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청 문화과
方 旻
종로구청 본관에서 떨어진 건물 4층에 문화과가 있다. 문화과 문을 열고 출판등록 하러 온 걸 말하자 담당 여직원이 필요한 서류를 내준다. 출판사명인 ‘에세이아카데미’를 써넣고 필요한 인적사항을 채워 사무실 임대차 계약서와 함께 건넨다. 정한 명칭이 기성 출판사와 중복되는지 자리로 가 알아보더니, 계약서를 돌려주며 신분증을 확인한다. 추후 처리가 끝나는 대로 문자메시지로 연락하겠으니 그때 와서 찾아가면 된다한다. 첫날의 문화과 방문은 무사하게 일을 끝낸다. 발걸음 가볍게 건물 문을 민다.
목요일 오후에 신청했는데 금요일에 등록증을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동시에 ‘민원에 대한 공무원 청렴도 설문’이 발송되니 답변해달라는 메시지도 딸렸다. 접속해보니 처리할 때 담당자 태도가 친절한지 여부와 금품을 요구했는지를 묻는 항목 두 개다. 아마도 민원 처리 사항을 통보하면서 자동으로 발송되는가 보다. 그날은 집에서 볼일이 있어 다음 주 월요일에 등록증을 찾으려 다시 그곳을 방문하였다. 종로구청장 직인이 찍힌 등록증과 출판 등록 관리 공문서와 2만7천원 면허세 고지서를 준다. 이제는 이곳을 따로 들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며 건물 밖 칼칼한 이른 봄 대기와 악수도 없이 작별하였다.
출판사등록증을 들고 사무실 근처 종로세무서로 갔다. 사업자 등록증을 내기 위해서는 출판사등록증과 사업장으로 사용할 건물임대차 계약서가 필요하다. 신청서와 함께 내민 서류를 검토하던 여직원이 계약서의 장소명과 출판사등록증의 장소명이 다르다고 한다. 종로구청 문화과에서 내준 것인데 다르다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미는 것을 보니, 계약서의 “오피스텔 월드”가 “오피스 월드”로 “텔”자 하나가 빠졌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글자가 한자라도 틀리면 안 된다 한다. 그냥 해주면 안 되느냐고 사정하니, 이왕 접수했으니 그 날짜로 사업자등록증은 발급하겠지만, 정확한 건물 명칭으로 수정한 출판사등록증을 재발급 받아서 다시 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에게 그런 사실을 통지할 테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다짐까지 재차 요구했다.
또 종로구청 문화과에 방문했다. 안 올 줄 알고 악수도 안 하고 건물 밖 대기와 헤어졌는데, 다시 가니 더욱 냉랭하게 외면한다. 한기가 옷섶을 파고들어 가슴팍 언저리에 머물며 떠나지 않으려 떼를 쓴다. 냉기를 품은 채, 담당 여직원한테 가서 잘못 기재한 사실을 확인하고 재발급을 요청했다. 그때 시각이 오후 4시경이라서, 당일로 발급받아 세무서까지 들려 일을 끌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녀는 등록증에 구청장 직인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은 안 되니 다음에 또 오라고 하면서 오늘은 그냥 돌아가란다. 바로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건물 밖 한기가 아직 떨어져나가지 않은 채고,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당신 실수 때문에 두 번 걸음한 나에게 보상 같은 게 없느냐고 말했다. 그녀 실수를 인정하고 정중하며 진정어린 사과를 바라는 셈이었다. 그녀가 빤히 쳐다보면서 보상을 어떻게 하느냐며 들릴 듯 말 듯 미안해요, 라고 말한 것처럼 들려 허망한 심정을 담아들고 문을 나섰다.
그날로 일을 마치지 못한 채 귀가하였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재발급한 것을 받을 때는 제대로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작심하였다. 다음 날 전화가 왔다. 처리가 끝났는데 우편으로 발송해주겠다고 했다. 사무실 나가는 길에 직접 들려 받는 게 빠른데, 쉬는 날이라서 그러라고 했다. 그 다음날 가서 확인하니 건물 우편함에도 없다. 혹시나 하여 건물 관리자에게 알아보아도 등기우편물은 본인이 수령해야 하는데, 어쨌든 받은 게 없다 한다. 그러고 하루가 또 지났다.
우편으로 보낸다는 연락을 받은 지 사흘째 되는 날 오후에도 우편물 소식은 없다. 문화과 여직원한테 전화하여 사정을 말했다. 확인해보고 연락해 왔는데, 광화문 우체국에서 등기우편물 접수는 했지만 발송에 관한 정보는 없으니 기다려 보란다. 여러 날이 늦어져 곤란하다 했더니, 어떤 것들이냐고 묻는다. 세무서에 가서 건물명을 고쳐 재발급한 것을 확인 받아야 하고, 그러면서 그 이후의 일 처리도 있는데 미뤄져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냐고 하면서 오늘 늦게라도 올지 모르니 기다리라고 하더니 전화를 끊는다. 그런데 무언가 허전한 바람이 사무실로 불어온다.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그랬구나, 느껴지는 게 있다.
그녀 자신에겐 사소한 실수지만 그 때문에 민원인 사업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또 불필요한 발걸음을 하게 한 수고로움과 심정적 불편함에 대해서 너무나 태연한 태도가 불러일으키는 불쾌함이다. 통화하면서, 재발급을 하게 되어 사업에 차질을 준 점에 대해서, 자신이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해 생긴 민원인의 수고에 대해서, 사과할 생각을 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유선 상으로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서 본의는 아니지만 죄송하다고 사과하면,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지요, 라고 나도 대응하고 불편한 심정을 봄바람에 살랑대며 흘러 보낼 텐데. 민원인의 불편한 심정에 대한 불감증이라도 있는 건가.
그러다가 사무실 복도에서 건너다보이는 파란집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속칭) 아저씨가 한 말이 봄날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떠오른다. 그곳에서 일하는 그들은 무슨 유전자가 없다고 했는데, 종로구청 문화과의 늘공(속칭, 직업공무원)인 이 여직원에게도 사과 발언할 유전자가 없어서 그럴지 모른다고. 종로구청과 가까운 촛불로 세든 그 건물에도 종로구청 문화과 여직원처럼 사과하는 유전자는 애당초 없어 보인다. 어쩌면 정녕 필요한 유전자를 제대로 갖춘 공무원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촛불은 꺼버리고, <토지>의 농민들처럼 횃불을 들어야할지도 모르겠다.
첫댓글 애쓰셨네요
유전자 결핍에 필요한게 뭐가 있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