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시장
장보기란 나에게 4지선다형 시험문제를 앞에 놓은 것과 같다. 정확한 답을 모를 때처럼 난감하다. 게다가 점포마다 같은 물건이 쌓여 있으니 오히려 헷갈린다. 오이 하나만 해도 한집에서 사고 보면 그 옆 가게 물건이 더 싱싱해 보이니 어쩌랴. 옆집 물건이 더 좋으니 물러달라고 하면 욕을 육두문자로 먹을 게 뻔하다. 그저 내 안목의 한심함을 탓할 수밖에.
장을 보러온 사람들은 걸음이 느리다. 천천히 양쪽 점포들을 둘러보다 흥정을 하는가 하면 그냥 주저앉아 물건을 이모저모 살피는 바람에 생각 없이 가다 보면 남의 아줌씨 엉덩이를 발로 찰 수가 있다. 저마다 캐리어를 끌거나 자전거로 통로를 누비니 어떨 때는 떠밀려 가느라 바쁘다.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는 내 꼴이 잘못하다가 야바위꾼의 표적이 될 것 같아 새삼 지갑을 움켜쥐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시장의 그 많은 상품들을 보면 숨어있던 탐심이 달팽이 촉수처럼 슬그머니 살아난다. 정신을 차려 밀어 넣지 않으면 쓰디쓴 후회를 맛볼 수밖에…. 그래서 생각지도 않던 물건을 쓸데없이 살 때도 더러 있다.
망원시장은 월드컵시장과 연이어 있다. 부근엔 서민들이 주로 산다. 큰비만 오면 물이 들어 살기 힘들었던 변방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새 유명해져 있다. 동네가 속칭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나. 물론 가까이 상암 월드컵 경기장이 생기고 공원, 언론사, 방송국들이 연이어 들어서서 덩달아 좋아졌겠지만 아무래도 시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 정확하게 방송국과 재래시장의 함수관계가 이 동네를 뜨게 만들었을 것이다. 요즘 방송의 아이템, 먹방을 눈여겨보면 알 수 있다. 접근이 용이한 재래시장이 방송국 근처에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좋은 일인 것 같다.
통로 양쪽으로 그만그만한 먹거리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코너.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긴 줄이 늘어선 가게도 있고 통행에 방해가 될 정도로 인파가 몰려서 있는 경우도 있다. ‘뭐야, 왜 그래?’ 놀라서 두리번거리다 보니 붉고 요란한 현수막이 눈에 띈다.
○○방송국에서 '맛집'으로 선정했다는 문구와 유명한 개그맨들의 얼굴이 보인다. 본 적은 별로 없지만 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 정도는 안다. 각 방송국에서 다투어 먹방 프로그램을찍었던 것 같다. 사실 비슷비슷한 성격의 방송이지만 여기에도 저기에도 그 가게들은 등장했을 것이다. 실제로 가끔 촬영용 카메라를 들고 오가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외국인들도 많이 보인다. 먹방에 출연한 한류스타 덕분에 망원시장도 소위 성지가 된 모양이다. 좁은 시장통에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그들의 손에는 종이컵이 들려있다. 마탕, 튀김, 순대, 고로케를 담아 한쪽에 서서 먹기도 하고 사서 들고 가기도 한다. 변방이라 생각했던 망원시장이 알려진 바람에 먼 곳에 사는 사람들도 그 먹거리를 맛보러 몰려와 줄을 선다는 것이다. 방송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고나 할까. 정작 주민인 나는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다.
‘텔레비전에 방영된 맛집'이라는 선전 문구를 요란하게 내건 식당을 찾을 때가 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으로 끝나곤 했다. 출연자들의 표정, 정말 기막힌 맛이라는 듯 깜박 넘어가는 모습은 어쩌면 연기였을까. 몇 번 실망하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별로 관심도 없지만 실망의 기억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방송을 보고 몰려든 사람들의 열정이 그저 놀라웠다. 소문난 ‘맛집’ 몇 집을 유유하게 지나쳐 내가 사러 가는 먹거리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시장 끄트머리에 자리한 떡집으로 보리개떡 서너 개를 사러 가는 길. 보리개떡은 그 집 밖에 없다. 우연히 먹어본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길고 긴 시장 통을 기꺼이 걸어 그 집을 찾아간다.
손바닥만 한 보리개떡은 연한 갈색에 아무렇게나 쥐었다 놓은 것처럼 투박한 모양새다. 그러나 쫄깃하면서도 조금 거친 식감에 구수한 냄새가 자꾸만 먹고 싶게 만든다. 맛이라고 할 것도 없다. 담백한 맛의 뒤끝에 약간의 달콤한 풍미가 감돈다. 질리지 않아 또 찾게 되는 보리개떡. 비교적 따뜻한 계절에만 맛볼 수 있다는 일이 좀 아쉽다.
방송에 나올 일도 없는 떡집 앞은 언제나 한산하다. 만일 내가 방송을 빌어, 아니면 SNS라는 매체를 통해 보리개떡을 알린다면, 이 집 앞에도 줄을 서려나, 아닐 것이다. ‘누가 그것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노릇, 보리개떡 보다 더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무슨 영향을 줄 것인가. 문득 지난봄의 냉면 열풍이 떠오른다.
첫댓글 아주 오래전 안흥 찐빵 원조 빵집 앞을 지나다가 옆지가 유명하니 찐빵을 사갖고 가자며 차를 세웠는데 줄이 어찌나 길게 늘어섰는지
제가 그냥 가자고 잡아 당겼어요
찐빵이 맛 있어봐야
서울 떡집 인절미보다 맛 있겠냐구요
ㅋㅋ나중에 안흥 찐빵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고속도로 휴게소 등 길거리 음식으로 지천이더라고요
저 입맛엔 별로 ㅋ
결국은 향수지요. ㅎㅎㅎ
망원시장, 방송에서 한 번쯤 본 것 같기도 하네요.
암튼 요즘은 먹거리 방송이 대세니~~
저도 망원시장 구경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매스컴의 영향이란 말할 필요가 없겠죠.
연한 갈색의 보리개떡, 예전 둘레길 걸을 때 준빠님이 밥알 묻은 것 쪄오셨던 기억도 나네요.
엄마가 빚어주시던 쫄깃거리는 추억의 맛!
한 번 시장나들이 해볼까요? ㅎㅎㅎ
망원시장이 합정역에서 먼가요?
지난 년말, 망원역 네온사인이 엄청나더군요. 방송국 탓인가? 젊은이들 거리 탓인가?
아무리 매스컴이 떠들어도 엄마표 개떡이 최고지요.ㅎㅎ
합정역에서 6호선 갈아타고 한 정거장입니다. 한 번 가지요?
그리고 경애샘도 이 방에 한 편 올려주셔요~ㅇ
@이복희 ㅎㅎㅎ새 글이 없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