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국제기구인 'UNODC'(유엔마약범죄사무소,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 데이터 포털의 '부패 및 경제 범죄' 카테고리에서 각국의 '사기(Fraud)범죄 발생 건수'를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정의한 사기란 '금전 등의 이익을 얻거나 기만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 부정한 행위(Obtaining money or other benefit, or evading a liability through deceit or dishonest conduct)다.
2020년 기준 OECD 가입국가(38개국) 중 한국을 비롯해 미국, 체코,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튀르키예, 영국, 이스라엘 등 8개 국가의 데이터는 없었다. 이들 국가를 제외하고 30개국 중 국민 10만 명당 사기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한 국가는 2762건의 스웨덴이다. 인구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 발생 건수로는 독일이 80만8074건으로 가장 많았다. 원데이터 출처는 UN의 '범죄 동향 및 형사 사법 시스템 국가 조사(United Nations Crime Trends Survey)다.
|
UNODC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8개 국가를 제외한 30개국 중 사기 범죄 건수가 가장 많은 국가는 독일이다. /UNODC 데이터 포털 누리집 |
대검찰청 발생통계원표에 따르면 한국의 2020년 사기범죄 발생건수는 35만3657건이다. △독일 80만8074건 △스페인(36만551건)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인구 10만 명당으로 환산하면 한국은 682.2건으로, △스웨덴(2762.1) △독일(964.4) △덴마크(929.9) △핀란드(850.6) △벨기에(806.8) △스페인(771.1)이 우리나라보다 수치가 높다.
각국마다 범죄통계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시스템, 범죄의 구성요건이 다르기 때문에 살인을 제외한 범죄 수치의 단순 비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특히 고소·고발 체계가 발달한 한국의 사법 환경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서준배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사기 범죄 증가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고 전 세계적인 추세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거의 시기가 맞물리는데, 스마트폰으로 범죄자들의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불특정 다수·다중 피해 사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핀테크 등 금융 기술이 발달해 있고, (상대적으로) 고소·고발 제도가 확립이 잘 돼 있다. 미국은 사기당했다고 경찰관이 고소장 안 받아준다. 일본 경찰도 개인 간 채권 채무는 아예 접수를 안 시켜준다. 모두 민사적으로 해결한다"고 했다.
|
국내 형사 범죄 중 '사기 범죄' 비중은 1위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금융기술 및 고소고발 체계 확립 발달 등 한국만의 특수한 환경이 이유로 꼽힌다. /형사정책연구원 |
종합하면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 사기 범죄율 1위'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국내 형사범죄 가운데 '사기 범죄' 발생 비율이 가장 높다는 점은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원구원이 지난 4월 21일 발표한 '2022년 4분기 범죄동향 리포트'에 따르면 2022년 4분기 발생한 전체범죄는 41만4708건이다. 발생건수가 가장 많은 범죄유형은 재산범죄(16만6928건)이고, 이중에서도 사기 발생 건수(8만380건, 전체의 약 19%)가 가장 많았다. 이어 △절도(5만2570건) △횡령(1만7377건) △손괴(1만5432건) △배임(1105건) △장물(64건)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 한 해 사기범죄 발생 건수는 33만390건이었다.
신·변종 사기 수법이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이에 따른 국민 피해가 심각해지면서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8월 '사기방지 기본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사기 범죄 예방에 초점을 두고 사기범죄 정보 수집, 분석 및 제공을 위한 사기정보분석원 설치, 특정사기범죄 행위자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 특정사기범죄 수사 시 경찰의 위장수사 허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가는 사기 범죄 '예방'을 전담·대응하는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증가한 사기 범죄 유형은 과거처럼 지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못 갚는 식이 아니라 계획적인 악성(惡性) 사기 유형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분석, 대응하는 기관이 필수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사기 범죄는 바이러스 같아서 계속 수법이 바뀌기 때문에 현장 기관에서 요즘 유행하는 것들을 알려줘야 한다. 또 사후적인 고소만 하면 뭐 하겠나"라며 "실질적으로 지금 어떤 사기 범죄가 제일 유행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이 사기를 잘 당하는지 동향을 분석하는 사기 예방센터를 만드는 게 꼭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