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역에서 지상으로 나오면 보통 차량의 물결이 와락 달려드는 큰 길이 나오기 십상이다.
하지만 6번 출구에서 나오면 맞닥뜨리는 막다른 좁은 골목길, 연전에 높은 건물이 들어서서 그나마 빵집이 먼저 반길 뿐.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동네 인근에서 달려온 자전거들만 즐비한 골목길이 차도를 떠받드는 옹벽아래로 이어진다.
소규모 아파트단지 주변은 오래된 나무들이 봄이면 꽃비를 내리기도 한다. 견고하고 높은 옹벽은
늘어선 자전거들이 깃들 약간의 공간만 허락할 뿐 한 치의 여유로움도 없다. 그래서 가끔 동네에서 그 좁은 도로를 이용하기
위해 들어선 승용차들이 달리지도 못해 빵빵거릴 때면 아파트 담쪽으로 바싹 붙어서기도 한다.
첫 번 째, 아니 두 번 째 길 모퉁이에서 얼른 골목을 벗어나 2차선 도로로 접어든다.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소실점을 보일 듯 멀리까지 냅다 달리는 도로는 한산하지만 중간중간 신호등이 허공에서 명멸한다.
소실점이라 여겨지는 그만큼에서 또 다른 거리가 이어진다는 것은 잘 알지만 나는 또 길모퉁이를 돌아야 한다.
그 전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멀리 던지며 숨을 고른다. 그 순간이 좋다. 빈 하늘, 막힘없는 시야, 양쪽으로 들어선
소박한 건물들.
저녁이 내리고 있는 집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하루의 피로를 잠시 내려놓고 한 줌의 평안을 맛본다.
돌아갈 집이 있는 내가 사는 동네, 가난하지도 않고 거드름도 피우지 않는 그 풍경을 즐기면서.....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시인의 아내처럼. 집으로 가는 길은 오래 무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