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도둑 (외 1편)
안정혜
내 꽃은 그의 표적이 되었다
우체국에 들러 소포를 부치는 잠깐 동안
자전거 바구니에 실어둔 소국 한 묶음 훔쳐 가 버렸다
내가 산 한 다발 꽃을 안고 간 사람
제 것인 양 흠흠 꽃향기 맡으며 수줍고 빠른 걸음 걸어갔을 사람
빵도 아니고 은촛대도 아닌 꽃을 훔쳐 간
그는 누굴까?
도둑이 다녀간 빈 바구니엔 의혹의 꽃구름만 벙그렇다
어쩌면, 그이에겐
국화 피던 생울타릴 그리워하는 병든 노모가 계시거나
꽃 한 번 본 적 없는 아픈 아기가 있을 거라
그런 어여쁜 가족을 거느렸을 거라 생각해 본다
나는 쟈베르 경감처럼 조용히
소국 분실 사건을 덮어 버렸다
네모의 꿈
그가 부슬비 내리는 새벽길을 나선다
네모난 엘리베이터가
그를 잠시 가두었다가
세상에 다시 내어 주었으므로
한 손에는 네모난 가방을 들고 우산을 받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담배를 꺼내 문다
네모난 담뱃갑에서 나온 것이
뿌연 연기를 뿜어 낸다
어제는 비번이었고
오늘은 특근이지만 게의치 않는다. 다만
소망요양원이 좋다며 서둘러 들어가 누우신
그녀를 생각할 뿐이다
외벽부터 침구까지 모조리 새하얀
네모 안에서 그녀는
오른쪽 시상하부, 닫힌 기억의 방에서
애초의 네모를 굴리고 계시리라
네모 모양의 시내버스에 몸을 실어
네모 모양의 빌딩 앞에 내리자
친절하게도
네모난 엘리베이터가 그를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