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니다드의 장례식을 마쳤다. 만 69세의 일기였다. 10월 11일에 숨을 거두었으나 안장은 19일에 했으니 9일 장이었다. 빈소는 산마리노의 경계에 위치한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담 너머는 바나나와 망고나무가 우거진 녹지였다. 마을의 소란함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었고, 마당도 적당히 넓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가족들이 함께 지내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다이렐, 안래, 다닐로, 클라렌스는 매일 식구들과 더불어 예배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우울하고 슬픈 기색 대신에 가을 저녁 바람처럼 가볍고 정겨운 분위기가 빈소를 채운 이유였다. 모든 자녀들의 가정이 깨어지고, 손자들의 가정도 대책 없이 깨어지는 것을 평생 지켜본 그녀의 삶은 참으로 기구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집처럼, 마당처럼, 소파나 거실처럼, 깨어지고 상한 자녀들과 손자들과 증손자들의 좋은 환경이 되었다.
그녀의 죽음을 손녀딸인 클라렌스가 추모했다. "그녀는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아버지입니다. 그녀는 자매입니다. 그녀는 친구입니다. 그녀는 리더입니다. 그녀는 최고의 할머니입니다." 어떻게 할머니가 부모를 대신한 자리를 훌륭하게 지켜주셨는지에 대한 찬사요, 감사였다. 장지로 향하던 길에 다이렐과 클라렌스가 내 차를 탔다. 부모가 함께 있는 것을 본 기억 없이 자라온 친구들이다. 할머니의 돌봄에 대해 말하자 이내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를 필리핀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믿음의 여인으로 기억한다. 2011년 그녀 남편의 장례식에서 만난 이후 그녀가 보여준 할머니로서의 삶 때문이다. 자녀들이 깨트린 가정이라는 그릇을 버리는 대신에 말없이 모아 하나하나 붙인 여인이었다. 손자들이 깨트린 가정도 그녀의 손에서 다시 모아지고 붙여졌다. 말없이 그 깨어짐을 품에 안고 견뎌냈다. 버텨냈다.
그러나 그녀는 성경을 통독한 일도,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한 일도, 직분을 받아 봉사한 일도, 누군가를 전도한 일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 친구들을 사용하셔서 그녀에게 말씀을 공급하게 하신 것이 전부다. 내가 말했다. "하나님은 할머니를 통해 너희들의 육적이고 정서적인 필요를 채우게 하셨고, 하나님은 너희를 통해 그분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게 하신 것이 아닐까?"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 사이에 앉은 다를리도 ‘아멘!’으로 응답했다.
발인예배에서 나눈 말씀이 있다. 골로새서에 보낸 바울의 편지다.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골 4:15) 하나님께서 트리니다드의 집에 두신 그 교회를 우리는 보았다. 마치 폐허에 아름답게 자란 나무처럼 모든 풍광을 바꾸어 놓았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 아름다운 교회였다.
장례식을 지켜본 알렌이 홈페이지에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트리니다드 할머니의 삶은 자신의 자리에 서서 책임지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대한 그녀의 신실함을 통해 주님은 '그녀의 집 안에 있는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께 믿음을 가질 때 우리 집에도 그 교회가 있게 하시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