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완주군 구이면) 모악산 입구에서 30분쯤 올라가면 대원사라는 절이 나온다. 거기까지만 올라가도 산에 든 기분이 든다. 강한 햇빛을 가려주는 오월의 푸른 단풍잎들이 가을보다도 더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산에 올 때마다 나무라는 존재가 고맙고 또 고맙다. 산에 나무가 없다면 산에 올 이유가 없을 것 같다. 가끔은 노역과도 같은 산행을 통해서 뭔가를 얻고자 산을 찾기도 하지만, 서너 시간 넘게 산을 타면서 한 그루의 나무도 만날 수 없다면 그보다 더 끔찍한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언제까지 산을 오를 수 있을까? 앞으로 십 년? 십 오년? 나는 내 수명보다도 산을 탈 수 있는 나이가 더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오늘 오른 모악산 정도라면 죽기 직전까지는 산을 오를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건 절대로 장담할 일은 아니다. 내가 염두에 두는 산은 지리산이다. 구례에서 성삼재까지 버스를 이용하면 쉽게 오를 수도 있지만 절에 가지 않으면서도 부당하게 절 입장료를 내야하는 것은 정말 싫다! 해서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두 발로 올라가는 노역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일단 올해는 6월 즈음에 한 번 도전을 해볼 요량이다. 누구랑 같이 갈까 하고 이계삼 선생님께 선거 후 근황도 궁금하여 넌지시 문자를 넣었더니 신고리 5,6호 투쟁 때문에 일정이 꽉차 있다고 가을 산행이나 함께 하잔다.
오늘 산행 1차 목적지는 대원사까지였다. 며칠 전에 산책하다가 다친 오른쪽 종아리 통증이 아직 가시지 않아 일단 대원사까지 가서 몸 상태를 점검해보기로 했는데 쉬엄쉬엄 올라가다보니 정상까지 가게 되었다. 정상에 닿기 전에 통증이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정말 내 예감대로 되었다. 금산사쪽으로 내려오는 제법 가파른 길에서도 종아리 통증은 물론이고 평소 느껴지던 무릎 통증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조심히 다루면 되는 일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산을 탈 수 있는 나이가 조금 더 연장이 될 것 같아서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다만, 내 몸과 마음 씀씀이가 조금 더 부드럽고 연해지면 될 터이다.
오늘 내 산행 도반은 4년 동안 같은 학교에서 근무한 중국계 영국인 원어민 알랙산드라다. 지금은 여천 모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고 나이는 아들과 동갑내기다. 가끔 아들 차를 이용할 때도 있는데 나보다 아들이 먼저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때도 있다. 전주로 이사 온 뒤에는 우리 집에도 놀러온 적이 있다. 평생 우정을 나누기로 했다. 내 영어구사능력의 팔할은 그녀와의 수다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달 전에 산행 약속을 잡아놓았는데 오월 광주문학제와 날짜가 겹쳐서 산행 대신 광주를 데려갈까 했었다. 하지만 함께 사는 루나(강아지 이름) 때문에 저녁 7시 전까지는 귀가해야한다고 해서 예정대로 산행을 한 것이었다.
전주역에서 만나기가 무섭게 오늘 아침에 쓴 졸시 '왼 발의 평화'를 영어로 해석해주면서 오래만에 만난 기쁨에 엄청 수다를 떨었다. 나중에는 최근에 읽은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지배자 담론까지 설명해주면서 열나게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영어로. 내 영어가 이렇게 많이 늘었나? 내 스스로 깜짝 놀라면서. 대원사에서는 잠깐 심각했다. 산행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내려가 구이 저수지를 산책할 것인지를 결정해야하는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이렇게 소리쳤다. 그리고 뒤이어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
"죽어도 고다."
"죽어도 고다?"
"렛츠고우 이븐 도우 우리 다이."
"아유 오케이?"
"먹고 죽자!"
"하하. 먹고 죽자!"
'먹고 죽자!'
이 비장한 구호는 순천 웃장 국밥집에서 막걸리를 마실 때 '치어스' 대신 사용한 건배사다. 전라도식 건배사인 "거시기 긍께"로도 많이 했지만 알랙산드라와 기간제 선생님이 함께 수업을 하다가 아이들 때문에 속이 상하거나 한 날은 어김없이 의기투합하여 국밥집으로 직행한 뒤에 그 비장한 건배사로 술을 한 잔씩 들이키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걷네야만 했던 날들이 많았지만 우리는 만나면 즐겁기만 했다. 오늘은 산을 내려와 금산사 입구 식당에서 오랜만에 파전에 막걸리를 한 잔 마시면서 건배사를 다시 이렇게 바꾸었다.
"먹고 살자!"
"먹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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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럽삼 ㅎㅎㅎ 진짜 거짓말 하나도 안 하고,,,, 저렇게 아름다운 짝꿍이 옆에 있는데 다람쥐도 있고 오를 수 있는 산도 있고.. 물도 먹고 뭣도 드시고, ㅋㅋㅋ 에휴 아롱아 다롱아 이리와 고마워 너희들이 옆에 있어서^^
앗 그리고 어제 ㅋㅋ 샘 시집 한 권 앗 산문집이었구나 ㅋㅋ 시집은 미용실 누나 줬응게. 술집에 저당 잡히고 왔습니다.... 돈 없다 대신 다음에 가져다 줄게 ㅋㅋ 이분 내 스승이닷 그러니 나 믿어랏 ㅋㅋㅋ 나 그런 놈입니다 ㅋㅋㅋ 하하 다 주고 이제 두 권 남았나 ㅋㅋㅋ 노래방엘 갔는데 그렇게 신랑이 항게 옆 손님이 너 배짱 좋구나 내가 한잔 살게 하시면서 한시간 술이랑 아가씨랑 공짜로 또 놀았습니다 ㅋㅋ 완전 대박이었습니다 아가씨랑은 서로 강아지 이야기 했습니다.. 그녀도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운데요 젠장 전번 못 따고 왔습니다 ㅋㅋ 오다가 길가에 개가 자고 있길래 귀여워서 한 번 만지려는데 그 놈이 제 손을 물었습니다..
지금 오른 손 세끼 손가락 하고 중간 손가락 엄청 아픕니다... 제가 어제 술먹고 잘 못한 것은 그 개에게 서운하다가 한 대 때린 것 밖에 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 하는 순수한 외로움 때문에 한 행동들일 것입니다....오늘 늦게 일어나서 억만금같은 고뇌가 밀려 오는데..... 어쩔 수 있나요 어제 일을 소설로 쓸 수 박에 ㅋㅋ 지금도 저 알딸딸한 것 같지라~~~샘 옆의 저 분이 세상에서 제일로 이뻐 보이는 거 보면 아직 술이 안 깼나 봐요 ㅋㅋ
그러고 보면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운 행동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을 때 그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인가봐요... 티비에 나오는 세상사람들이 이쁘다 하는 그 많은 여자들이 제겐 하나도 안 아름다워 보이는 거 보면.... 샘 옆의 저 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샘을 한 평생 달고 다녀 줘서 그런 것입니다 ㅋㅋㅋ 그게 아름다운 것이죠...........
샘은 산을 더 오르고 싶어서 아프시네요... 전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해서... 늘 사람들 앞에 부끄럽고 초라한 제가 없어 지는 것이 소원인데.............. 오늘도 안 죽고 이렇게 살아 있으니 참... 아프네요..지난 이년 동안 단 하루도 공친적 없는데 왜 이렇게 허전할까요... 제가 공쳤다는 것은 하루에 한 줄의 문장 한 줄의 글 한 줄의 소통... 매일 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살아 있는 자신을 항상 매 순간순간 인식하고 느끼고 그 무게를 감당하고... 그렇게 살았다는 것인데....
어제 만났던 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어요 처음간 포장마차 뚱뚱한 아줌마도 아름다웠고 제 옆에 있던 지난날 아시바일 함께 했던 형님도 아름다웠고.. 그 형님이 절 데리고간 그 카페의 누나도 아름다웠고.. 이차로 노래방 갔는데 사모님도 마지막에 우리가 돈 없다고 하자 경찰 불렀는데... 달려 온 어린 경찰 둘도 멋있고 아름다웠고,,, 그 사모도 아름다웠고.. 옆 방에서 달려 나온 아저씨 둘도 아름다웠고 그 곁에 있던 나이 지그시 드신 할머니도 아름다웠고.. 내 옆에서 강아지 사진 보여 주고 , 그리고 내 강아지들 이쁘다고 말 해 주던 그 아가씨도 참 아름다웠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미용실 누나 몰래 피시방 왔
는데 아마 그 누나 봤어도 또 일 안나갔어요 오늘 월세 줘야 하는 날인데 하며 다그쳐도 아름다울 것이고... 피시방 에 왔는데 지난 여름 이뻐 보였던 그녀도 여전히 아름답고... 오는 길 시장에 앉아 채소 팔던 아줌마들도 다 아름다운데.... 왜 전 이렇게 허전할까요... 부끄럽고...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까요...
앗 어제 길가의 강아지들 아닌 밤에 홍두깨라고 참 날벼락이었을 거네요... 지나가던 사람세끼가 왜 지랄이지 아 오늘 재수 뭐 붙었네 젠장 월 월!! 그 강아지들 어디 멍 안들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술이 왠수라는 게 이럴 때 나오는 말인갑죠.. 에휴.. 내일 살짝 가봐야징... 강아지들 잘 있는지 어쩐지....
그나 저나 샘 산문집이랑 사람의 깊이 책이랑 20만원에 저당 잡혔는데 에휴 그거 갚으려면 정말 내 등이 짠 내음을 안은 축축한 바다처럼 며칠이 되어야 하나 젠장!!! 술이 왠수닷!!
네 맘 이해한다. 네가 술에 의존하는 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거다. 부끄럽다는 감정은 나쁜 감정이 아니지만 너를 돌이킬 힘을 상실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 혼자만이 할 수 있는거다.그래도 마음으로나마 너를 응원하마. 힘 내거라. 사랑한다♡
먹고 죽자와 먹고 살자의 그 가운데 너무나 깊은 허방이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그 허방을 다 건너 먹고 죽자에서 먹고 살자로 넘어 오기까지... 나는 얼마나더 깊은 허방속을 허우적 거려야 할까요? 이 댓글 위에 저 댓글 잠겨서 안 보인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