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에서 독바위라 일컬어지는 곳이 세 곳이 있다. 산청군 삼장면에 있는 산청 독 바위와 상북재에서 영신봉 사이에 있는 하동 독바위, 그리고 오늘 우리 회원들이 오른 함양 독바위가 있다. 그런데 그 규모나 아름다움 위용을 비교해 보면 함양 독바위가 단연 압권이다. 함양 독바위가 유명해 진 것은 1472년 사림학파의 거두 김종직 선생이 지리산을 등정하고 ‘유두류록’ 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기록에 의하면 함양 관아를 출발하여 함양 독바위를 둘러보고 첫날을 독바위 부근 고열암에서 첫날을 보내고, 성모사, 향적사, 영신사에서 숙박하고 백무동 쪽으로 하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두류록’에 기록된 함양 독바위 내용은 이렇다.
「신열암(新涅庵)을 찾으니, 중은 없고 역시 치솟은 벼랑을 지고 있으며, 암자 동북에 바위가 있는데, 이들이 독녀암(獨女巖)이며 다섯 가닥으로 나누어 서고 높이는 다 천여 자가 된다. 법종이 이르기를, “전설에, 한 부인이 바위 사이에 돌을 포개서 집을 만들고 홀로 그 가운데서 살며 도를 닦아 공중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이름이 되었다.” 한다. 쌓아놓은 돌이 아직도 있으며 잣나무가 바위 중턱에 나 있어 올라가려면 사다리 놓고 그 잣나무를 붙잡고 바위를 돌고 돌아 등과 배가 모두 뭉개진 연후에야 그 정상(頂上)에 도달한다. 그러나 목숨을 내거는 자가 아니면 올라갈 수가 없는데, 따라간 아전, 옥곤(玉崑)ㆍ용산(聳山)은 벌써 올라가서 발을 구르고 손을 휘두른다. 나는 일찍이 산기슭에 왕래할 때 바라보니, 이 바위가 뭇 봉우리와 더불어 함께 솟아서 하늘을 고일 듯하였는데, 지금 몸이 이곳에 와 앉았으니 모공(毛骨)이 송연하여 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점점 서쪽으로 돌아 나가서 고열암(古涅庵)에 당도하니, 해가 이미 저물었다. 의론대(議論臺)가 그 서쪽 멧뿌리에 있는데, 극기(克己) 등은 뒤에 처지고, 나만 홀로 세 반석에 막대를 짚고서니 향로봉(香爐峯)ㆍ미타봉(彌陀峯)이 다 다리 밑에 있어 보인다. 법공이 이르기를, “단애 아래 석굴(石窟)이 있어, 노숙(老宿)ㆍ우타(優陁)가 살았는데 일찍이 세 열승(涅僧)과 더불어 이 돌에 앉아서 대소승(大小乘)을 논하다가 문득 도를 깨쳤기로 따라서 의론대라는 이름이 되었다.” 한다.」
함양 독바위는 지리산 속살 코스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이 반달가슴곰 복원을 위한 방사 지역이므로 등산로 폐쇄지역이다. 그러므로 안내판, 등산로, 리본이 없다. 그래서 이곳을 오르려면 전문적인 식견이 없으면 조난당하기 쉽다. 오늘 우리가 오를 수 있었던 행운도 회장님의 산에 대한 감각과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실 우리 산악회에서 2016년 7월 21일에 벽송사 능선을 타고 와서 함양 독바위로 오려고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서 사립재 방향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다시 거슬러 오르려고 하니 대원 중 한 사람이 체력이 고갈되어 오봉마을로 하산을 했다. 그 뒤에 회장님과 정교장선생님 두 분이 오르시고 후기를 남겼기에 우리도 안내해 달라고 간청을 했더니 오늘과 같은 행운을 얻은 것이다.
등산로도 없는 가파른 길을 3시간 20분 정도 사투를 벌려 오른 보상은 독바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아마 체력의 소모량을 환산해 보면 천왕봉 오른 정도는 족히 되었을 것이다. 대원들의 체력이 고갈되어 하산 길을 조정했다. 적조사 방향으로 내려갈 계획을 최단거리인 견불사 쪽으로 하산했다. 하산을 하여 대원들의 얼굴을 보니 존경스러웠다.