開化)’라는 개념은 상대적으로 당시의 조선이 ‘미개(未開)’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를 역사의 시대구분에서 일반명사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당시 활동하던 지식인들에게 '개화'를 지향하는 관념이 지배적이었을지라도, 이제부터라도 미개라는 개념을 상대적으로 전제한 ‘개화기’나 몽매 혹은 야만의 상대어인 애국'계몽'기와 같은 표현을 우리 역사의 시대 구분 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유길준은 26살(1881)에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그곳에서 유학생활을 한 바 있었으며, 1883년에는 민영익이 이끄는 보빙사의 수행원 자격으로 미국으로 떠나 그곳에서 유학생으로 남게 되었다. 다음 해에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오기로 결심하였으며, 이후 유길준은 약 1년 동안 유럽 각지를 유람하다고 귀국했다. 따라서 이 책은 그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얻은 정보들과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서 보고 들었던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라고 하겠다. 실상 그동안 이 책이 국한문혼용체로 작성되었다는 문체적인 특징을 강조한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살펴본 것은 이 책을 통해서였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서, 서양과 세계 각국에 대한 정보가 미약하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저자인 유길준이 알리고자 했던 정보와 그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전체 20편으로 구성된 목차에서, 가장 먼저 1편에서는 ‘지구세계의 개론’과 세계를 구성하는 대륙의 분포 및 세계의 나라 그리고 ‘세계의 산’ 등에 관해 소개하고 있다. 이어지는 2편에서는 지구에 존재하는 바다와 강 및 호수 등의 지형을 소개하고, ‘세계의 인종’과 ‘세계의 물산’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세계는 이웃 중국(청나라)과 일본 및 주변국들을 포함하는 범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유학과 유럽을 견문한 유길준으로서는 ‘더 넒은 세계’가 엄연하게 존재한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여겨졌고, 그러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어서 ‘나라의 권리’와 ‘국민의 교육’을 내용으로 하는 3편이 소개되고, ‘국민의 권리’(4편)나 정부의 구성과 공직자의 직분에 대해서 5~6편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에게는 이러한 정보들이 당시 왕이 통치하던 조선의 문화와는 구별되는 면모라고 파악되었을 것이다.
그밖에 다양한 주제와 분야로 구분하여 국가를 구성하는 체제와 필요한 시설 등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각각의 기구가 지닌 역할과 의미를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에 위치한 19~20장에서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 각국의 도시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아마도 유길준이 1년 동안 견문하였던 유럽 도시에 대한 정보를 꼼꼼하게 수집한 결과라 파악된다. 흥미롭게 여겨졌던 내용은 세계 각국에 대한 정치를 논하면서, 정해진 기간에 선거를 치러 대표자를 교체하는 선거제도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5편에 포함된 ‘정부의 종류’라는 항목에서, ‘임금이 명령하는 정치 체제’와 ‘임금과 국민이 함께 다스리는 정치 체제’ 그리고 ‘국민들이 함께 다스리는 정치 체제’로 구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국민들이 함께 다스리는 정치 체제’에 대해서는 ‘지리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겠다.’라는 간략한 내용만이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아마도 왕정 체제인 조선에서 성장했던 유길준으로서는 국가의 대표자를 선거를 통해서 교체한다는 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이거나, 혹은 그러한 내용인 자칫 독자들에게 불온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라고 이해된다. 현 시점에서 이 책의 내용은 이미 지나간 시대의 낡은 정보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이 책이 저술되었던 당시에는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을 것으로 짐작된다. 비록 원문은 아니지만, 번역본으로라도 <시유견문>의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울러 어떤 책이라도 단순한 내용을 파악하는데 머무르지 말고, 책의 저술 동기와 저자의 삶 그리고 시대 상황에 대한 정보가 더해진다면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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