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헌트 The Hunt⟫를 보고 나서 / 송 찬
며칠 전에 본 영화 ⟪더 헌트 The⟫의 여운이 짙다.
덴마크의 어느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루카스’의 이야기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들과 이웃의 좋은 친구들이 있고, 즐거운 직장에서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비록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과 떨어져 살게 되지만 이들이 자신과 함께 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양육권도 자신에게 오게 되었고, 직장에서 새로운 연인도 만나게 된다. 그런 그에게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바로 이웃집에 살고 있는 절친한 친구 ‘테오’의 딸 ‘클라라’ 때문이다.
어느 날 그가 일하고 있는 유치원의 원생인 클라라가 갑자기 루카스에게 다가와 입에 키스를 하고, 그의 옷 주머니에 고백 편지를 넣는다. 루카스는 클라라에게 입술 키스는 부모님께만 하는 거라고 말하고, 편지도 또래 남자아이에게 주라고 돌려준다. 상처를 받은 클라라는 그날 오후, 유치원 원장에게 루카스가 밉고 꼴 보기 싫다고 말한다. 원장이 왜 그러냐고 묻자, 루카스가 자신에게 성추행을 했다고 대답한다. 원장은 패닉에 휩싸이고, 당사자인 루카스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아린아이들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이를 경찰과 다른 이이들의 부모들에게 알린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어느 누구도 루카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루카스의 집 열쇠를 가지고 있을 만큼 절친한 친구인 ‘테오’까지도 딸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고 루카스를 외면한다. 평생을 사귀었던 친구들조차 그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다.
이후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소외되고 삶은 망가진다. 마을의 모든 상점에서는 루카스의 출입을 금지하고, 심지어 마을 사람들은 그가 키우던 강아지를 죽여 창가에 던지는 등 위협을 가하고 루카스를 집단 폭행하기까지 한다. 루카스는 마치 사냥터에서의 사냥감인 사슴과 같은 존재가 돼버린다. 나중에 경찰 조사에서 루카스는 혐의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지만 사람들은 한 번 판단한 내용을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루카스를 괴롭힌다.
영화는 철저하게 집단 내부에만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다. 루카스가 실제로 아동 성추행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의 진실 여부는 이 영화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루카스라는 한 개인이 이성을 잃은 집단의 사냥감이 된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주된 핵심은 루카스라는 인물이 어린아이의 작은 거짓말로 인해서 누명을 쓴 이후, 집단이 루카스에 대해서 가하는 폭력의 본질과 방식인 것이다. 영화 ⟨더 헌트⟩는 맹목적인 정의에 심취한 공동체 의식의 위험성과 더불어 그러한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개인의 초라함과 연약함을 입체적으로 조망해낸다.
나는 이 영하를 보고 나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공동체가 어떤 형식으로 존재하며,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공동체란 ‘나는 너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야’라는 동류의식을 통하여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삶의 안정감을 유지하는 관계이다. 과연 나는 어떤 공동체에 속하고 있는가.
주거 공간을 기준으로 하는 지역공동체가 나에겐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집에 새로 이사를 왔는데도 모를 때가 있으니 과거의 마을과 같은 공동체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은퇴하기 전, 36년 동안 경제활동을 하고 있을 때에는 직장 안의 동료들, 거래처의 사람들이 공동체와 유사한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활동이 끝나자 그 관계는 마치 신기루처럼 내게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오랫동안 속해 있던 직장이라는 공동체에서 영화의 주인공인 루카스처럼 한순간에 소외되어 버린 것이다. 비록 영화에서의 집단 따돌림과는 다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소속했던 집단에서 소외되는 개인의 초라함은 영화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어느 누구나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고도화와 도시화, 극도의 개인주의로 인한 치열한 경쟁사회 체제는 결과적으로 그 제도 자체가 사람을 사냥하는 집단적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 경쟁에서 낙오되는 도시의 노동자들이 영화에서의 루카스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이러한 현상이 이 사회를 불신의 병리적 사회로 만들고 있고, 많은 사람들을 소외계층화 시키며 개인을 우울이라는 병리적 상태로 내몰고 있다.
나도 역시 사회로부터 소외감과 우울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즈음 어떤 공동체에 속하여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면 나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이를 위해 몇 년 전부터 문학이라는 공동체에 발을 들여 놓고 있지만 이곳에서의 적응도 여의치 않아 고민이 많다. 아마도 궁극적인 해답은 도시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